욥 오요한
욥기 23장 강해

요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

욥기 23장과 24장은 엘리바스의 세 번째 변론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욥은 지금까지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고 자녀도 잃었습니다. 건강을 잃고 여러 달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렸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욥은 자신이 받는 고난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단련을 통해, 자신이 정금같이 변화될 소망을 보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욥

1-7절에 보면 욥은 여전히 하나님께 반항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의로운 자신에게 왜 고난을 주셨는지 하나님께 반항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웠습니다. 그는 재앙으로 인해 탄식보다 더 깊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욥은 반항심과 근심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고자 하나님께 들고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불합리함을 하나님과 변론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난 받을 이유가 없는데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께 따지고자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싶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큰 권능으로 연약한 자신과 다투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다 기록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고난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난을 주는 이유를 앎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과 질병의 심판에서 영원히 벗어나기를 원하였습니다.

2. 내면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8, 9절에 보면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가도 하나님은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뒤로 가도 그곳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왼쪽에서 일하지만, 왼쪽으로 돌이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오른쪽에서 일하시지만, 오른쪽으로 돌이켜도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욥과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신뢰한다”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욥은 외적 변화나 표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표적을 구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10절에 ‘그러나’ 가 중요합니다. ‘그러나’는 극적인전환을 의미합니다. 욥은 외적인 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자,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우침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에게 한 가지 확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그의 마음에 대답해 주셨습니다.

3. 욥을 아시는 하나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10절).”

첫째는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처지를 아시고 그의 길을 아시고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 속 반항심도, 근심도 아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욥의 믿음이 순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으면 반항심과 근심의 불순물이 나타나는 것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인간적인 면도 아십니다. 그의 인간적인 면이 훈련을 받아야 함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욥이 이런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도 아십니다.

또 하나님은 욥의 무죄함을 아시고, 그가 선을 행한 것도 아시며, 의로운 것도 아십니다. 그의 연약함을 아시고 고통하는 것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인생을 전체적으로 아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만 기억해도, 나의 슬픔이 많이 사라집니다.

4. 욥을 순금처럼 단련하시는 하나님

둘째,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단련하고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벌 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련하고 계신 것입니다.

욥을 단련하여 그의 믿음을 순금과 같이 만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정금처럼 순수하게 만들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믿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사금이나 산금(山金)에서 얻은 금은 조잡한 금이라며 ‘조금(粗金)’이라 부릅니다. 예전에는 순금을 만들 때 조금을 망치로 부숴 뜨거운 용광로 속에 집어넣고 녹여 순금을 추출했습니다.

금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서 순금이 되듯, 우리의 믿음은 고난을 통해 순수해집니다. 고난 없이 믿음이 순수해 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단련을 통하여 믿음이 순수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축복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시련과 고난을 주셔도 순수하게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요 구원주로 믿었습니다.

사단은 욥이 아무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욥이 아무 까닭없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고 겸손해졌습니다.

5. 정한 음식보다 귀한 말씀

11-12절에 보면 욥은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이제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서 한 걸음씩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따라감으로써, 죄악으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술로 하시는 명령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십계명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됐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자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깊이 새겨졌습니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맛있는 음식보다 그분의 입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습니다. 욥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맛있는 음식과 같이 맛있고 꿀송이보다 더 달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훈련을 통하여 말씀의 맛을 알고,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의 종으로 변화됐습니다. 고난을 받으면 말씀의 가치를 알고,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6.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르는 욥

13, 14절을 보면 욥은 하나님은 뜻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을 다 행하신다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재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건강을 잃은 것도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뜻 위에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긍휼로 절대주권을 행하고 계십니다. 욥은 그런 일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욥은 절대주권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지만, 그의 신앙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을 충분히 알지 못하였습니다.

욥은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때로 뜻을 돌이키시기도 하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체질이 연약함을 아십니다. 또한 욥은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에 하고자 하는 대로 행하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욥에게 하나님은 마치 폭군과 같이 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의해 능력이 제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다 심판하실 수 있었지만, 그들을 심판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여 자신의 능력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7.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해야 한다

15-17절에 보면 욥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두렵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욥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지, 흑암이 욥을 기리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은 우리를 경외심 있는 사람으로 키우십니다. 그러나 욥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품에 안길 수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하나님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탕자와 같이 아버지를 사랑하여 아버지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8. 결론: 훈련받을 때 소망을 갖자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난 중에 우리를 아시고 정금처럼 연단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우리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소망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훈련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신 소망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가질 때, 하나님의 훈련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소망을 갖고 현실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