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15장 강해

요절: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15-16절)

엘리바스는 욥이 죄로 인해 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빌닷은 공의의 하나님이 욥을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15장은 엘리바스가 다시 한 번 욥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욥은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을 믿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을 전적으로 신뢰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1. 욥은 실족시키는 자인가

1-6절에 보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지혜롭다는 사람이, 어찌하여 열을 올리며 궤변을 말하느냐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쓸모 없는 이야기로 배를 채우는 논쟁이나 일삼고, 아무 유익도 없는 말로 다투기만 할 셈이냐고 묻습니다. 동풍처럼 도움이 되지 않고 무익한 말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헛되고 오히려 해로운 생각을 그 품에 채워 간직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욥이 내세우는 논리가 헛되고 무익한 것이라고 경멸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정말 욥이야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내던져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뉘우치며 기도하는 일조차도 팽개쳐 버렸다고 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지금도 계속 경외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죄가 그의 입을 부추겨서, 그 혀로 간사한 말만 골라서 하게 한다고 합니다. 욥이 친구들의 권면을 한사코 거부하고, 도리어 자기를 변호하기에 급급하다고 말합니다. 욥을 정죄하는 것은 욥의 입이지, 엘리바스가 아니라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의로운 자신을 고난당하게 한다고 하나님께 항변(14:22)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욥이 한 말을 꼬투리로 잡아 욥이 하나님께 불평하여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2. 나이가 많은 사람의 말은 옳은가?

7-10절에 보면 욥이 맨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냐고 묻습니다. 산보다 먼저 생겨난 존재라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과장하면서, 욥의 주장이 무모하다고 힐책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너만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느냐고 합니다. 엘리바스가 욥에게 너의 나이가 초월적인 존재이냐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나이가 어린, 부족한 인간임을 말합니다. 반면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고 오묘하시고 지혜를 가지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경험이나 전통, 정통성, 인생 경륜 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말합니다.

그들이 사귀는 사람 가운데는, 나이가 많은 이도 있고, 머리가 센 이도 있다고 합니다.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든 이도 있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욥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그들이 욥보다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육신적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 성숙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이만으로 상대편을 찍어눌러서는 안 됩니다.

3. 욥은 교만한 자인가

11-14절에 보면 하나님이 욥에게 위로를 베푸시는데도, 욥에게는 그 위로가 별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욥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권고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무엇이 욥을 그렇게 건방지게 하였으며, 그처럼 눈을 부라리게 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교만하고 자만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그릇된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합니다. 욥이 눈을 번쩍여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되고 반항하는 자세를 취했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욥은 하나님께 격한 심정을 털어놓으며, 하나님께 함부로 입을 놀려 대느냐고 묻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는커녕 끝내 자기 의(義)를 고집하는 것이 교만함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했을 뿐,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바스는 인생이 무엇이기에 깨끗하다고 할 수 있겠으며,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무엇이기에 의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욥도 자신이 원죄로 태어났음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욥이 의롭게 살았는데도 고난을 받는다는 현재적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훗날 이들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욥의 중보 기도로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42:7, 8).

4. 하나님은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가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저지르기를 물 마심 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을 용납하시겠느냐(15-16절)?”

엘리바스는 바로 핵심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천사들마저도 반드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분 눈에는 푸른 하늘도 깨끗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물며 구역질 나도록 부패하여 죄를 물 마시듯 하는 사람이야 더 더럽게 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부정함과 불의함을 천사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더 부각시킵니다.

엘리바스는 결론적으로 인간의 불의와 부정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이전에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말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욥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 부패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완전 부패한 인간마져 신뢰하고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인간도 믿음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변화될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를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로 속여 부패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신뢰하고 그를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항상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고 신뢰하십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욥을 신뢰하고 자랑하셨습니다. 욥에게 고난을 주어도, 그는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라고 신뢰하여 주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기쁨이요 자랑이었습니다.

5. 악인은 일평생 고통을 당하는가

17-33절에 보면 엘리바스는 욥에게 가르쳐 줄 것이 있으니,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가 배운 지혜를 욥에게 말해 주겠다고 합니다. 엘리바스가 자신이 하는 말은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들도 자기 조상에게서 배운 공개된 지혜라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악한 일만 저지른 자들은 평생 동안 분노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잔인하게 살아온 자들도 죽는 날까지 같은 형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악한 사람은 어디에선가 칼이 목숨을 노리고 있으므로, 흑암에서 벗어나 도망할 희망마저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

악인의 형통은 잠깐이고 뜻하지 않는 재난이 갑자기 들이닥침으로써 결국 파멸한다고 합니다. 악인은 먹을 식물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헤메인다고 합니다. 악인은 극도로 심각한 재난을 만나 삶의 의욕마저 상실하고, 오직 파멸의 시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절망적 처지에 몰리게 된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악인이라고 하고 그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욥이 악인이라는 자기 확신에 가득차 있습니다. 욥이 교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했다고 말합니다. 욥이 방패를 들고 하나님께 달려든다고 말합니다. 욥이 당하는 환난은 모두 그가 하나님께 대항하여 주먹을 휘두르고, 전능하신 분을 우습게 여긴 탓이라고 합니다.

욥은 극도의 재난 속에서 괴로워하며 하나님께 원망 섞인 탄식을 늘어놓은 적은 있지만,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거나 모독한 적은 없습니다. 욥이 재난을 당한 것은 교만 때문이 아닙니다. 악인은 더 이상 부자가 될 수 없고, 재산은 오래 가지 못하며, 그림자도 곧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악인은 한 번 재앙에 빠질 경우 그 불행한 처지에서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하며, 그의 번성하는 사업도, 재산도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온전히 사그러지고 말게 된다고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으로 하여금 헛된 것을 신뢰함으로 스스로 속임받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찍힌 나무가 다시 때가 되면 소생하고 열매를 맺는 것(14:7-9)과는 달리, 악인은 다시 새롭게 될 소망을 가져봐야 헛될 뿐이라 말합니다.

익지도 않은 포도가 마구 떨어지는 포도나무처럼 될 것이고, 악인의 파멸은 거역할 수 없는 강압적 힘에 의해 초래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주장처럼 악인이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악인도 잘 먹고 잘 살다 죽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6. 욥이 뇌물을 받았는가

34, 35절에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리는 이렇게 메마르고, 뇌물로 지은 장막은 불에 탈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바스가 욥을 빗대 경건하지 못한 무리라고 말합니다(21, 24, 29절). 뇌물을 받는 장막은 불탄다고 말하여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가 평안하다는 욥의 말을 정면으로 논박합니다.

아울러 욥이 뇌물을 받아 욥에게 불 재앙이 임했다고 말합니다(1:16).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만을 낳으니, 그들의 뱃속에는 거짓만 들어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불경건한 무리는 해악을 품고 남을 해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기만하여 멸망에 빠지게 되는 자들이라고 합입니다.

엘리바스는 구체적으로 욥이 경건하지 못하고 뇌물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욥이 거짓이 있다고 말합니다. 엘리바스는 이제는 전혀 증거되지 않은 죄를 말합니다. 엘리바스가 거짓으로 무고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결론: 하나님은 인간을 신뢰하신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에 대해 잘못 알고 말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인간이 죄악됨에도 인간을 신뢰하시고 믿어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셨지만 율법적이지 않고 인간을 위해 속죄소를 만들어 주시고, 나아갈 길을 만들어주신 분이십니다. 죄악된 인간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