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관점’ E. P. 샌더스가 본 유대교의 부적절성, 그리고 바울

입력 : 2018.08.01 15:44

[해외 서평] Barry Crawford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서평 번역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해외 도서를 주로 서평하고 있는 진규선 목사님(독일 유학 중, 시앙스 앙피즈 운영자)께서 1977년 출간된 ‘바울에 대한 새관점’ E. P.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대한 미국 와슈번대 종교학 교수 배리 크로포드(Barry Crawford)의 서평을 번역해 소개해 주셨습니다. 무단 전재를 금합니다. -편집자 주

E. P. Sanders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Paul and Palestine Judaism)>는 1977년 처음 출간되 이후 2017년 40주년을 기념하여 재출판됐고, 국내에서도 40년 만에 이 바울 연구의 기념비가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본 글은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처음 출판되자마자, 그 중요성을 인식한 Barry Crawford(현 미국 와슈번대학교 종교학 교수)가 JAAR(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에 기고한 리뷰를 필자가 직접 허락을 받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E. P. 샌더스의 연구는 바울 연구, 특히 신약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단적인 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약학자 제임스 던은 자신의 <바울 신학>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샌더스가 그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소개하는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을 접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만큼 중요한 서적이지만, 지금까지 국내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서구권에서도 절감하는 것처럼 그 방대한 양과 비용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국내 기독교 출판 현황이, 특히 전공 신학 서적 번역 상황이 그만큼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40년간 바울 학계의 중심 논의가 된 책이 아직까지 우리말로 없었기에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샌더스의 논의가 일부 보수 국내 신학자들에 의해 상당히 자의적으로 해석돼 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때에, 알맹e에서 과감하게 이 도서의 출판을 감행했다. 종종 이뤄지는 이러한 큰 투자가 선심쓰는 일로만 끝나지 않고, 알맹e와 더불어 많은 출판사의 전문 신학 서적 출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교단이나 대학 출판부, 학회가 힘을 모아 해외 학술 서적 번역에 과감히 투자함으로써, 국내 신학 수준도 신학 전공자 숫자만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길 바란다.

바울과 1세기 유대 종교 집단들에 대한 방대한 연구서인 이 책은, 해당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에게 물론 유효하겠지만, 동시에 종교간 대화가 요청되는 이 시점에서 올바른 종교 지식을 갖도록 하는데 좋은 서적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바울과 1세기 유대 종교 집단에 대한 유일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지만, 이 책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에 대한 좋은 리뷰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글을 소개하게 됐다.

서지 정보: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Vol. 46, No. 2 (Jun., 1978), pp. 209- 210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한국어판.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40주년 기념 한국어판)
E. P. 샌더스 | 박규태 역 | 알맹e | 1,176쪽 | 98,000원

샌더스는 사려깊고 도발적인 이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데이비스(Davies)의 바울과 랍비 유대교의 후계자로 여겨질 수 있는 온갖 가능성, 그리고 이 세대에 바울에 대해 가장 중요한 바울 연구서를 제공해준 것 같다.

샌더스 연구의 포괄적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팔레스타인 유대교를 하나의 ‘행위-의’ 율법 종교로 보는 시각과 상반된 어떤 것으로 논하는 것, 둘째로 자료들에 새롭게 접근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다 정확한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바울의 종교(근본적으로 일부는 전체적 재고를 요청하는)를 비교하는 것이다.

백과사전 수준인 샌더스의 연구 범위는 바울의 사상, 탄나틱 문헌(Tannaitic literature), 사해 사본, 외경과 위경(벤 시라, 에녹1서, 희년서, 솔로몬의 시편, 4 에즈라 등)의 일부를 포함한 폭넓은 팔레스타인 유대교 자료들까지 포괄한다.

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다양한 자료들을 다루는 샌더스의 능력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는 탄나틱 문헌을 능숙하게 다루며, 바울을 다룸에 있어서도 설득력있고(authoritative) 흥미롭다.

샌더스 연구에서 눈여겨볼 점은, 책 서문과 전체에서 드러나는 방법론이다. ‘본질적 구성요소들’에 기초한 종교 연구(환원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발생), 그리고 그렇게 비교한 종교들에 있는 공통적 개인 모티브들에 초점을 맞춘 연구(큰 그림을 놓치게 됨)에 불만을 가진 샌더스는, 어떤 ‘종교 유형에 대한 총체적인 비교(holistic comparison of patterns of religion)’를 제안한다. 

샌더스의 ‘종교 유형(혹자는 구원론(soteriology)이라고 부른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종교가 그 논리적 출발점에서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어떻게 누군가가 종교에 ‘들어가고 머무를 수 있는지(gets in and stays in a religion)’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한 종교가 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전체적으로 어떻게 기능한다고 여겨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총체적인 비교’가 의미하는 바는, 어느 한 종교의 유형을 다른 종교의 유형과 부분적으로 그리고 전체를 비교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총체적인 접근 방식을 기초로, 샌더스는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바울의 종교 유형에 도달하기 위해 철저하게 자료들을 분석한다.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우리는 ‘언약적 율법주의’를 발견하는데, 이는 누군가가 하나님의 계획에 있다는 것(즉 구원)은 하나님이 모든 범죄에 대해 속죄의 방식을 제공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순종으로 응답하겠다는 ‘언약’에 의해 세워진다는 신념이다.

한편 바울의 종교 유형은 이 도식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주의자 종말론(participationist eschatology)’으로 그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다.

즉 다음과 같은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구원자가 되게 하셨음을 고수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 한 인격이 됨으로써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신자의 온전한 변화는 파루시아 때까지 미루어질 것이며, 그 기간 전까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을 가져오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므로, 구원을 얻는 다른 모든 방법은 실상 가치가 없다. 

샌더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그가 ‘베버·부셋·빌러벡·불트만’으로 통칭하는 성경해석 학파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유대교를 율법적 행위-의 종교라서 공격했고 또 그 공격은 정확했으며, 이것이 바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라 주장한다. 

주요 전제는 이것이다. 바울의 사상은 인간의 곤경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제공한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바울 사상의 의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한 의’라는 슬로건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샌더스는 이것이 바울을 거꾸로 읽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울의 특징적인 종교 유형과 그 유형에 있는 논리적인 움직임을 완전히 무시하는 잘못으로 본 것이다.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 원서.
사실 바울의 사상은 곤경에서 해결책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해결책에서 곤경으로 흘러간다. 모든 것은 바울의 배타적인 구원론에서 나온다. 즉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기에 다른 길은 틀렸다는 것. 바울의 참여주의적 언어(즉 그리스도 안에 있음)가 바로 그의 신학의 핵심이며, 그 핵심은 믿음에 의한 ‘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에 의한 의’는 그의 종교 유형 안에서 파생된 개념이며, 다른 종교 유형들이 왜 부적절한지를 다루는 다소 부분적인 질문을 다룰 때만 등장할 뿐이다. 유대교의 부적절성은 그것이 잘못된 방식으로(즉 행위로) 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유대교가 가진 의가 제대로 된 의, 즉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믿음에 의한 의가 아님에 있다.

즉 바울의 유대교 반대는 종교 유형이 아니라 그것이 필연적으로 ‘거짓된 실존’으로 이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니라서 잘못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파악된다면, 바울과 유대교 간의 갈등은 같은 목표(의로움)에 도달함에 있어 무엇이 더 적절한 방법인지(믿음이냐 행위냐)에 대한 것이 아님이 드러나게 된다. 오히려 이 두 가지 종교 유형들은,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두고 다투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본질적 차이를 파악하는 데 실패하는 일은(적어도 베버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렇게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신약 연구계에 만연해 있는 바울에 대한 오해 및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대한 비극적인 왜곡으로까지 나아가게 만들었다.

샌더스는 이 책을 신중하게 준비했다. 이 책에는 팔레스타인 유대교 문헌 레퍼런스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 및 제대로 갖추어진 참고문헌과 방대한 색인이 있다. 또 부록으로 만프레드 브라우크(Manfred Brauch)의 ‘하나님의 의에 대한 최신 독일 학계의 동향’도 수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대학 강의실에서 사용돼야 할, 특별히 바울 입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책이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비싸다.

Translated with permission of Barry Crawford. All rights reserved.
원문: http://science-infuse.tistory.com/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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