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북한 동포들 도와야“

이대웅 기자 입력 : 2018.06.14 17:44

김명혁-손봉호 교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사랑의 영성’ 대담

김철영 김명혁 손봉호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김철영 목사, 김명혁 목사, 손봉호 교수. ⓒ이대웅 기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사랑의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와 손봉호 교수(기아대책 이사장)가 14일 오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개최됐다. 김명혁 목사와 손봉호 교수는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각자 발표 후 이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그 내용.

-한국교회는 다양한 섬김을 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 개인은 어떻게 나눔과 섬김을 생활화할 수 있을까요.

손봉호 교수: 야고보 사도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고 말씀하셨는데,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이 두 가지가 연결돼 있습니다.

세속에 물드는 이유는 세상이 추구하는 이익,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런 것이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사랑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태도만 가진다면 자연히 고아와 과부를 돌보게 됩니다.

돈에 대한 욕심, 내가 즐기고 누리겠다는 생각이 많으니 그러지 못하고, 그런 것만 추구하다 보니 세속에 물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과 하나님 사랑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다면 이 두 가지 다 가능합니다.

김명혁 목사: 저는 예수님 말씀 중 만남과 나눔, 교제와 섬김을 좋아합니다. 주님은 '나는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돈만 나누는 게 아니라, 한센병 환자들을 끌어안고 손을 만지고 낮아져서 그렇게 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목회할 때도 근처 구룡마을 같은 데를 찾아다니며 그들을 돌아보고, 구제헌금만 주기보다는 가서 끌어안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만 예배하지 말고, 그들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에게 돈만 준 것이 아닙니다. 약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악대를 태워 가서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도 주변 어려운 이웃들과 북한 등을 손으로 만지면서 끌어안아야 합니다. 물론 헌금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너무 행복하고 기쁘고, 그들도 기쁘고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그런 삶을 좀 더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북한 동포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손봉호 교수: 그동안 한국교회가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더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왔어야 합니다.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기아대책은 그동안 북한 고아들을 돌봤습니다. 중국에서 중국 법인 이름으로 도왔지만, 북한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 우리 정부 시책에 어긋난 것이기도 합니다.

서독이 그랬습니다. 서독은 동독을 도울 때 교회를 통해서 도왔습니다. 그때 교회가 보낸 돈 중 상당 부분이 동독 정치인들에게 들어간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보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기독교가 통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북한 정부의 인권 탄압에는 반대해야겠지만,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주민들을 먹여야 합니다. 여러 방법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저도 올해 중국에 갑니다. 북한에 유실수(有實樹, 열매 있는 나무, 주로 과일나무 -편집자 주)를 보내주는데 효과가 있습니다. 다른 나무는 땔감으로 다 써 버리지만, 유실수는 잘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더불어 사는 나눔과 실천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손봉호
▲손봉호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손봉호 교수: 나눌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가'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신 나의 도움이 받는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그래서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느냐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굶는 사람들은 우선 먹여야 하고, 병든 사람들은 우선 고쳐야 합니다. 나눔의 전략은 다양하겠지만, 당사자의 수요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방법으로 할 이유가 없습니다.

-크리스천 기업들의 나눔 실천도 중요할텐데요.

손봉호 교수: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한 가게 여주인이 방송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1년 내내 가게를 열어 장사하는데, 세금 바치고 월급 주고 하다 보면 한 푼도 안 남습니다.' 기자가 그럼 왜 가게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안주인이 놀란 표정으로 '여기 이 사람들이 일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기업들은 이런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을 버는 유일한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그 덕으로 사회에 도움을 끼치고 공헌하고자 하는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떡하든 내가 돈을 좀 더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투명하고 정의롭게 경영해서 사람들이 기독교 기업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기독교 구호단체들의 투명성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손봉호 교수: 과거에는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상당히 엄격하게 감사를 하고 있기에, 요즘에는 구호단체 비리가 거의 없습니다.

기아대책 이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강조한 것이 투명성과 순수성이었습니다. 구호를 해서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영향력을 높이는 대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 올인하는 것이 순수성입니다. 그러면 투명성도 자연히 보장됩니다.

직원들이 다행히 제 말에 공감해줘서 이렇게 사역하다 보니, 기부도 확 늘었습니다. 저는 구호단체가 제대로만 일하면 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큰 구호단체 대부분은 이제 믿을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더 많이 나누고 베풀어야 할텐데요.

김명혁 목사: 기업의 투명성에 대해 손 교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기업이나 교회, 단체가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돕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북한은 '돕는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자신들을 무시하고 가난하게 본다는 것이지요. 북한이든 조선족이든, 누구든 '저 분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면서 돕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느낍니다.

순수하게 도우면 북한도 좋아합니다. 유진벨 재단을 통해 북한 결핵 환자들을 오래 전부터 돕고 있는데, 아주 고마워합니다. 연변 조선족들이 자신들도 어렵지만 함경도에 병아리와 오리 새끼 20만 마리를 줬는데,. 현지 공산당 지도자가 그렇게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돕는 것 자체보다, 그들에게 어떤 자세로 나누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수년 전에 밀가루를 들고 개성에 간 일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남한 정부를 막 욕했지만, 장교 한 사람이 귓속말로 '어찌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셨느냐'고 칭찬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학교를 지어준 일이 있는데, 학생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라고 환영식을 해 줬습니다. 무슬림 관계자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말입니다. 북한이든 무슬림이든, 무시하지 말고 그저 끌어안는 자세로 돕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설교하고 전도하지 않아도 복음이 저절로 들어갑니다. 삶으로 끌어안으면 됩니다.

김명혁
▲김명혁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셨듯, 함께 있어주는 친구 같은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손봉호 교수: 예수님의 삶을 보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볼 때, 기독교는 '타자 중심의 종교'입니다. '내가 얼마나 이익을 보느냐,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얼마나 이익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특히 약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중심이 아닌 수혜자 중심으로 했을 때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아프리카 말라위에 제 이름으로 된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큰 돈을 기부한 것이 아닌데도 건물이 하나 세워졌습니다. 약한 사람을 도울 때의 이익이 바로 이것입니다. 조금만 희생해도, 거기에 엄청난 이익이 생깁니다.

고아와 과부를 돕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의 조그만 희생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뜻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균등하게(평균케) 하려 함이라(고후 8:13-14)'고 했습니다. 조금만 희생해도, 결과적으로는 균등해집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두 가지 정의를 말합니다. 하나는 평등의 원칙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차등의 원칙입니다.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가장 적게 받은 사람이 가장 이익을 많이 보도록 하면, 결과적으로 그것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꾼 비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적인 원칙인 것인데, 그 분이 대학 다닐 때 목회자가 되려고 했을 정도로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고 합니다. 최소 수혜자가 바로 고아와 과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조금만 희생해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고, 굉장한 보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조금 절제하고 절약해서 보냈더니 눈덩이같이 불어나는 효과를 봤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재미를 많이 맛보길 바랍니다.

-김 목사님은 홀홀단신 38선을 넘은 뒤 고아와 나그네로서 평생 사셨는데, 잊지 못할 도움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김명혁 목사: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신다는 말씀대로, 저만큼 축복과 사랑을 받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원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랑입니다.

그 말씀에 한 마디 덧붙이고 싶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님 이기풍·윤함애 목사님 부부가 제주도민들을 13년 사랑했던 결과, 제주 복음화가 시작됐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감옥에 계실 때도 먹을 것의 반을 다른 죄수들에게 줬다고 합니다. 나중에 공산당 두목이 무릎을 꿇고 '일본에 망했을 때 조선의 진짜 목사가 하나 있었다'고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한센병 환자 사랑, 원수 사랑을 보십시오. 설교가 아니라 삶의 모습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교회는 싫어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제일 존경합니다. 순수한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이고 독선적이고 게으르고 나태한 죄인이지만, 말년에 그렇게 사랑할 수 있기를 늘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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