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여호수아의 주관 아래 이루어진 요단강 서편지역의 땅 분배는 유다지파를 시작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성경은 유다지파의 땅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갈렙이 어떻게 자신의 기업을 얻게 되었는가를 소개하고 있다. 성경이 유다지파의 땅 분배보다 먼저 갈렙이라는 한 개인을 내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출애굽 세대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정복을 주도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면, 갈렙은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가나안 정복에 참여한 일반백성의 대표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각각 지도자와 일반백성이라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가나안 땅과 관련된 두 유형의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모두가 적극적 신앙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은 적극적 신앙을 가진 자만이 들어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이다. 갈렙이 보여준 적극적인 신앙은 어떤 모습일까?

1. 갈렙의 적극적 신앙은 45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다른 11명의 지파 대표들과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부터 드러났다. 그때 열 지파의 대표자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함으로 백성들의 간담을 녹게 만들었다. 그러나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긍정적 보고를 함으로 모세의 입장을 적극 지지했었다. 갈렙은 당시 자신이 보여주었던 적극적 신앙을 '성실한 마음'과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수 14:7-8)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원문에 따르면, '성실한 마음'이란 '자신의 마음을 따라'라는 뜻인데, 믿음으로 눈으로 보았던 내용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하였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이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 그분을 전적으로 따른다는 의미이다. 곧 갈렙의 적극적 신앙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건과 미래를 바라볼 뿐 아니라, 자신이 확신한 것은 전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갔음을 말한다.

2. 갈렙의 적극적인 신앙은 45년이라는 비교적 긴 기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간직하며 살아왔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믿음으로 가나안의 비전을 강조하였던 갈렙에게 모세는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네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 14:9)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해주었다. 갈렙은 그 약속을 가슴에 품고 가나안 입국이 있기까지 긴 광야생활을 지내온 것이다. 때로 적극적 신앙은 하나님의 때(카이로스)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인내로 나타나기도 한다. 갈렙은 그 기간 동안 수동적 자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힘을 비축하여왔다. 그런 모습은 45년 전과 같이 여전히 강건하여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다고 한 당당한 고백에서 엿볼 수 있다(14:11).

3. 갈렙의 적극적 신앙은 여호수아에게 나아가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라는 요청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산지'는 '헤브론' 지역을 의미한다. 당시 그곳에는 아낙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크고 견고한 성읍이 있었다. 아마도 여호수아가 외곽으로 쫓아낸 아낙사람들이 재차 침입하였던 것 같다. 갈렙이 요청한 땅은 편안하게 정착하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그런 땅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곳은 모두가 기피하는 문제의 땅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닥쳐올 어려움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을 쫓아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주목하였다(14:12). 적극적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자세이다.

4. 여호수아가 헤브론 산지를 자신에게 분배해 주자 갈렙은 곧바로 아낙 소생의 세 아들을 몰아내고 분배받은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갈렙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인근지역인 드빌로 나아가 자신의 영역을 더욱 넓혔다. 그리고 후에는 네게브지역까지 자신의 영토를 확대시켰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이시다. 갈렙은 그런 영역 확대를 위하여 자신의 역량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힘을 활용할 줄 아는 적극적인 지도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딸 악사를 아내로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웃니엘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 것이 그에 대한 좋은 예이다. 적극적 신앙은 자신의 한계에 제한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더 큰 일을 이룰 줄 아는 공동체적 신앙이기도 하다. <끝>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