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이면 노숙인 형제들에게
양복 싱글을 입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드디어 때가 되었다.

옷은 단순히 몸 가림만이 아니다.
신분이고 인품일 수 있는 것이기에
옷을 가라 입는다는 것은

새로운 탄생의 외적 표현일 수 있다.

옷은 위장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표현이다.
성직자라면 진정으로 거룩한 새 일을 위해서는
성의를 벗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노숙인 형제들에겐 거룩하기 위해서는
새 옷을 입을 필요가 있다.

나는 형제들이 새 옷을 입고
예배 안내위원도 맡고, 헌금 위원도 하고
찬양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옷만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과 마음이 준비되어야 하고
옷을 잘 빨아 입어야 하고
몸에서 냄새 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습관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목욕 빨래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이번 19일 추수감사절에는
이 작은 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날 오후 5시에는 목욕빨래방
봉헌예배도 드리게 되었다.

이는 주님의 뜻이고
이들을 도와온 교우들의 사랑의 열매이고
형제들의 변화의 결과이다.

나는 어제(13일) 미리 고급 정장 세일하는 곳을 알아보고
예고도 없이 사랑의 농장에서 일하는 4명의 형제들과 부목사님
그리고 정 권사님과 매장으로 가자 했다.

뜻밖의 일이라 형제들은 더욱 놀라워하며 기뻐했다
진정한 행복감을 누리는 듯해서
내가 더 기쁘고 감사하였다.

찾아간 매장은 원단이 좋은 제품 본사이다.
직원은 베테랑이었다.
딱딱 맞는 치수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형제들이 모두 자기만의 칼라와
개성과 취향들이 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형제들은 정장을 파는 매장은
여전히 낯선 곳이었다.

이러한 공간은 자신들과는 관계 없는
남의 영역으로 여겨 온 때문일까?
어색하게 느끼며 고객으로 처신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베테랑 직원마저 형제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잠시 어색해 하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도 손발이 서로 맞아야 하는 것이다.

한 형제는 이런 매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어느 형제는 아는 척하면서 정가표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입을 다물지 못한다.
1,290,000원

염려 말라고 했다.
70-80프로 디스카운트가 될 것이고
능히 입을 자격이 있지 않느냐 했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 비쌉니다." 한다.
목사님도 집도 없다면서
게다가 교회도 작은데 걱정이라고 한다.
이때에 나도 옛적 나의 선생님이 하시던 대로
나의 아버지가 부자라고 말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아니라
오직 하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한다.

내가 가격을 치르니
동행하였던 정 권사님이
내 것은 당신이 한 벌 선물한다며
한 벌을 떠 안겼다.
형제들로 인해 내가 큰 덕을 보았다.

나는 모두 와이셔츠를 추가하고
넥타이는 직원에게 선물하라고 했다.
직원은 흔쾌히 선물을 하였다.

우리는 바지단을 줄이는 동안
라떼로 커리를 나누며 새 옷 입고
예배 봉사를 하며 공동체에 들어가서
멋지게 살 꿈을 꾸었다.   

정장 빼 입게 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 교회 조 장로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구두는 제가 좀 선물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귀국한 한 선교사가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곁에 있던 아내가 우리도 한 벌의 정장도 없다며 웃는다.

내 차를 타라 하고 무작정 매장으로 갔다.
어디 가느냐고 하였다. 놀러 가자고 했다.
즐겁게 한 벌을 추가하였다.
능력과 기쁨을 갖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삶의 눈물을 거둬들이고 싶은 이는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베토벤>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