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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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끈기, 추진력 등은 기독교인의 훌륭한 덕목이다. 그러나 이를 갖추는 일은 너무 어렵다. 우리가 어떻게 이를 갖출 수 있을까?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포기치 않는 기도에 관해 말씀하셨다. 끈질긴 과부의 이야기로 또 불의한 재판장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이 비유에서 과부는 재판장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구한다.

당시의 문화에서 여성은 2등 시민이었다. 또한 재판장이 공정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 앞으로 쉽게 나갈 수 없는 신분이었다. 여성의 말보다 남성의 말을 더 선호했고, 이 여성은 심지어 과부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변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없었고, 법적인 팀을 꾸릴 수 있는 여유도 없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이 즉시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를 설득한 것은 그녀의 끈기였음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4~5)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6~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를 위한 기도는 마치 불가능한 사명처럼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지닌 가치관과 반대되는 세력이나 관점이 맹렬히 우리를 공격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믿고, 일하고, 살아가고 기도하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선 안 된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최근 칼럼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포기하지 말라’는 예수님을 말씀을 어떻게 따를 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첫번째,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위해 계속 기도를 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공의를 얻게 된다. ‘더 좋은 옷, 자동차 등을 갖고 싶다. 그리고 난 계속 기도하겠다. 그럼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공의를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

둘째, 성경의 어딘가에서 또는 삶 속에서 우리가 공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항상 얻지는 못함을 알고 있다. 치유를 위해 수 십년을 기도하거나,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과 관계 회복을 위해, 더 나은 관계성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수 년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식으로 불의한 대우를 받았는지 다 아신다. 그분께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를 구할 수 있고,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물면서 이미 그분이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하셨음을 배우게 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계신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재판장보다 훨씬 영향력 있으신 분이다.그분은 결정권자이실 뿐 아니라 실제로 공의를 위해 스스로 낮추시고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케 해주신 분이시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오늘날 교회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하신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믿음을 보이고, 기도를 통해 믿음을 더욱 깊게 해야한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를 지켜보실 때, 끈기있게 기도하며 기도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는 개인과 공동체를 찾고 계신다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