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최근 야구 해설가 하일성 씨가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 67세에. "사랑한다. 미안하다." 하일성씨가 숨지기 전 아내에게 썼던 문자 메시지이다. 그런데 차마 보내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말았다. 휴대전화에 임시 저장돼 있던 것이 사람들에게 공개됐다.

돈도 잘 벌텐데, 사회적인 명성을 가진 자인데, 도대체 왜 그런 길을 선택한 걸까? 지난해 11월 아는 사람에게 '빌딩 관련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3,000만원을 빌렸다. 그런데 그 돈을 갚지 않아 사기 혐의로 입건됐다.

지난 7월에는 또 다른 지인의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달 음주운전 사고를 낸 아내의 차량에 동승해 음주운전 방조 여부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를 자살이라는 벼랑으로 몰고 간 건, 부채와 실추된 명예 때문이다.

명절이 눈앞에 다가왔다. 돈에 쪼들려 힘든 경제현실이지만, 교통 대란이 일어날 것이지만, 그래도 구태여 고향을 찾아간다. 고향이 있기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있기에. 고향 가는 길에 '하늘 고향'을 향한 갈망도 커지면 좋겠다. 누구나 언젠가 죽을 건데, 죽더라도 갈 곳이 명확해야 하니까. 천국!

어느 날 노인요양병원에 계신 권사님을 찾아뵈었다. 굉장히 좋아졌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권사님은 너무 반가운 듯 우리를 반겨주셨다. "권사님, 고생 많으시죠?" "바쁘시죠, 이렇게 먼 데까지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좀 어떠세요?" "빨리 집에 가고 싶지요. 여기는 생지옥이에요.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하찮아요." "다칠까봐 그러는 거죠. 본인들에게 책임이 돌아오니까."

"간호사들에게 빨리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면, 때가 되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왜 빨리 안 보내주는지 모르겠어요." "빨리 나오셔서 다치시면 큰 일 나니까 그러는가 보죠.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재활치료 하세요." "빨리 나가면 교회 가까이 이사 간다고 딸들한테 말했어요." "그러셔야죠." "딸들은 엄마는 왜 독산동을 그렇게 떠나지 못하느냐고 야단인데, 저는 독산동이 좋아요." "당연하죠. 교회가 있는 곳이고, 거기에 많은 지체들이 있으니까 오죽하겠어요?" "성도들도 빨리 보고 싶어요."

권사님이 계신 요양병원은 공기도, 전망도 괜찮은 곳에 위치해 있다. 병실에서 보면 창문 너머로 녹음이 우거진 산들이 보이는 곳이다. 그런데도 집으로 오고 싶어 한다. 교회에 오고 싶고, 성도들을 너무 너무 만나고 싶어 하신다.

나그네 삶을 사는 우리도 역시 그런 게 아닐까? 하늘에 있는 본향 집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존재! 명절에 고향집을 찾는 것도 거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서려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아빠와 딸이 대화를 나눴다. "아빠는 나중에 딸하고 같이 살거야." "난, 아빠랑 같이 안 살 건데." "왜? 아빠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들이 부모님을 모시는 게 일반적이지." "난 싫다. 사위 앞에서는 편하게 옷을 입고 살 수 있지만, 며느리 앞에서야 그럴 수가 없잖아. 불편해서 싫다." "엄마가 있는데, 왜 내가 아빠랑 같이 살아?" "물론, 엄마가 있을 때는 엄마랑 살지. 엄마가 먼저 가게 될 때를 말하는 거지." "그때는 생각해 봐야지."

부모 자식 간이라도 함께 사는 게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기 목숨도 내줄 마음이 있다. 뱃속에 가질 때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자식 걱정을 한 시도 덜 수 없다. 자식을 위해서뿐인가? 손자 손녀를 위해 허리가 휘고 관절이 아파오지만,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자식들 생각하면 힘든 줄 모른다. 그런데 자식들은 부모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 멀리 밀어내려고 한다. 그런들 어쩌랴. 세상이 그런 걸.

얼마 있지 않으면 명절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만남에는 즐거운 일들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소식만 듣는 게 아니다. 함께 지내면서 웃을 일들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속상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얼굴 붉혀 다툴 일도 일어난다. 그래서 가족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들이 내 곁을 떠날 때 땅을 치며 통곡하는 때가 올 거니까.

지난 주일 전도사님의 안내로 젊은 여성도가 수술을 앞두고 기도를 받기 위해 목양실로 찾아왔다. 여성 암을 갖고 있다. 현재 딸과 둘이 살고 있다. 예수 믿은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얼마나 불안할까?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아픈 마음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당부했다.

"우리 주변에 암과 투병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두세 사람 만나면 그들 중에 한 사람은 암 환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암과 투병한 분들 가운데 질병으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경험한 분들도 많아요.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은 오래 전에 암 진단을 받고 하나님 앞에 '한 번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면, 앞으로 평생 새벽기도하고, 전도하면서 살겠습니다', 약속하고 십년이 넘도록 새벽기도하고 전도하고 계세요.

어쩌면 성도님에게도 새로운 인생 결단을 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믿음의 확신이에요. 믿음의 확신만 있다면, 동일한 질병 앞에서도 전혀 다른 삶의 태도로 살아갈 수 있어요. 집사님 한 분은 온 몸에 암이 퍼져 있는데도 늘 당당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건 믿음이에요. 꼭 완치해서 어린 딸에게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세요."

딸을 위해서라도 꼭 건강을 다시 회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를 위해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한다.

친밀한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많다. 행복한 웃음을 빼앗아가는 복병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과 더불어 사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지켜줄 수 없게 되는 때도 많다.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하는 때도 있다. 그렇기에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떠나고 나서 통곡한들 무슨 소용 있나?

예전 한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쓴 '아빠는 왜?'라는 동시가 소개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명절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활용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기회로. 평소에 함께해 주지 못한 시간을 만회하는 기회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사랑의 표현임을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