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본받아야 할 왈도파들의 신앙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요구한다.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려는 일념으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포기했다. 그러나 핍박 때문에 신앙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부자 청년이나 데마처럼.

이탈리아의 북쪽 피아첸자(Piacenza)에 갔다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토리노(Torino)를 방문했다. 그곳은 신앙에 목숨을 걸었던 왈도파(Peter Waldo, 1170-, 이탈리아에서는 발데제라고 함)의 본부가 자리한 곳이다. 산골의 작은 도시로, 그 옛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곳 알프스 산자락으로 숨어든 그들이 공동체를 이뤘다. 지금도 그들은 조상들의 신앙 유산을 지키고 있다. 그 깊은 골짜기를 소중히 아우르면서 말이다. 해발 700m 이상에 거주해야 한다는 당국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산 위로 올라갔다. 적어도 40도 이상 경사진 곳으로, 거의 농지는 찾아볼 수 없이 척박하다. 저들은 오직 신앙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세상적인 안정과 편안함을 일체 포기해야 했다.

▲해발 800m에 있는 발도파의 옛 신학교. ⓒ한평우 목사 제공

왈도는 본래 프랑스 리옹 사람으로 큰 부자였다. 그는 부유했으나 진리에 대한 갈망 때문에 수사를 고용하여 라틴어로 된 성경을 번역하게 했다. 당시는 성경이 라틴어로만 기록되었기에, 일반인들이 전혀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인이 자국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이 1963년이니, 그보다 무려 7백 년 전의 상황은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당시 사람들은 사제들이 라틴어로 강론하는 설교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라틴어는 죽은 언어였기 때문이다. 고로 신앙생활은 언제나 더듬어 이해하는 정도에 머물러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의 내용을 벽화로 담아 성도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그 결과 진리를 왜곡하는 일들이 허다했다. 이런 정황에서 왈도는 성경을 직접 읽고 싶었기에, 라틴어를 전공한 수사로 하여금 비밀리에 번역하게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요, 화형을 당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착수한 것은, 그만큼 진리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불어로 번역된 사복음서를 읽는 중에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왈도파들이 숨어서 예배를 드렸던 바위 동굴. ⓒ한평우 목사 제공

그는 성경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성경 외에는 비록 교황의 말일지라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은혜를 경험한 후 주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막 10:21). 그리고 누가복음 10장 1-5절의 말씀대로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했다.

왈도는 전도자들에게 작은 행상을 겸하도록 했다. 이 일은 전도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었고, 또한 자립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것은 아주 초라한 행상이었는데, 실과 바늘, 머리빗, 여인의 장신구, 옷핀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팔아가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했다.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깊은 산동네의 사람들, 가난하지만 마음은 한없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 그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전도자들은 깊은 산골 마을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고, 또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팔았다. 당시에는 그런 전도자가 없었기에 그들은 방문하는 집마다 환영을 받았고, 이는 고독한 사람들을 사귀는 데 있어서 아주 유익했다. 그러나 더 큰 목적은 장사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살펴 본 후에 "다른 물건은 없습니까?"라고 물으면, 이들은 겸손한 태도로 답했다.

"정말로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이 있답니다." 그러면서 은밀하게 복음을 전했다. 이런 일이 당국에 알려지면 큰 고초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복음운동은 짧은 시간에 구라파 전 지역을 불붙게 했다. 마치 바짝 마른 나무에 불을 붙인 격이었다. 13세기에 시작한 복음운동, 그것은 아주 단순했고 미약했다. 그들에게는 돈이나 조직력도 없었고, 또 그런 것을 바라거나 의존하지도 않았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 외에 어떤 다른 목적도 없었다.

▲왈도파들이 비밀리에 예배 처소로 삼았던 천연 동굴 입구. ⓒ한평우 목사 제공

그저 뜨거운 가슴과 어눌한 말로 생명과 은혜의 복음을 전했을 뿐이다. 그런데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심으로 프랑스 남부, 스위스, 독일 중부,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이탈리아 중부까지 삽시간에 복음이 활화산처럼 옮겨 붙었다. 그 운동은 후에 종교개혁자들에게 강력한 모티브를 주었고,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복음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들의 소박한 전도운동이 맹렬한 기세로 구라파를 강타하자, 교황청에서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아주 잔인한 계획을 세웠다. 스페인의 용병들을 불러 많은 돈을 지불했고, 또한 이들을 제거하면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세뇌시켰다. 이들은 전문적 군인들이었다. 용병들은 이 깊은 골짜기에 진을 치고(해발 4천 미터 이상으로 퇴로가 없다) 위협을 했다. "가톨릭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묻지 않겠지만, 돌아오지 않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 후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여자나 어린아이라고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당시의 내용들이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바위 위에서 어린아이들을 발가벗기고 거꾸로 들어 메치기도 했고, 여자들을 발가벗겨 항문에 긴 창을 찔러 넣어 입으로 나오게도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강물이 온통 빨갛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왈도파 성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깊은 계곡이기 때문에 겨울이 빨리 오고 또 눈도 많이 내린다. 어느 날 교황이 특별 사면령을 내렸으니 모두 모이라는 말이 전해졌다. 이제껏 숨죽이며 살았던 교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광장으로 나왔다. 드디어 신앙의 자유가 왔다고 기뻐하고 축하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책임자는 눈이 하얗게 내린 눈밭에 막대기로 선을 긋더니, 이 선으로 넘어오면 용서하겠지만 넘어오지 않는 자들은 즉시 산으로 올라가라고 가혹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 사람도 선을 넘어오지 않고 약속한 듯 산으로 올라갔다. 눈이 허리까지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아마도 이들 중 대부분은 얼어 죽었을 것이다.

저들은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19세기 중엽까지 무려 6백 년 동안을 산속에서 투쟁하며 버텨냈다. 무려 2백만 명 이상이 피를 흘려야 했다. 우리는 일제 36년 동안 당한 신앙의 핍박을 수없이 언급하는데, 이들에 비한다면 너무나 짧은 기간일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영국, 보헤미아, 체코, 독일 등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열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곳)가 산속 70여 군데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무엇이 저들을 그리도 끈질긴 신앙의 길로 걸어가게 했을까? 이들은 규칙적인 성경 읽기와 가정예배, 잦은 집회를 습관화하도록 했다.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쳤고, 함께 모여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교제했다.

그들이 모여 예배드리고 찬양을 했던 바위 굴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신앙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가? 왈도파의 장로님은 말한다. 그 옛날 신앙의 유산으로 받은 프랑스 언어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고, 주일에는 불어로 설교하는데, 무려 600년 동안 이 전통을 지켜 온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불어를 모르는 사람은 왈도파와 관계없는 타지인이라고 한다. 이들이 과거 살았던 계곡의 은신처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 자리를 지켜, 오늘날 성도가 지녀야 할 신앙 정체성에 대해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당신의 신앙은 건강한지를 말이다.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