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언젠가 동남아시아에 큰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 수십만 명이 사망했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일터와 살아갈 집을 잃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정말로 경악할 일이 있었다. 고아가 된 어린아이들을 사창가 뒷골목으로 팔아넘기는 인간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자기 배를 불리려는 파렴치한 인간.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그래서 세상을 불행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악성 바이러스. 이런 자들이 있어서 세상은 아프고 슬프다.

그래도 성탄절은 다가온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죄인들을 방문하신 사건이다. 왜? 자신의 생명을 죄인을 위해 대속제물로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나눔으로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예수님의 생명 나눔은 사단의 쇠사슬을 끊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인 ‘떡’을 나누어 먹는다. 예수님의 거룩한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 비록 한 사람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었지만, 온 인류는 마귀와 죄에서 해방되는 큰 기쁨을 누린다.

얼마 전에 신문 헤드 타이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작은 후원 큰 일 한다”. 한 개인에게는 ‘푼돈’이지만, 이것이 십시일반 모이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다. 이렇게 모인 후원금은 이웃 사람들을 따뜻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가 기억할 말이 있다. “밥 한 술도 모으면 한 그릇이 나온다.”

올해 67세 여성인 이서원 씨가 있다. 1970년대 서울에서 남편과 섬유사업을 했다. 그런데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1980년대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가 요구르트 아줌마가 되었다. “사모님 소리 듣고 살았는데, 처음에는 창피해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녔고, 요구르트 손수레를 끌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요구르트 배달 일이 벌써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김치를 나누면서였다. 2001년 부산지점에서 20명의 요구르트 아줌마들이 김치를 담가 나누기 시작했다. 그 이후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한다. “한 알의 밀알이 수많은 열매를 맺어 꽃이 피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에요. 요즘 무척 많이 기쁘고 놀라고 가슴 벅차요.”

행복한 인생 재미있는 삶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에서 피어난다. 큰 걸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작은 것이어도 좋다. 나누려는 사랑의 마음만 앞서면 된다.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교회 로비에 ‘사랑의 선물나눔’ 코너를 만들었다. 말구유에 누운 예수님을 중심으로 데코를 했다. 그리고 그 옆에 ‘사랑의 선물나눔’이라는 함을 만들었다. 장년 성도들이 1~2만원 선에 해당하는 선물을 준비해서 넣도록 한다. 정성스런 카드나 편지를 덧붙이면 더 좋으리라. 그 선물들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상황을 봐서 이웃들에게 나눌 수도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작은 나눔에서 다음 세대들은 어른들의 사랑을 경험하겠지. 이웃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겠지. 그래서 세상은 행복을 행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겠지. 외롭고, 아프고, 슬픈 사람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재밌는 글을 보았다.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에 ‘옛집’이라는 허름한 국수집이 있다고 한다. 달랑 탁자 4개 뿐이다. 주인 할머니는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그 멸치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10년이 넘게 국수 값을 2천원에 묶어놓고서도 면은 무한 리필. 몇 년 전에 이 집이 SBSTV에 소개된 뒤, 한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리고 그 사연을 이렇게 말했다.

15년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아내까지 남편을 떠나버렸다. 용산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구걸했다. 그러나 가는 음식점마다 그를 쫓아냈다. 그는 잔뜩 독이 올라 식당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국수집에까지 가게 되었다. 분노에 찬 모습으로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아갔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다. 괜히 콧등이 시큰했다. 허겁지겁 두 그릇을 먹어 치운 후, 돈이 없어 계산도 안 하고 냅다 도망쳤다. 그때 할머니가 쫓아 나오면서 소리쳤다. “그냥 걸어가. 뛰지 말고. 다쳐!”

마음이 푸근하다. 눈물이 찡하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갈 용기가 나는 건 이런 사람들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세상이 더 흉악해지는 걸 막는 건 이런 사람들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손을 움켜쥐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움켜쥐고자 하는 소유욕은 모든 인간에게 흘러내리는 DNA처럼 느껴진다. 손을 펴는 게 익숙하지 않다. 그런데 김혜자 권사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며, 이 사랑의 나눔이야말로 그 어떤 전쟁과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믿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사랑의 실천가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아프고 슬픈 사회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건강하고 아름답다. 성탄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한, 유일한 구세주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