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장을 보면 바울은 자신의 직분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하였던 것을 보게 된다. 오늘 목회 현장이나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이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한번 되살펴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첫번째, 바울의 삶의 태도는 직분이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 “거리낌 없는 일꾼”으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거리낌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 정직하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인데, 오늘 한국교회는 거리끼는 일들이 아주 많다. 종교 권세 남용, 성윤리 문제, 심각한 재정난, 재정 운용의 문제, 세속화로 인한 목회자의 영성의 타락, 대량 생산된 목회자의 인격적 결함, 교회 세습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교회와 목회자의 직분은 매우 훼방을 받고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직분이 훼방을 받고 있지만, 이 일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무관심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세속적 현상에 발맞추어 나가거나 오히려 앞서 나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당사자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이것이 가장 큰 근심이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보다는 자기의 아성을 쌓는 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두번째, 바울은 모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참고 견디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고후 6:3-5)

한국인의 빨리빨리 조급증은 일반화되어 있다. 누구에게인들 참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필자는 관료주의 삶의 현장에서 서류 한 장 떼기 위하여 세 시간을 기본적으로 기다리는 일들이 허다하다. 처음엔 적응이 안 되어 포기하고 돌아서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년을 그렇게 다니면 화병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참고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체득하게 된다.

살다 보면 참아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역자가 참고 견디는 것은 직분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이유 때문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사명이라는 것이 일보다는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인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삶이 아닌 일로 가게 되면 많은 경우, 이미 언급한 인격적인 문제와 영성의 문제 재정의 문제와 윤리적 타락 등이 나타나게 된다.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의 한결같은 태도는 참고 견디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이 어쩌면 나약한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비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억울함과 분노가 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의 최종의 선택이었고, 십자가의 길이었다. 직분에 대한 바울의 태도가 얼마나 겸손한가를 배우게 된다

세번째는 영성이다. 많은 참음과 수고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충만하심과 말씀으로 무장하기 위하여 매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고후 6:6,7) 직분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일반 성도들은 자신들의 직장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문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밤잠을 못 자고 자기의 일을 감당한다. 그렇지 않으면 퇴출당하고 경쟁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규칙이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에 반하여 거룩한 직분자들은 풍성한 영성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생명력 있는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신실하게 준비하고 있는가? 자기 생각에 도취되어 있는가? 아니면 내용도 없는 것을 지루하게 주절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어떤 이들은 새벽부터 시작하여 밤 늦게까지 눈코뜰새 없이 바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적당하게 놀고 먹지는 않는가? 바울의 태도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도자들에게 주신 직분이 훼방을 받는 이유를 일상적인 교회 생활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교회와 직분이 훼방을 받을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1. 교회가 너무나 화려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고급화되고 있는 것은 시대와 문화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반드시 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은행빚을 내어 곧바로 교회증축이니 리모델링이니 하면서 공사판을 벌이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야 부흥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데, 오히려 속은 텅 비고 겉만 화려한, 회칠한 무덤이 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편리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예배하고 누리는 것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없이 재정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재정에 대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허탄하게  행하는 일들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입장과 상황이 서로 다 다르겠지만, 사회는 다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좋겠다. 철저한 청지기 의식을 가지라는 말이다.

2. 성공주의 의식이다. 물질주의 자본주의 사고는 잘 사는 것, 행복한 것,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신앙의 목적, 우리의 평생 기도제목이라면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닌가? 그렇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따라간다면 그것 역시 오류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그러한 복보다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함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데도 세상이 추구하는 복 이야기만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세속적인 복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복음이 훼방을 당하는 경우일 것이다.

3. 거룩한 직분임을 생각할 때에 좀더 품위 있는 삶의 태도는 가질 수가 없을까? 세상이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태도는 가질 수 없을까? 목사들의 모임에 가보면 너무나 시끄럽다. 식당에서나 아니면 사우나탕에서 말이나 행동이 일반인과 전혀 구분이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김 목사”, “박 목사” 큰 소리로 부르면서 말과 행동은 너무나 천박하다. 옆에 누가 있건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을 험담하는 꼴, 아니면 세계여행 다녀온 이야기, 참으로 부끄러워서 봐줄 수가 없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것이 직분에 훼방을 가져다 주는 세속적인 사고요, 기본적인 경건훈련도 안 되어 있는 저급한 일이 아닌가? 천사도 흠모할 만한 직분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는 있는가? 필자도 별 수 없는 필부에 불과하고 이런 소리를 할 자격도 없으면서 괜스레 떠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 모두가 직분자로서 함께 스스로를 다듬어 가자는 소망의 소리인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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