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성도(聖都)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전도를 시작했다. 당시 정통 유대인들은 정규 랍비학교 과정도 마치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가 감히 성경과 신학을 지도하는 것에 대해 조롱과 의혹을 보냈다. 어떤 유대인들은 주님을 향해서 귀신 들린 사단의 수하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 매달리기 6개월 전쯤, 초막절(주후 29년경) 야밤에 주님을 직접 찾았다(요 3:1, 2). 니고데모(Nicodemus)는 ‘이긴 백성’ 이라는 의미를 지닌 정통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의회(Sanhidrin) 의원이었다. 동료 의원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늦은 밤을 주님과 만나는 시간으로 선택했다. 1세기 당시 산헤드린공의회와 예수 그리스도는 상호 대적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남에게 드러나는 것은 공의회원 직위해제에 해당됐다. 아직 신앙이 연약한 니고데모는 하나님보다는 사람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니고데모는 세례 요한의 설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이적을 직접 목격했다. 말라기 선지자 시대 이후, 매우 보기 힘든 기적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났다. 나사렛 출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탁월한 선지자요, 선생으로 확신했다.

그는 간접적으로 들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 속에서 거듭나는 방법, 속죄의 도리 및 구원의 도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 1세기 당시 정통 유대 종교에는 구원에 대한 성경적 교리가 정착되지 않았었다. 유대인 학자 니고데모 마음 속에 들어있는 이성적 탐구에 대한 열정이 크게 발동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야밤에 자신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았다. 거듭남, 속죄 및 구원은 오직 성령 하나님에 의해 선물로 받은 영적 믿음으로만 결정된다고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 3:5)고 말씀했다.

이성적인 학자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가 설명하신 성경적 구원론(중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영적인 진리를 육신적 원리로 단순하게 수용하고,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인문학자 니고데모는 사람이 지닌 이성적 능력에 대한 한계를 첨예하게 드러냈다. 자신을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소개하면서 구원(중생)에 관한 초보적 지식도 없느냐고 주님은 니고데모를 책망했다(요 3:1-21).

니고데모는 나사렛 출신 예수 그리스도를 산헤드린 공의회가 랍비로 정당하게 취급해 줄 것을 주장했다. 직접 만나본 결과 예수 그리스도는 당대의 정통 랍비들보다 훨씬 능력있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구약 시대 유수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예언된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가르치며, 선언했다.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변호하고 다니는 니고데모를 나무라며 크게 핀잔했다(요 7:50-52).

초막절에 니고데모가 직접 방문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6개월이 지나, 주님은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됐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사악한 음모를 통해 로마 황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내란음모 죄를 모두 수용한 결과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도하고 선택한 12명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거의 모두 두려워서 도주했다. 니고데모와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 아리마대 요셉이 함께 들어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돌무덤에 매장했다(요 19:39).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손수 매장했다는 사실이 산헤드린 공의회 당국자들의 귀에 들어가면 생업을 잃고, 이스라엘 통치부에서 쫓겨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명과 직업을 예수 그리스도와 바꿔도 전혀 손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니고데모의 이성적인 탐구능력이 영적인 권위로 변이됐다.

전승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크리스천이 돼 그리스도에 대한 수난과 죽음에 대한 복음서를 남겼다고 한다. 위경(僞經) ‘빌라도 행전’이나 ‘니고데모 복음서’ 등이 니고데모의 저술이라 전해진다. 학자 니고데모는 자신의 마지막 삶을 오직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파하며, 전도자로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됐다.

지상에서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며, 그것의 끝을 어느 누구도 가늠할 수 없다. 사람의 숨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은 인생 전체를 결산하는데 매우 중요한 순간이 된다. 신실한 크리스천 니고데모 처럼 하나님 주신 숨을 지상에서 거두기까지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영예와 육신적 안위를 위해 살다가 마지막 죽음을 만날 수도 있다. 참된 크리스천은 오늘을 마지막 날로 생각하고, 교회중심 말씀중심 이웃중심의 삶을 인생의 유일한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