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김 박사(美 쉐퍼드대학교).
가나 혼인 잔치의 여자

지난주에 우리는 창세기 3:15절 여자의 후손의 예언이 어떻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적용되는지를 살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심을 성취하시면서 마리아, 당신이 바로 그 여자이고, 내가 그 여자의 후손입니다라는 말씀하시는 암호가 담긴 말씀을 십자가에서 하셨다는 것을 살폈다.

그러나 “여자여”에 대한 비밀 암호 해독을 위한 근거는 구약 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발견된다. 오늘은 그 여자가 어떻게 신약에서 발견되는지, 신약의 두 책 중에서 한 책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 두 책들은 신약에서 매우 중요한 책들이다. 이 책들은 같은 중요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한 사람에 의하여 쓰였다. 그 책들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이다. 요한계시록이 단어나 문체를 연구한 이들 중에서는 요한 사도가 아닌 다른 요한이 썼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용에 있어서 깊은 암호의 일관성은 동일한 저자를 가리키고 있다.

먼저 요한복음을 살펴 보자. 구약에서는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의 예언과 연관이 된다면, 신약에서는 요한복음의 첫 기적과 연관된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여자여라고 언급하신 상황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은 바로 어머니 마리아의 친척 결혼식에 손님으로 초대 받은 곳에서였다. 유대 혼례의 격식상 포도주를 하객들에게 주어야 하는데 포도주가 떨어졌다. 그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한다. 이 때 예수님은 매우 의외의 말씀을 하시는데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장면을 놓치면 암호가 해독이 되지 않는다. “여자여(구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한복음 2:5). 여자여라고 부를 뿐 아니라 답에 있어서도 동문서답이다.

그러나 마리아 또한 동문서답을 한다.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행하라고 말한다. 그 아들에 그 어머니와 같은 행동이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가 자신의 청을 거절치 않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존중했었던 과거의 경험들에서 오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요청을 존중하여 하인들에게 큰 여섯 항아리에 물을 채우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게 하신다. 그것을 마신 연회장은 가장 맛있는 포도주라고 기뻐한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첫 기적에서 우리가 먼저 주목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신 동일성이다.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시면서 마리아를 지칭하여 “여자여”라고 쓰신 것과 십자가에서 마리아를 지칭하시면서 “여자여” 라고 쓴 것은 매우 중요한 대칭의 비밀을 내포하고 있다. 비밀의 핵심은 때와 혼인, 그리고 기적으로 요약된다.

먼저 때에 대하여 살펴보자. 첫 기적에 있어서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여자여” 라고 부르시며 “아직 자기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마리아를 다시 “여자여” 라고 부르신다. 왜 그러셨을까? 첫 기적에서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부르셨던 예수님은 십자가 상황에서 다시 “여자여”라고 부르심으로 마리아가 첫 기적의 상황을 기억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마리아는 “여자여”라고 부르는 의외성과 의미를 그 때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로 하여금 기억하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때에 관한 것인데 이제 그 때가 무르익었고, 완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는 여자가 불림으로 여자의 후손이 왔음이 처음 선포된 이후, 이제 십자가에서 다시 여자가 불림으로 완성되는 때이다. 그리고 이 때는 창세기부터 달려와 이제 십자가에서 완성되는 때이다. 여자라고 부른 것의 암호를 가장 잘 이해할 사람이 바로 마리아였다. 이것을 우선은 마리아가 알기를 원하신 것이고 또한 오늘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기를 원하신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혼인 잔치와 기적에 관한 것이다. 처음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불렀던 상황은 공생애 시작의 혼인 잔치였고, 첫 기적을 행하시는 시점이었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다시 “여자여”라고 부른 것은 마리아로 하여금 혼인 잔치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키시며 예수님께서 지금 다른 차원의 혼인 잔치를 준비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이것은 신부인 인류와의 영적 혼인 잔치를 위한 준비로써의 십자가 지심의 상징성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히브리어로 여자는 이샤 혹은 이쉬샤('ishshah)는 여자라는 뜻과 아내라는 뜻을 같이 내포하고 있다. 영적인 비밀 속에서 모든 인류는 신랑되신 예수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왜 십자가가 영적 혼인 준비인가 하면 예수님께서 사랑의 관계 속에서 모든 인류를 신부 사랑하듯이 하시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관계를 인하여 예수님께서는 신랑이 신부를 맞이 하듯 사랑하신다는 표현을 스스로 하신다. 훗날 새 예루살렘에서 혼인 잔치가 있다고 계시록에서 또한 밝히신다(요한계시록 19:7-9, 21:2).

다른 중요한 관점은 기적의 내용에 있다. 첫 기적을 베푸신 인간의 결혼식에서 예수님은 여섯 통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주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찬의 개념을 통하여 포도주가 자신의 피임을 말씀하신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일곱 번째 포도주 통이 되시는 셈이다. 이것은 자신을 포도주와 빵으로, 성찬으로 내어주신 것을 통하여 확인되는 바이기도 하다.

가나 혼인 잔치의 6통의 포도주는 6일간의 노동과 노동 후의 만찬을 의미한다. 끝없는 노동이다. 배가 차지 않는 만찬이다. 그러나 7번째 포도주 통이 상징하는 것은 안식과 성찬이다. 선물로 오는 안식, 그리고 존재의 완성을 위한 성찬. 이것의 중요성은 존재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써 인간이 되신 것도 존재의 변화였고, 이제 죽으시는 것도 존재의 변화에 대한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은 모두 기적 중에 기적이다.

인간에게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킴으로써 더 나은 것으로의 변화를 암시하신 다면, 예수님은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는 낮은 단계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성도들로 대변되는 신부들을 맞아들일 혼인 잔치를 예비하러 천국으로 돌아 가시는 상황에서 인간들이 예수님께 드린 것은 해융, 즉 스폰지 같은 것에 적신 신 포도주였을 뿐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과 우리가 예수님께 드리는 것의 확실한 대조이다.

요한복음이 첫 기적이라고 언급하는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라고 부르는 장면은 매우 의외이다. 왜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라고 불렀는지에 대한 이유를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십자가가 없으면 알 수가 없다. 십자가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자라고 다시 부르심으로 예수님은 마리아로 하여금 첫 기적의 상황에서 자신이 어머니를 여자라고 의외의 명칭으로 부른 상황을 기억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 요한복음 첫 기적이 십자가에서 완성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이렇듯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고 성경의 기록은 너무나도 놀랍게 정확한 암호적 구조와 장치를 가지고 있고, 그 암호는 정확하게 해독됨으로 예수님의 말씀의 뜻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다음주엔 요한계시록을 살펴보자. 여자의 주제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복음서를 지나 계시록에서 완성되게 되어 있다(다음주에 계속).

이 글은 <크로스 코드>의 출판사 비전 북 하우스 제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