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부티 시에 도착한지 나흘째 되는 날 오보크(Obock) 행 연락선을 타기 위해 에스칼라 부두로 갔습니다. 오늘은 틀림없이 출항하는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튿날 출항한다는 것입니다. 자세히 알아보니까 출항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승선(乘船) 인원수에 따라 출항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경과지에 불과한 지부티에 하루 체재비 3만원 이상을 지출하면서 사나흘 이상 머물러 있는 것이 빈주머니의 순례자에겐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인구 48만 명의 작은 나라 지부티의 수도 지부티 시의 야채 시장. 지부티는 한여름에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올라간다.

순례자는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형통의 길을 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상기하면서, 주께서 나로 하여금 이곳에 더 머물게 하시는 뜻이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시장에 들렸는데 암(暗)달라 상 아낙네들이 나를 향해 ‘달라 체인지!’ ‘달라 체인지!’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지부티에서는 암달라 상이 관청의 제재를 받지 않고 공공연히 영업이 허락된 나라입니다. 순례자가 무관심한 채 그들 앞을 그냥 지나치니까 한 여자가 느닷없이 사담 후세인을 찬양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저주하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바로 두 주일 전인 지난 3월에 미국이 이락을 침공한 것을 두고 나에게 화풀이를 한 것입니다.

“알라(하나님)여, 당신의 자비로 사담 후세인을 지켜주소서!”
“알라여, 사탄의 왕 부시를 지옥으로 던져주소서!”

전체 인구 가운데 96퍼센트가 순니파 모슬렘인 지부티인들은 모두가 사담 후세인을 지지합니다. 어쨌든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대표적인 ‘악(惡)의 추축국’의 하나인 이락을 침공한 부시 대통령의 결정을 기독교인의 양심에서 동의하고 찬성한 순례자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차린 그 여자의 혜안(慧眼)에 나 자신도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미국의 CNN은 이락에서의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선전(善戰)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락 남부 도시 바스라는 영국군에게 완전 함락되었고 바그다드 일부도 미국군에게 점령되었습니다. 텔리비전에서는 이락 시민들의 요청으로 미 해병대가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제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순례자는 마침내 에스칼라 부두에서 오보크 행 연락선에 올랐습니다. 부두에서 승선하기 전에 에리트리아까지 간다는 나이가 18살 쯤 되어보이는 소년 무함메드를 사귀었습니다. 에리트리아에 사는 친척 어른을 찾아간다는 무함메드는 내 자전거를 배로 옮겨주는 등 친절하고 인상 좋은 소년이었습니다.

우리가 탄 연락선은 여객선이라기보다도 어쩌면 어선에 가까운 선박이었습니다. 이 연락선은 건조한지 30년 이상된 배로 항해 중 높은 파도를 만나면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만 같은 아주 낙후된 배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바닷바람이 평일과는 달리 유난히 세게 분다고 했습니다. 출항한지 반시간 쯤 되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1미터 안팎의 파고(波高)가 일면서 배가 앞뒤로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데 이러다가 배가 전복하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죄어왔습니다.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막의 순례자로서는 예상했던 일이 실현되었을 때를 상상해 볼 수도 있는 일입니다. 불현 듯 죽음을 생각하니까 두려움이 앞서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주님, 주님 일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물귀신이 되도록 저를 버리시지는 않겠지요? 저 는 수영을 못하니까 배가 뒤집히면 그 길로 그만 목숨을 잃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목 숨을 말입니다.”

순례자는 이렇게 하소연 반, 기도 반 중얼거리며 만일의 경우 구명부표(救命浮漂)가 되는 무슨 잡을 것이 없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아, 거기 바로 눈앞에는 바로 조금 전만해도 보이지 않던 하물(荷物)이 눈에 띄었습니다. 불과 2미터도 되지 않는 눈앞에는 30kg 안팎으로 짐작되는 비닐 그물의 감자 포대 대여섯 개가 쌓여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남아메리카 프랑스령 어느 무인도에서 종신 징역을 살던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스티브 맥퀸이 구명선(救命船)으로 이용했던 것과 똑같은 감자 포대였습니다.

감자 포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나를 구해주시기 위해 예비해주신 구명부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승선하여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내 앞에는 이미 분명히 감자 포대가 쌓여 있었는데도 영적으로 눈이 먼 내 눈 앞에는 감자 포대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삶의 위기를 모르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모르고 있을 때는, 바로 눈 앞에 있는 구명부대가 눈에 띄이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날 오보크로 항해하던 날, 만일 배가 파선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감자 포대를 내 것으로 미리 점찍어 놓은 내 마음은 그리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생명의 부표가 되시는 주님,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