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 족의 대표적인 전사의 모습. 지난날에 아파르 족은 동 아프리카에서 가장 잔인하고 호전적인 유목민이었다.
호텔방 천장에 매달려 요란하게 돌아가는 선풍기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덥고 우중충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웬 소리가 그리도 큰지. 그리고 나사가 풀린 듯 더덜거리며 돌아가는 품이 금방이라도 선풍기 날개가 축에서 빠져나와 팔베개하고 누워있는 내 면상을 덮칠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바로 옆방에 투숙 중인 내 나이 또래의 영국인 여행가 하틀리 씨를 불러냈습니다. 크리스천이면서도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에 가까운 아마추어 지질학자인 그와 어디 가까운 노변 찻집에 가서 시원한 망고 주스를 한 잔 사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는 며칠 전에 에티오피아의 다나킬 지방 여행을 마치고 지부티 시에 도착했는데 한 달 간 수염을 깍지 않았다는 그의 행색은 마치 패잔병과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직 4월 초순인데도 지부티의 한낮은 폭염이 내려쬐는 찜통 더위였습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이곳 지부티 시에서 서북쪽으로 1백50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부터 지부티와 에티오피아 및 에리트레아 국경을 낀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한여름 낮 12시 섭씨 50도)으로 알려진 ‘다나킬 사막 지방’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스터 강, 이 근처에 야만족이 살고 있는 거 아시오?”

하틀리 씨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맥주를 청하고 나는 망고 주스를 시켰습니다. 망고 주스 한 잔 값이 150 DF(지부티 프랑-한화로 약 1천원-)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늘 300원을 주고 사 마신 것과 비교하면 무척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여행 중에 아프리카에서 ‘과일의 여왕’으로 일컫는 망고의 특유한 향미(香味)에 반해버린 나로서는 값비싸고 값싼 것에 상관할 바 아니었습니다. 한 해에 서너 달은 세계의 오지를 떠돌아다닌다는 하틀리 씨는 사막의 베두인 처럼 가무잡잡하게 탄 얼굴에 주름살이 깊이 벤 그런 남자였습니다. 그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미스터 강, 그 야만족이 누군지 아시오? 그 아파르 족의 관습은 참 희안합디다. 결혼하기 전에 신랑은 신부에게 다른 남자의 불알을 보여줘야 한답니다. 사람의 불알을 말입니다. 그건 누군가의 불알을 칼로 베어서 그 불알이 썩지 않도록 잘 말려 보관해두었다가 청혼 기간에 그 불알을 신부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미스터 강, 다나킬의 아파르 족 사회에서는 남자 아이를 낳으면 출산 선물로 무얼 주는 지 아시오? 칼입니다. 보통 칼이 아니라 초승달처럼 굽은 단도나 비수를 말이오. 다나킬 선교 여행 중에 당신이 아파르 족 남자들에게 붙잡혀 불알을 거세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소? 붙들리지 마시오! 붙들리면 당신은 그것으로 끝장 납니다”

하틀리 씨는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얹어 놓고 불알을 칼로 베는 시늉을 했습니다. 소름이 끼쳤습니다. 사타구니 사이로 불알이 베어지는 알알한 아픔이 머리 속에 감전되고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망정이지 만일 추운 날씨였더라면 사지가 사시나무 떨 듯 떨었을 것입니다.

하틀리 씨는 아파르 족의 불알 거세 이야기가 성이 차지 않았는지 다른 유사한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아디스 아바바 국제공항 건물 유리창에 착색 그림을 그린 어느 유명한 화가-그의 이름을 정확히 듣지 못했다-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다나킬 지방을 여행 중에 사막 길에서 칼과 총을 휴대한 아파르 족 남자들에게 붙들렸습니다. 비적들이 아들의 하체를 벗기고 칼로 불알을 베어내자 겁에 질린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아들은 거세를 당한 채 사막의 길섶에 버려져 사경을 헤맸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장성하여 유명한 화가가 되었지만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비정한 아버지를 찾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