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한국인들이 모이는 집회에 한국 전문 찬양팀이 와서 인도하는 모습을 보며 몇 가지 생각을 나눈다. 찬양은 예배 중에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크고 중요하기에 공적이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도자의 취향이나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교회력에 근거하고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찬양을 들어 보면 대체적으로 찬양이 시끄럽다. 강한 드럼과 베이스기타 등으로 강력한 비트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너무 정신이 없다. 북 치는 소리를 듣노라면 하나님을 생각할 수도 그분의 능력이나 행하신 일을 찬양할 수도 없다.

인도자들의 멋진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기만족과 도취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감성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무지 종교적 거룩성을 찾아볼 수 없다. 시장통에서 들려 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정교회의 찬양을 들어 보았는가? 모스크바의 구세주 사원에서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예배가 진행된다. 신부의 메시지가 낭독되고, 거기에 화답하는 찬양이 예배당 꼭대기 층에서 울려 퍼진다. 소수의 중창단이 부르는 아카펠라 찬양은 그야말로 천사들의 합창으로 들리는데,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악기가 전혀 없다. 매우 경건하고 신비하고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 준다. 찬양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느끼는 순간이다. 사람의 심령을 울리는 선율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임을 알게 한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요즘 개신교에서는 거의 모든 교회들이 찬양을 위한 악기들을 잘 갖추고 있다. 디지털 악기, 드럼, 최고급 스피커 등을 보면 대부분 수천 수억 원이 넘어가는 고급 장비들이다. 음악인들은 악기가 생명이라고 하여 최고급을 찾고, 교회는 또 예배를 위한 것이라고 하여 아낌없이 투자한다. 어느 교회에 가나 찬양단이 구성되어 있고, 북 치고 장구 치며 노래하고 있다. 감정을 북돋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느낌이다. 어찌 이렇게 동일하단 말인가?

한국에서 어떤 형제들이 단기사역 차 현지 경험을 위하여 방문하였다. 지방의 교회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현지 목회자의 차를 타고 가면서 찬양을 틀어 주었는데, 러시아 말을 모르는 형제들이 한참을 듣고 가다가 이게 무슨 곡이냐고 질문한다. "현지 목회자가 이렇게 디스코·록 음악을 듣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 음악이 아니고 찬양곡이라고 하였더니 매우 놀란다. 러시아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음악 소리와 비트만 들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한국교회의 찬양이 대부분 이렇다고 했다. "하나님" "은혜" "사랑" 등의 단어를 빼면 팝송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고. 종교성도, 차분함도, 영감을 주는 감수성도 없다고.

한국 어느 교회에서는 현대 예배음악과 찬송가에 나와 있는 것을 적절하게 나누어 부른다. 공예배에서 너무 현대적이고 음이 높고 빠른 곡만 부르면, 중·장·노년은 구경만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고전·현대 찬양을 배합하여 인도하면, 모두가 마음을 열고 즐겁게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리 좋은 곡이라도 공동체가 공감하지 못하면, 그것은 그들만의 즐거움인 것이다.

현대적 찬양은 많은 경우 인도자들이 흥분하고 뛰면서 흥을 돋우려 하지만, 청중이나 참석자들의 태도를 살펴보라. 과연 몇 명이나 인도자들과 동일한 마음으로 뛰고 흥분하는지. 찬양의 초점을 감성(?)에 맞추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열광적으로 북을 두드려 대고, 비트를 강하고 빠르게 하여 감정을 북돋우며, 별로 와 닿지 않는 좋은 이야기나 멘트만 지루하게 계속하는 듯하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모습일 수 있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창조적 태도 역시 예배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찬양이 예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더욱더 창조적·영적이 되어야 하고 찬양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혹시 영감 있는 찬양예배를 보지 못하여서 이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한국교회 대부분의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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