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호프베이베르 연못에 자리
브뢰헬, 포터, 루벤스, 렘브란트,
루이스달, 베르메이르, 홀바인 등
위대한 미술가들 명작 볼 수 있어

마우리츠하우스
▲마우리츠하우스에서 ‘델프트 풍경’을 감상하는 방문객들.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도시와 도시를 잇는 고속열차인 ‘인터시티’ 기차에 몸을 싣고 댄 하그(헤이그)로 향했다.

댄 하그 중앙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몇 정거장 못가 하차한 후 천천히 거리를 걷다 보니 호프베이베르 연못가에 자리한 고풍스런 마우리츠하우스(Mauritshuis)가 눈에 들어왔다.

마우리츠하우스는 우리가 예상하는 웅장한 미술관이 아니다. 아담하지만 수준 면에서는 세계 굴지의 미술관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이곳은 빌럼 왕가가 소장했던 네덜란드 황금시대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최적의 문화공간이다. 피터 브뢰헬, 파울러스 포터, 루벤스, 렘브란트 반 레인, 야곱 반 루이스달, 요하네스 베르메이르, 한스 홀바인과 같은 네덜란드 및 플랑드르 미술가의 명작들을 볼 수 있다. 프랑드르와 북부 네덜란드 지역의 뛰어난 작품이 먼 길을 달려온 여행객의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마우리츠하우스는 나사우 시겐의 백작이었던 요한 마우리츠(Johan Maurits, 1604-1679) 이름을 따서 명명된 곳이다. 건물은 암스테르담 왕궁을 설계한 반 캄펜(Jacob van Campen)에 의해 건축되었다. 그 건물이 현재의 마우리츠하우스의 모태가 된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택은 1704년 큰 불이 나는 바람에 골조를 제외하고는 전소되어 전면적인 개조가 불가피했다. 건물은 천장과 벽난로를 포함하여 새로운 인테리어로 말끔히 단장되었고, 네덜란드 정부가 1820년 이곳을 빌럼 왕가의 미술관으로 운영하기까지 주정부의 영빈관으로 사용되었다.

마우리츠하우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우스.

마우리츠하우스가 미술관으로 운영 방침을 정해 문을 연 것은 1822년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왕가의 좋은 컬렉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빌럼 5세(William Ⅴ, 1748-1816)가 지녔던 작품들이 핵심을 이루었지만, 대부분의 17세기 회화는 선조인 프레더릭 헨드릭(Frederik Hendrik)과 부친인 빌럼 4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거나 프랑스 침공으로 흩어진 것들을 재구입한 것이었다.

빌럼 5세는 유년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수집에도 열심이어서, 그가 마우리츠하우스를 오픈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구입한 것중에는 얀 브뤼헬(Jan Brueghel)과 파울 루벤스(Paul Rubens)의 <타락에 빠진 에덴동산>(The Garden of Eden with the Fall of Man, 1615)이 있다.

창세기 장면을 테마로 한 이 작품은 인체묘사에 뛰어난 루벤스가 아담과 하와를, 그리고 정교한 묘사에 탁월한 솜씨를 지닌 브뤼헬은 꽃과 풍경, 동물들을 각각 그렸다. 1766년 빌럼 5세가 구입한 이 작품은 보존상태가 좋아 오늘날까지도 선명한 색상과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대가는 <에덴동산>을 모티브로 수십 점을 제작했는데, 그만큼 주문이 폭주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과 함께 여러 동식물들이 등장한다.

아담과 하와 주위에 강아지, 토끼, 공작, 원숭이, 다람쥐, 새가 등장하고 배경에는 낙타, 사자와 호랑이, 사슴, 물고기, 천연 오리, 들소, 백마, 하늘을 나는 새 또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 등이 출현한다. 인간의 불순종만 없었더라면 세상은 실로 다채롭고 아름다운 생명체들의 어우러짐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온갖 피조물들이 즐거움을 누렸으리라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빌럼 5세가 구입한 것은 아니지만 요하네스 베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델프트 풍경>(View of Delft, 1660-1661) 역시 마우리츠하우스가 자랑하는 소장품 중 하나다.

마우리츠하우스
▲요하네스 베르메르, 델프트 풍경, 캔버스에 유채, 97x116cm, 1660-1661, 마우리츠하우스.
네덜란드 황금기 유명한 풍경화로 손꼽히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 흐리지만 빛나는 장엄한 하늘, 그리고 건물이 물에 반사되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마을 풍경은 수백 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베르메이르의 덕분에 찬란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도 없는 것 같지만 부드러운 미풍은 물 표면을 살짝 흔들어놓고 있으며, 마을 위로 높이 떠다니는 구름에도 햇살은 교회의 첨탑과 지붕을 비추고 있다.

하늘과 마을의 강한 대비는 베르메이르가 구름 아래 마을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줌으로써 풍경의 깊이를 더해준다. 마을을 모티브로 한 풍경화에서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빛을 향하고 있는 장면 속으로 이끌리게 된다.

빌럼 5세는 소장품을 모으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자신의 컬렉션을 일반에게도 공개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네덜란드 최초의 공공 미술 전시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빌럼 5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에 대중에게 소장품을 공개하는 식이었지만, 그때의 문화로 보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도였다. 이 정책은 네덜란드 미술관 역사상 이정표가 되었다.

빌럼 5세의 뜻을 이어받아 왕 빌럼 1세 (King William Ⅰ, 1772-1843)는 1816년 소장품 모두를 국가에 기증하였다. 이로써 컬렉션의 권리는 로얄 회화 갤러리로 이전되었다.

이후 미술관 신임 관장이 취임하면서 꾸준한 진척을 보였는데, 스틴그라흐트 반 우스트카펠레 (Steengracht van Oostkapelle) 시대에는 120여 점이던 빌럼 5세의 회화작품을 250점으로 확충해 소장품의 범위를 넓혔는가 하면, 아브라함 브레디우스(Abraham Bredius), 빌럼 마르틴(Willem Maarten) 등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매번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도,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으로 형성된 네덜란드 회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미술을 연구하는 필자로서는 뜻깊은 일이었다.

20세기 초 마우리츠하우스를 찾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밝힌 소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델프트의 풍경’을 본 이래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921. 5. 1)

서성록
▲서성록 교수.
서성록 명예교수(안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