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신학의 정립을 위한 노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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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칼빈의 예배 신학과 목회적 적용 (6)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김재성 박사(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5. 예배 신학의 정립을 위한 노력들

종교개혁의 대열에 가담한 초기부터 칼빈은 예배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가 일생 동안에 교회의 개혁과 바른 예배의 정착을 위해서 노력한 과정들을 매우 중요한 순간마다 펴낸 역사적인 문서들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1536년에 칼빈이 펴낸 최초의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 설교, 주일 시행되는 성만찬에 관해서 예식적 개혁을 주장했다. 칼빈은 교회의 건설을 위해서 공적인 예배의 예식들을 오직 성경에 지시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구성하고자 대안을 제시하였다. 『기독교 강요』초판본에서는 간략하게 성례에 관해서 설명하되,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에 있는 다섯 가지는 모두 다 거짓 성례들이라고 배척하였다. 칼빈은 세례와 성만찬을 다루면서 적어도 매 주에 한번은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주일에 시행되어야 할 예배의 순서에 대해서 설명하였고, 성만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의 성만찬 신학은 거의 미신적으로 “실재적 임재” (real presence)를 가르치는 로마 가톨릭 미사의 우상숭배을 거부하면서, 루터파의 공재설과도 거리를 둔다. 또한 칼빈은 츠빙글리와 외콜람파디우스의 기념설에 대해서도 차별화 되는 성경의 가르침을 제시한다: 곧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spiritual presence)를 강조한다. 칼빈은 처음 성례 신학을 정립하고 서술할 때부터, 매우 목양적으로 전개하였다. 사람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우기 위하여 주시는 영적인 음식이라는 점을 신약에서 인용하면서, 성례가 주일 오전 예배 설교 후에 집례 되어야 할 것과 예식이 시행되는 도중에는 혹 시편들 중에서 선별된 곡을 찬양한다거나, 아니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제시 했다.

1536년 5월 21일, 기룜 파렐 (Guillaume Farel)의 지도력에 따라서 제네바는 도시 전체가 종교개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536년 여름부터, 파렐의 강권으로 제네바에서 설교자로 봉직하게 된 칼빈은 종교개혁이 교회의 공예배에서부터 성취 되어지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다.

1537년 1월 16일, 제네바의 목회자들, (파렐, 칼빈, 꾸롤)은 『제네바에서 예배와 교회의 조직에 관한 규칙들』) (Articles concerning the Organization of the Church and of Worship in Geneva) 시의회에 제출하여 큰 어려움 없이 채택되었다. 이 글에서, 제네바 목회자들은 도시 내에 있는 모든 교회들을 확고하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했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법령과 질서를 제정하여 구체적인 사항들을 실천하고자 했는데, 성만찬을 자주 실행하는 것, 교회의 거룩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출교까지를 포함할 것, 시편 찬송을 부를 것, 자녀들에 대한 교육, 그리고 결혼에 관한 규정들을 제정할 것 등이었다.

제네바 종교개혁의 기본 구조를 보여주는 이들 규칙들 중에서 주목할 부분들이 있다. 하나는 교회가 성만찬 예식을 적어도 매 주일마다 시행해서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시편 찬송의 회복이다. 중세 말, 로마 가톨릭에서는 평신도들은 회중 찬송을 전혀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를 당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예배 시간에 부르는 회중 찬송을 신앙적인 형태로 접목시켰다. 특히, 칼빈은 제네바에서 다수의 합당한 자녀들을 선별해서 시편 찬송을 부르는 중에 회중들을 인도하게끔 하였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루터가 시편 찬송과 다양한 찬송들을 가장 먼저 도입해서 예배 시간에 사용하였다. 츠빙글리는 예배 시간에 음악의 사용을 금지시켰다.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마틴 부써와 매튜 젤은 다양한 회중 찬송을 개발했고, 인쇄해서 보급하도록 했으며, 가장 널리 사용하였다.

칼빈의 생애 동안에 제네바 시의회는 매주 성만찬을 시행하자는 칼빈의 제안을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변경을 향해서 경과조치로서 제네바에 있는 3개의 교회들에서 매달 한 번씩 돌아가면서 성만찬을 집례하도록 제안했다. 모든 성도들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회가 시행하는 성례로부터 금지조치를 받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로서 거룩한 삶을 실천해야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마태복음 18장, 디모데전서 1장, 고린도전서 5장에 의거하여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시의회에서는 일 년에 네 번 성만찬을 시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스트라스부르크에 가자마자 즉각 시행했다. 비록 피난민들의 처지에서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지만, 올바른 예배를 지켜나가려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 1538년 11월,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회자로서 획기적으로 예배를 갱신했고, 매달 1회 성만찬을 거행했다.

스크라스부르크는 당시 독일 남부지방에서 가장 종교개혁에 앞서 나갔다. 1521년부터 루터파 종교개혁이 시작된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매튜 젤(1477-1548)과 마틴 부써(1491-1551)의 지도하에 독일어로 예배를 진행하면서 마리아상과 성상들을 제거하였다. 칼빈은 이들과 함께 실제 목회적인 방법들과 예배 형식들에 대해서 교류하였는데, 칼빈은 부써의 강권으로 여러 차례 목회자들과의 회합의 참가하여 종교개혁의 원리들과 예배의 개혁, 특히 가장 논쟁이 많았던 성만찬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칼빈은 성만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을 더욱 교육하고, 권고하고, 위안을 얻도록 하는 내용으로 강화시켰다. 루터파 교회에서는 각 지방언어로 시편, 성경적인 소곡들 (솔로몬의 아가 등), 여러 종류의 시들을 사용했다. 그러나 츠빙글리는 공예배에서 전혀 음악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1537년 이후로 점차 다양한 찬송이 확대 되어졌다. 시편 찬송 이외에도, 새해를 시작하는 찬송, 성탄절, 세례식, 고난절과 부활절, 승천절 등에 부르는 찬송 등이 추가되었고, 영적인 노래들이 사용되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 71:18)

개혁교회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시편 찬송은 이처럼 그 근원이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머물던 시기에 칼빈을 통해서 도입된 것이고, 차츰 제네바에서 정착 되었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동안에 한층 성숙한 목회자의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특히 독일어권 종교개혁자들과의 회합에 참여하여 필립 멜랑톤과 직접 만나서 성만찬에 관한 탁월한 학식을 인정받았다. 개혁주의 예배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기도들과 세례 예식의 순서를 정립하였다. 회중들이 시편 찬송을 부르는 것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논쟁거리였는데, 결국 스트라스부르크의 다른 교회들도 따라오게 되었다.

1539년, 스트라스부크에서 프랑스 난민 교회를 섬기고 있던 칼빈은 기룜 파렐 (1489-1565)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 놓았다. “마틴 부써가 복음을 확시키려는 열정이 매우 강렬해서, 가장 중요한 일들이 진행되는 것에 만족을 느낍니다. 그는 자신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관대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한 달 후에 다시 파렐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써는 루터의 예식들을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들을 소개하려는 열정도 없어 보입니다”고 썼다. 부써는 라틴어로 된 찬양곡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고, 그런 이미지들을 싫어했다. 칼빈은 앞으로도 부써는 한번 폐지한 이런 의식들을 다시 되돌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부써는 예배의 개혁에 있어서 루터의 입장을 채택하고 있었는데, 칼빈은 이를 더욱 바꿔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칼빈은 초대 교회의 모범 사례들과 바울 사도의 서신에 근거해서 회중 찬송을 예배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정착시켰다. 스트라스부르크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 로 재직했던 볼프강 다흐쉬타인이 작곡한 여러 시편 찬송 곡들과 파렐를 통해서 클레몽 마로가 편집한 13편의 시편 모음곡들을 칼빈 자신이 프랑스어로 번안해서 소책자(Aulcuns pseaulmes et cantiques mys en chant)를 발행했다.

이처럼 칼빈의 초기 목회사역은 공예배의 내용과 형식을 성경적으로 정립하려는 노력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 우리는 칼빈이 초기부터 종교개혁의 선두에 서서, 무엇보다도 공적인 예배의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1530년대 후반부터 1540년대에 나온 중요한 문서들 속에 담겨있으며, 또한 예배의 개혁을 원리적으로만 제시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항들에서 어떻게 목회적 적용들을 했던가를 추적하여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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