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제네바 설교에 담긴, 중요한 예배 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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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칼럼] 칼빈의 예배 신학과 목회적 적용 (2)

▲김재성 박사(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김재성 박사(한국개혁신학회 전 회장,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부총장). 
마침 이들 프랑크푸르트 난민교회의 목회자로 존 낙스가 청빙을 받아서, 1554년 12월 초에 부임했다. 낙스는 이미 여러 차례 죽음의 공포와 질병을 넘겼고, 수 년간 프랑스에 저항하다 체포된 죄수의 신분에서 풀려나서, 잉글랜드에 피신해 있었다. 그러나 메리 여왕의 통치를 비판하였기에 더 이상 잉글랜드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1554년 9월 24일, 프랑크푸르트 난민교회의 초청을 받아서 건너올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난민 교회에서는 성공회 예배의 순서를 변경해서 채택하고 있었기에, 낙스는 청빙을 받아들였다. 훗날 스코틀랜드 전체를 장로교회로 바꾸는 결정적인 기여를 남기게 되는데, 개혁신앙으로 회심한 초기부터 낙스는 성만찬의 집례에 있어서 현재 채택된 성공회의 예식 순서를 그대로 따르기를 거부하였다. 잉글랜드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과 루터파의 예배 내용을 절충한 형식이라서, 여전히 다양한 예식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따라서, 프랑크부르트 난민교회 안에서 성공회파와 낙스를 지지하는 개혁파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였다.

이러한 예배의 내용을 놓고서 양측이 격돌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이들은 주변의 이웃 도시들에 있는 교회들에게, 즉 스트라스부르크, 엠덴, 취리히, 제네바 등 다른 곳에 있는 개신교 교회들에게 의견을 청취하자는데 합의하였다. 이처럼 매우 민감한 때에, 『155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논쟁의 개요』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다. 당시에 가장 열열한 장로교회 소속 목회자였던 윌리엄 휫팅햄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책자가 발간된 것이다. 그러자 반대파에서는 영국 왕권의 권세를 활용하여 휫팅햄을 체포하여 본국으로 송환하려고 하였다. 이 책자의 발간으로 인해서 휫팅햄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낙스를 도와서 영어권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황급히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훗날 그는 제네바에서 매우 중요한 청교도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고, 영어로 번역된 『제네바 성경』을 출판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남겼다.

1554년 말에 이르자, 성공회를 지지하는 잉글랜드 출신 성도들이 프랑크푸르트로 대거 몰려 들어왔다. 리차드 콕스(Richard Cox, 1500-1581)가 앞장을 서서 낙스의 예배개혁을 거부했고, 왕권의 후원을 얻어서 행동하던 자들은 위세가 등등했다. 가까스로 청교도들과의 협상을 위해서 양 측 대표자들이 선정되었다. 낙스, 휫팅햄 등은 이런 상황 하에서 ”성공회 예식서“(the Book of Church Prayer)의 라틴어 판을 칼빈에게 보내어 조언을 구했다. 당시 칼빈은 유럽의 최고 신학자이자, 거의 모든 개신교회의 대변인이었다. 이들에게만이 아니라, 칼빈은 수많은 지도자들과의 교류하면서 지혜로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칼빈은 잉글랜드 난민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서로 화합을 촉구하는 매우 부드러운 답변서를 보냈다. 1555년 1월 13일자로 칼빈이 쓴 편지에는 실제적으로 그가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제언하는 목양적인 내용들이 가득 담겨있다. 여기서 필자가 이 편지를 단순히 번역하기 보다는, 핵심 내용을 충실히 소개하고자 한다.

성경에 기초한 순결한 예배를 주장하는 청교도들과 로마 가톨릭의 예식들을 따라가려는 성공회측이 격돌하고 있던 프랑크푸르트 난민 교회를 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교착상태에 빠진 예배의 내용들과 형식을 해결하는 중재자로서, 칼빈은 그들이 취해야 할 입장을 명확히 진단했다. 무엇보다도 먼저, 칼빈은 그들이 지금 직면한 문제의 핵심을 지적했다. 칼빈은 지금 그들에게는 종교개혁을 더 진전시키느냐 마느냐의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칼빈은 양측이 교회 개혁이라는 목표를 완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있느냐를 깊이 생각하라고 지적했다. 답변서에 담긴 칼빈의 조언은 두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제네바 당“이라고 알려진 청교도들에게 열심이 지나쳐서 잘못된 길로 들어가지 말라고 조언했다. 지나치게 엄격한 예배 형식을 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칼빈은 교회를 세워 나가는데 있어서 ”무조건적인 고집“(stubbornness)을 부리는 자들을 상대할 때에 그들의 무지함에 대해서 너무 비난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아주 작은 것들로 인해서 갈라지지 말라고 조언했다.

둘째로 칼빈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예식서에는 하나님만을 열망하는 순수함이 담겨 있지 않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작은 오류들이 많다”(many silly things)고 비판했다. 로마 가톨릭에서 익숙해진 것들이 담겨 있어서, 앞으로 더 순결하고 합법적으로 고쳐 나가야 할 것이 많다. 칼빈은 종교개혁이 이제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청교도들(Knox, Whittingham)과 성공회 지도자들(Parry, Lever) 등은 1556년 2월 6일, 스프롯 박사가 작성한 “타협의 예식서”(The Liturgy of Compromise)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성공적인 타협안을 시행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잉글랜드에서 온 성공회 목회자들이 낙스를 쫒아내는 음모를 꾸며서, 교회는 갈라지고 말았다. 칼빈주의자들 중 일부는 바젤, 취리히, 제네바 등 다른 도시로 떠났다. 프랑크푸르트 시 당국에서는 낙스의 팜프렛에 담긴 내용들이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내용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조용히 떠날 것을 권고하였다. 결국, 그는 3월 26일 제네바로 떠나야만 했다.

프랑크푸르트 난민교회의 분열을 경험한 후 낙스는 참담했지만, 제네바의 영어 회중들은 1555년 11월 1일에 그를 청빙하기로 결정했다. 1556년 6월 칼빈의 초청을 받아들였고, 아내와 장모 등 가족들을 대동하여 9월에 도착했다. 당시 제네바에는 전 세계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몰려든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영어권에서 피신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회중의 목회자로 낙스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제네바는 청교도들의 요람이 되었다. 낙스의 회중은 약 186명 정도였고, 그 후 4년여 동안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을 보냈다. 다시 1559년에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낙스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들고 전체 국가를 일시에 바꿔놓게 되었다. 그리고 장로교회의 예배를 확실히 세우는 기초를 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스코틀랜드 예배 모범”이다.

훗날 휫팅햄도 잉글랜드로 돌아가서 장로교회의 예배 형식을 정착시켰다. 칼빈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은 이들이 다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예배를 갱신하였다. 훗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모인 청교도들이 예배의 기초적인 내용으로 정리한 것들은 거의 다 칼빈에게서 나온 것이다.

대단히 슬프게도, 영국 성공회에 속한 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청교도들의 예배원리가 칼빈의 것으로부터 많이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여전히 패커를 지지하는 입장이 줄곧 나오고 있다. 그러나 칼빈의 제네바 교회가 드린 예배내용들과 낙스의 스코틀랜드 예배규정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4)를 작성한 청교도들이 작성한 “예배 모범”은 거의 차이가 없다.

필자는 특히 칼빈의 목회적 적용에 대해서 주목하고자 한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프랑크푸르트 교회를 위해서 조언한 칼빈의 실제적 적용들에 관한 내용들은 그의 견해가 달라졌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앞에 살펴본 바, 프랑크푸르트의 소용돌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언하고 있던 무렵에, 제네바에서 행한 칼빈의 설교들은 매우 중요한 예배원리들이 담겨 있었다. 이 무렵 칼빈은 주로 신명기에 담긴 계명들에 대해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예배원리에 관한 내용들이 많았다. 1555년 5월, 칼빈은 신명기 4장에 대한 다섯 번째 설교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지침을 제시했다.

“다시 한 번, 교황주의자들이 교회들 안에서 형상들을 사용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역사가들이 지식을 갖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아주 진지한 용모를 갖춘 작은 인형들을 세워놓은 것일 뿐입니다. 한 교회 안에 그토록 빨리 형상을 세워놓을 수 없을 터인데도, 사람들은 그 앞으로 달려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것에 대해서 친절한 경배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황주의자들이 하는 것보다 더 주님의 영광을 손상시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을 찢어버리는 방안은 만들어낼 사람이 있을까요? 자 여러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림으로 그리고, 초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사람일 뿐만 아니라, 육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분을 어떤 것으로 표현해 낼 수 있겠습니까? ... 이것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지혜이자, 신적인 권세를 가지 신 분을 가장 철처히 지워버리는 짓이 아니겠습니까?”

제2계명을 적용함에 있어서, 칼빈은 그 어떤 형상이나 그림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을 “보이는 미술품”에 대한 규정이라고 보았다. 예배의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위엄과 권위를 사람의 손가락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바를 단순하게 따라가야만 한다. 그것들에다가 그 어떤 것도 전혀 추가해서는 안 된다. 비록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것들에 빠져버리게 되면, 그 어떤 경우라하더라도 곧바로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우리를 벌하실 것이다.”

1555년 6월 17일, 칼빈은 신명기 5장 8-9절에 대한 설교를 했다. 칼빈은 죄의 영향력이 너무나 강렬해서 타락한 인간들이 우상 숭배로 이끌리게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엄격한 형벌로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반대되는 쪽으로 우상들을 좇아갈 것이다”고 선포했다.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칼빈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용모를 그린 초상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엄격한 입장이 청교도와 네덜란드 등 여러 지역 개혁교회의 원칙이 되었고, 루터파에서는 관대하게 허용하였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드리는 예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합당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집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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