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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3편 강해

요절: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3절)”.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입니다. 거친 길을 가지만 마음은 성전에 가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가는 시입니다.

시인은 지금 성전 가는 길에 멸시와 모욕을 받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멸시하는 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가서 여호와께 멸시에서 구해 주시도록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1. 내가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주님을 봅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1절)”.

이 말씀은 신앙 고백과 신앙인의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여호와 주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하늘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생각하고 그분이 계신 곳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을 생각하고, 그분의 계신 곳을 생각합니다.

땅은 우리가 사는 제한된 곳입니다. 하늘은 물질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땅이 없어져도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은 높은 곳을 말하는 곳이며, 통합적인 관찰을 하는 곳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세상 전체를 한 눈에 관찰합니다. 숲을 보려면 멀리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걱정거리가 많은 것은 통합적 생각을 못해서입니다. 우리 인생은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은 지나가는 전체의 한 점에 불과합니다.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옵니다. 여름에 가을 옷을 사고 겨울에 봄의 옷을 삽니다.

작은 것에 집착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다 끝났다 망했다고 합니다. 멀리서 보면 문제가 별 것 아닙니다. 좋아도 나빠도 결국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영원 속에서 현재의 시간을 봅니다. 하늘에서 땅을 봅니다. 깊은 신앙에 살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깊은 것도 통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운명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운명 전체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내가 눈을 들어 주님을 향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소망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의 운명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를 바라봅니다. 시인은 눈을 들어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믿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2절)”.

종들은 상전의 손을 바라보며, 은혜를 구합니다. 여종은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며 은총을 구합니다.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고 은혜를 구합니다. 주인이 주는 일거리를 구합니다. 많은 것을 맡길 것인지 적은 것을 맡길 것인지, 있는 것을 빼앗길 것인지 주인을 쳐다봅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주인의 손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이요 지시하는 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손은 또한 도움입니다. 하나님은 가까이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그 손이 나의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보호를 말하는 것이요 공급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주는 것을 먹고 입고 삽니다. 종은 주인의 공급을 받습니다. 지혜도 물질도 시간도 공급받습니다. 그만 살라 하면 그만 사는 것이요, 그만 가지라 하면 그만 갖는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을 잃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요 가져가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이 주시면 안 될 것도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받으려 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한 평생 발버둥치며 얻으려 하다가, 우리는 파멸해 갑니다.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손은 때로 치료도 되고 징계도 됩니다. 이사야 1장에 하나님의 손에 더 맞으려고 하느냐, 맞은 곳이 치료되지 않았는데 더 맞으려고 하는가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맞을 때, 주인이 얼마나 때릴지 쳐다봅니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긍휼을 바라고 주님의 능력을 기다립니다.

시인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면서 은혜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주님께 긍휼을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정보를 드리고 요구하는 것은 간섭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욕심으로 더 많은 것을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오직 믿음은 오직 은혜요, 오직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만을 의지하는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없고 내 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3. 우리에게 심한 멸시가 넘쳤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3-4절)”.

시인은 여호와께 은혜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이 이렇게 은혜를 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심한 멸시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는 배부르고 안락에 빠진 자들의 조소를 받았습니다. 교만한 자의 멸시가 그의 영혼에 넘쳤습니다.

안일한 자나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안일하면 교만해지고 교만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사회일수록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부유하게 사는 사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이 조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조롱과 멸시를 받을 때 사람들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조롱과 멸시의 때에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가서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면 조롱과 멸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예수님께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개가 산에서 덫에 걸렸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수술하였습니다. 누워 있는데 가만히 주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눈을 껌벅껌벅하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인에게 고맙고 감사하며 긍휼을 구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4. 은혜를 구한 수로보니게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방인이었습니다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그녀는 멸시와 모욕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으로 유대인들에게 개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신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상 아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딸이 낫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주를 보며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긍휼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천안 UBF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