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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편 강해 161-176절

요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65절)

오늘은 성경에서 가장 긴 시편 119편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시인은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고 장애물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 장애물을 극복케 하십니다.

1.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1-163절을 보면 고관들이 거짓으로 이유 없이 시인을 핍박하였습니다. 주변에서 시인을 돕는 사람들이 그를 핍박합니다. 그들은 시인을 이해하고 존경하며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사람인데 시인을 괴롭힙니다.

왕들은 자신의 주변에 신실한 사람을 두고자 합니다. 나라가 망할 때는 왕궁 안에서 문제가 터집니다. 권좌에 앉은 사람은 항상 불안해합니다. 신하들의 충성을 믿을 수 없어 심복을 두고자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방백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정치가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고관에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직 주의 말씀만을 경외합니다.

주의 말씀을 경외했다는 말은 핍박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핍박 중에 주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시인은 방백들이 아첨해도 그들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사랑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사람들이 탈취물을 나누는 것처럼 말씀을 기뻐합니다.

예전에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나라를, 고을이 고을을 쳐들어갑니다. 진 쪽이 전범자가 됩니다. 이긴 쪽이 진 쪽의 모든 것을 탈취합니다. 이기면 빼앗고 지면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생명을 보존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부산물로 원수의 소유를 나의 것으로 얻게 됩니다. 전쟁에서 이긴 기쁨이 큽니다. 말씀을 그때의 기쁨처럼 기뻐합니다.

이 기쁨은 장사하고 농사해서 벌어들이는 것과 다릅니다. 생명을 얻고 승리하는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주의 율법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짓된 고관을 미워합니다. 사랑에는 미움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시기심을 동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복을 주시지만, 미워하는 자는 삼사 대까지 벌을 내리십니다. 시인은 핍박을 받을수록 주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2.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장애물이 없습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64-165절)

주의 규례는 정의롭습니다. 시인은 정의로운 규례로 인하여 하루에 일곱 번 주를 찬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9시, 12시, 3시에 규칙적으로 기도합니다. 시인은 7번 주를 찬송합니다.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그는 온전히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정의로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 큰 평안을 주십니다. 이것은 시인의 경험입니다. 이 평안은 조건적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사랑하면 장애물이 없습니다. 미래가 약속됩니다. 모든 과거가 축복이었다고 재해석합니다. 그날이 있음으로 현재의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소중합니다. 미래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장애물을 극복하게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제일 불행하는 사람은 행복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행복을 아는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죽으면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엔돌핀은 엔터몰핀입니다. 누가 찔러도 몰핀을 맞은 사람은 아프지 않습니다. 몰핀이 없는 사람은 아픕니다. 병균이 들어와도 엔돌핀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이런 몰핀으로 큰 평안이 있습니다. 두려움도 고통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장애물이 없어질 것입니다. 질병도 걱정거리도 없습니다. 장애물로 인하여 아픔을 느끼지 않습니다.

알러지는 과민 상태입니다. 위가 건강하면 찬것이나 더운 것을 먹어도 소화됩니다. 위가 얇아지면 과민이 되고, 그러면 위가 뚫립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주신 평안으로 스트레스를 극복합니다.

쥐를 하루에 한번씩 찌르면, 위암이 걸린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 스트레스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극복합니다. 질 좋은 엔돌핀이 나오면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는 전도양양합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을 미워하는 자는 망합니다. 시인은 그것을 믿기 때문에 고난 중에도 더욱 주의 법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3. 주의 구원을 바라며 계명을 행하였습니다

166-170절을 보면 시인은 주님이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합니다. 그의 영혼은 주의 증거들을 지켰음을 반복하여 말합니다. 그는 주의 증거를 지극히 사랑함으로 주의 증거를 지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지극한 사랑의 표현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그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나타나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주의 계명을 지켰습니다.

시인은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십니다. 사람 앞에서는 거짓될 수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명을 지키는 자신을 아시고 상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구원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계명을 끝까지 순종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기도할 때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격정적인 기도를 합니다. 열심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거지가 밥을 얻어먹듯, 간절히 긍휼과 은혜를 구합니다. 거지는 한 마디만 하지 않고, 여러 번 반복하여 구합니다. 주인이 가라고 해도 몇 번 구합니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자격이 없는 가운데 은혜를 달라고 구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체면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복하여 죄의 용서를 구하고 주님께 간절한 소원을 아룁니다.

나의 부르짖음이 주님께 상달되도록 기도합니다. 내가 죄가 많으므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긍휼을 간구합니다.

시인은 주의 정의로운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잘못된 것은 깨달음이 없어 된 것이니,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내 상태는 그대로 있으면서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구할 때도 깨달음을 구해야 합니다. 가르침을 구하지 않고 돈만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능력을 구하는 기도보다, 지혜를 먼저 구하여야합니다. 우리는 능력만 구해서는 안 됩니다. 병 고치고 돈 벌게 하고 일이 잘 되게 해달라는 것은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보다 지혜를 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능력보다 지혜를 주시고자 합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대로 자신을 건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구원해 달라고 하는 것은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알면서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능력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지혜를 구한 다음에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내 능력만 가지고는, 깨달음만 가지고는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시인의 간절한 기도는 말씀대로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4.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으니 나의 도움이 되소서

171-176절을 보면 주께서 율례를 시인에게 가르쳐 주심으로 말씀대로 구원해 주실 것을 믿고 주를 찬양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공의대로 구원을 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인은 거짓을 버리고 주의 법도를 택하였습니다. 주의 법도대로 살았습니다. 시인은 주의 손이 항상 말씀을 택한 시인의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시인은 주의 구원을 사모합니다.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의 율법대로 사는 자를 구원해 주시기를 사모합니다. 시인은 주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살게 하도록 기도합니다. 주의 규례들이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길 잃은 양과 같이 방황합니다. 잃은 양과 같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잘못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시인은 세상 욕심으로 곁길로 갔습니다. 내 생각이 행동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습니다. 양과 같은 그에게 말씀은 그의 목자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떠나 방황하고 있습니다.

소는 자기 길을 찾습니다. 달구지에 타고 졸아도, 소는 제대로 집에까지 옵니다. 그때 소방울을 덜렁거립니다. 개도 집을 찾습니다.

그러나 양은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주인이 꼭 인도해야 합니다. 양은 착하고 순진하지만 멍청합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양과 같이 우둔합니다. 주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주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주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주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신앙이 커지면서 자신의 지혜는 작아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점점 커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내가 끌려갑니다.

새벽기도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이 깨워주시고 채찍을 주셔서 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목자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목자 되신 주님이 나를 찾아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찾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주의 계명을 잊지 않으니 목자 되신 계명이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그는 아주 겸손합니다. 자신을 구원하면 주를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주의 구원을 통해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오요한 시편 역경 속에 피어나는 찬양의 꽃
▲오요한 목사.
오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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