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옆에서 찍었다. 사진에서 보는 계단은 헤롯이 건축한 성전으로 올라갈 때 이용되었던 당시의 계단이다. ⓒ크투 DB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마태복음 14:4)”.

헤롯은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을 합니다. 이는 유대교 율법에 금지된 일이었기에 요한은 헤롯에게 충고하였고, 헤롯은 그를 선지자로 여긴 탓에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헤롯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 헤롯의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헤롯이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딸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고합니다. 평소 헤롯과 결혼한 자신을 옳지 않다고 충고했던 요한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좋은 챤스가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을 죽여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합니다. 왕은 한참을 근심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는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하는 수 없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그에게로 가져다 줍니다.

당시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는 선지자로 유명했던, 세례자 요한을 죽인 사건은 헤롯에게는 씻지 못할 과오가 되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스승이자 메시아를 십자가 형틀에서 죽게 한 가룟 유다와 헤롯 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악행의 슬픈 이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는 위기 때마다 충고를 하는 위인들이 있습니다.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한 사명자가 되어 본분을 수행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울 왕 같은 자는 시기와 탐심 때문에 가족들까지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린 비운의 최후를 맞았습니다.

‘충고(忠告)’란 나의 잘못이나 허물을 충심으로 타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충고는 사실에 근거하여 말해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 셋째로 부드럽게 말해야 합니다. 넷째로 적당한 시기에 말해야 합니다. 다섯번째로 상대에게 이익이 되도록 말해야 합니다.

나를 착하다고 말하면서 부추기는 사람은 곧 내게 해로운 사람이요, 나를 나쁘다고 바로잡아 주는 사람이 곧 내 스승인 것입니다.

잘못을 바로 잡아준 나단과 사무엘이라는 선지자가 있었기에, 다윗은 잘못을 인정하고 철저하게 회개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바른 충고를 거절하고 미련한 결정을 함으로써, 나라를 분열케 한 왕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르호보암의 뜻은 ‘백성을 번성케 함’ 또는 ‘백성이 많아지다’였지만, 결국 이름값도 못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왕궁과 성전 건축, 성벽 수축을 위하여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지나친 세금 부담을 주어 백성들을 곤궁에 빠지게 했습니다. 아들 르호보암에게 원로들은 짐을 좀 가볍게 해달라고 탄원했으나, 르호보암은 이를 묵살하고 “부친은 채찍으로 했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면서 더욱 무거운 세금과 노동으로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백성들은 르호보암 왕에게 큰 기대를 걸었지만, 자신들의 뜻을 무시한 오만불손한 대답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이에 격분하여 다윗 왕조와 결별을 선언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민심을 외면한 지나친 처사로 오히려 자신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나라 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말았던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지금 처해 있는 나라 상황을 보면, 르호보암 같은 왕이 집권해 나라 안의 많은 원로들과 백성들이 충고를 해도 도무지 듣지 않고 있습니다. 잘못을 전환하려는 노력도 없이 고집과 아집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영욕만을 위해 일하는 모습은, 르호보암 왕과 무엇이 다릅니까?

진정한 이웃과 친구는 남의 이야기를 그저 흘려듣지 않습니다. 바르게 경청하고, 혹 잘못이나 고칠 점이 있다면 빠르게 수용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함께 충고해 준 친구를 고마워하며 더욱 그와 오래도록 함께하려 해야 합니다.

이조 시대 임진왜란의 아픔은 충직한 신하의 충고를 수용하지 않고, 안일무사를 외치던 간신배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희생된 교훈은 지금도 되새겨야 할텐데, 이를 무시하는 오늘날의 간신배들 때문에 나라는 갈수록 요지경이 되어갑니다.

나라도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도 충직한 하나님 백성들의 건의나 충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바깥 세상처럼 지역 이기주의와 권력 싸움으로 편을 만들고, 바르게 진언하는 성도들을 배척하며, 온갖 거짓말과 감언이설로 성도를 매장시키며, 오롯이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는 당회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를 해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나라가 엉망이라면 나라를 위해 올바른 진언을 해야 합니다.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왕의 잘못을 지적한 것처럼 나서서 충고를 해야 하는데, 교회 안에서조차 우글거리는 사탄의 놀음에 춤을 추고 있으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세례 요한의 충고를 듣지 않았던 헤롯 왕과 사울 왕, 그리고 르호보암 왕의 전철을 밟지 말고, 충고해 주는 충신들과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행하는 주님의 이름다운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