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기 배급 약국
▲지난 3월 점심시간을 이용해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서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 ⓒ크투 DB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려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서 마스크를 끼고 비닐 장갑을 들었다. 혹시 엘리베이터 속에서 누굴 만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서다.

전 같으면 내가 저녁 쓰레기를 버리는 시간이 유일하게 이웃과 만날 수 있는 시간대이고 승강기는 그들과 나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누군가를 만나게 될까 걱정을 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라도 되는 듯 마스크에 의존하고 있다.

대구에 코로나가 확산되던 때부터 4월 첫 주까지만 해도, 나는 일회용 마스크를 한 장도 사지 못했다. 처음에는 여러 곳을 전전하였는데 돌아오는 말은 “금방 마감되었다”였다.

시간이 아까워서 마스크 구하기를 포기하고 몇 해 쓰던 면 마스크를 찾아 빨고 삶아서 썼다. 그러다 마스크 배급제(?)가 시행되었다. 처음엔 생년월에 따라 정해진 요일에 두 장씩, 또 몇 주 지나 세 장씩 살 수 있었고, 이제는 요일 관계없이 여러 장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약국을 통해 배급제가 실시되던 첫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속상하고 우울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작 마스크 한 장을 배급받으려고 몇 날을 그렇게 줄을 서서 에너지를 탕진하였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러시아를 처음 방문하였던 때는 그 나라가 페레스트로이카로 한창 몸살을 앓고 있던 때였다. 한날 이른 아침 닥터 지바고(Boris Pasternak의 Doctor Zhivago)의 무대를 찾아 모스크바의 아르바트 거리에 서 있있다.

하늘은 끝없이 크림색이었고,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통하여 차갑고 검푸른 빛이 북쪽으로부터 흘러 들어왔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길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순간, 나는 의외의 광경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른 아침 그 시간에 모퉁이 가게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길고 긴 줄을 만들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상점 철문이 열리고 맨 앞에 선 사람이 작은 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이야기를 하더니, 곧바로 빈손으로 나와서 다시 맨 뒤로 가서 줄을 서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운동화와 셔츠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살 물건은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었으며,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다시 돌아가 줄의 맨 끝에서 기다려야 하는 이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생생한 광경 때문이었을까. 이 땅에 마스크 배급제가 시작되던 때, 나는 며칠간 잠을 설쳤다. 내 나라가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애국자는 아니다. 외치며 앞서가는 사람은 더더구나 아니다. 단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자유와 풍요를 맛보고,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배급제 날에는 갖가지 일상들이 확대되어 생각이 난무하는 불안을 겪었다. 역사와 문명을 인식하는 지성이 두려움에 떨 었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볍게 생각하였던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북 정책, 국제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때늦은 관심을 이어 가고 있다.

보통 사람인 나도 눈을 뜨고 현 정부를 보니 할 말이 참으로 많다. 문재인 이라는 분은 국민에 대해 애정이 있는 것일까? 아니, 관심이라도 있는지….

그 분이 정말 정상적인 생각을 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역사와 문명을 보는 지성의 눈이 있는 대통령인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정원 옆 산책로에 들어섰다. 낮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흙을 헤집고, 푸른 잎들이 솟아나오고 있다.

이슬이 맺힌 나뭇가지는 싱그럽고, 어둠이 막 내려앉은 길은 가로등에 반짝거린다. 새들이 재잘거리고 장미 향기가 진동한다.

일상의 이 기쁨을 다시 춤출 수 있는 날, 그 날이 언제쯤일까. 오늘 따라 이 땅 흙의 감촉, 별들의 반짝임이 유난히 아름답구나.

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박사
영문학, 기독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