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 학비 지원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 운영 방침
교회, 기업, 개인 등 후원 잇따라… 매년 중·고·대학생 15명 선발 예정

장기기증 유가족 장학금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 위한 ‘D.F(도너패밀리)장학회’ 출범식 현장. ⓒ김신의 기자

지난 2013년부터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을 예우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온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이하 본부)가, 창립 30년을 맞아 생명 나눔의 고귀한 정신을 잇기 위해 20일 본부 회의실에서 ‘D.F(도너패밀리)장학회 출범식’을 가졌다.

뇌사 장기기증인 3, 40대 비중 높아… 미성년 유자녀 학업 지속 어려워

본부 측은 “장기기증이라는 숭고한 나눔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했지만 정작 기증인의 가족들은 경제활동의 주체인 가장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며 “이에 유자녀들이 어려움 없이 학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장학회가 발족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D.F장학회는 설립 목적으로 △국민들에게 장기기증인의 생명나눔 정신을 알림 △유가족들이 생명나눔 실천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지원함 △유자녀들이 가정 형편 때문에 꿈과 재능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자 함 등을 명시하고,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에게 학비 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장학생 선발을 담당하는 장학위원회는 본부 박진탁 이사장과 한국기독교화해중재원 유재수 대외협력처장, 기아대책 손봉호 이사장, 암웨이미래재단 김일두 홍보대사, 한국기독교인연합회 심영식 대표 등 5인으로 구성됐다.

이날 출범식에서 본부의 이사장 박진탁 목사는 “어떻게 기증자 가족을 위로할 수 있을까 기도하고 생각하던 중에 이번 장학회를 마련하게 됐다. 최근 5년간(2015~2019년) 뇌사 장기기증인 2,488명 중 3·40대는 874명으로 약 35%에 달했기 때문이다. 50대까지 하면 약 40% 정도 된다. 가장들이 뇌사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과 자녀를 도와드릴 방법을 연구하다 장학 제도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박 목사는 “2010~2013년까지 정부에서 명단을 주었는데, 그 후에 명단을 주지 않았다. 연락이 되는 분께만 연락을 드렸는데, 연락이 됐다면 더 많은 분이 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부가 뇌사 가족을 위로할 수 있는 장학금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우리 본부가 기금을 마련해 도와주고자 한다”고 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도너패밀리 회장, 故강석민 군의 아버지인 강호 목사는 “어느 날 아들이 머리 아프다고 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아들과 이별하고 뇌사로 장기기증을 하게 됐다. 슬픔과 괴로움, 후유증이 있다. 아무도 이를 알아주지 않는데, 본부에서 만나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그렇게 본부가 제게 손을 내밀어주었고 저를 돌보고 케어하고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마련해주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전 자식을 먼저 보냈지만, 여기 있는 자녀분들은 부모 중 한 분을 먼저 보냈다. 슬픔과 아픔, 말 못할 고민이 많이 있다”며 “이 모임에 장학금을 기탁해주셔서 이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생명나눔 자긍심 품고 가정·학교생활 충실한 유자녀 8명 선발, 장학증서 수여

D.F장학회는 이날 출범식에 이어 최초로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첫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들은 생명장학생(대학생) 김조이 군(故 김기호 씨 자녀, 대학교 진학 예정), 김수린 양(故 김종운 씨 자녀, 대학교 3년), 홍은하 양(故 홍순영 씨 자녀, 대학교 4년)과 사랑장학생(고등학생) 이규린 양(故 이현규 씨 자녀, 고등학교 진학 예정), 김현진 군(故 박선화 씨 자녀, 고등학교 3년), 배진우 군(故 배종수 씨 자녀, 고등학교 3년), 김조엘 군(故 김기호 씨 자녀, 고등학교 2년), 김주희 양(故 김일영 씨 자녀, 고등학교 2년) 등 모두 8명으로 장학위원회 심사를 거쳐 결정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뇌사 장기기증을 실천한 故 김종운 씨의 자녀 김수린 양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좌), 뇌사 장기기증을 실천한 故 홍순영의 자녀 홍은하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우). ⓒ김신의 기자

김조이 군(대학교 진학 예정)과 김조엘 군(고등학교 2년) 가정은 이들 형제가 초등학생·유치원생일 때인 2009년, 아버지 김기호 목사가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져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 형제는 아버지가 생명을 살린 것에 대한 자긍심을 품고, 어머니 서정 씨와 함께 생명나눔 캠페인에 꾸준히 참여하며 장기기증의 소중한 가치를 국민들에게 전해왔다.

김수린 양은 2006년 뇌사 장기기증을 실천한 故 김종운 씨의 자녀다. 故 김종운은 장기기증으로 4명에게 생명을 선물, 유가족들은 2013년 소모임을 시작으로 매년 본부의 다양한 행사에 참석해오고 있다. 김현진 군은 지난 2013년 뇌사 장기기증을 실천하며 5명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故 김선화 씨의 자녀다. 그녀의 남편 김충효 씨는 신장기증을 통해 한 생명을 살리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아버지 故 이현규 씨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떠난 뒤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이규린 양(고등학교 진학 예정)은, 남편의 갑작스런 부재로 생계를 떠안게 된 어머니를 대신해 지금껏 동생들을 챙겨왔다. 아버지의 사고 당시 자신도 8살의 어린 나이었지만 5살, 7살 터울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하고 어머니를 위로하는 등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날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저희 상황을 공감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이를 계기로 장기기증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부모님의 뒤를 따라 저도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부모님의 좋은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감사를 잊지 않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부모를 생각하며 눈물을 보인 학생도 있었다.

이날 대표로 강단에 선 홍은하 학생은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당당하고 강한 아버지, 성실하게 묵묵히 할 일을 하시는 아버지였다”고 회상했다. 홍은하 학생은 “아버지는 바쁜 가운데서도 세 딸을 데리고 놀러가시곤 했다. 함께 한 시간이 10년이 채 되지 않음에도 추억이 많다. 단단함과 따뜻함을 지닌 분이었기에 장기기증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시고 장기기증을 선택하셨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도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 따뜻함으로 여러 생명을 주시고 떠나셨다. 지금도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존경한다. 장기기증은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생명이 절실한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을 줄 수 있기에 새로운 삶을 남기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저희 가족 모두 장기기증에 동참하려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장기기증을 긍정적으로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도너패밀리’에 대해 언급하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우리만 슬픔을 안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만이 아님을 알았다. 유가족 모임을 통해 위로를 받고 따뜻함을 느꼈다”며 “가족 구성원을 떠나보낼 때 큰 슬픔이 닥치지만 세상에 나눔을 남기고 떠나 남은 유가족이 자부심을 느끼고 힘을 내 살아갈용기와 힘을 준다”고 했다.

본부는 “이들 외에도 이번에 선발된 장학생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가정과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들”이라며 “D.F장학회는 앞으로도 뇌사 장기기증인 유자녀들이 생명나눔에 대한 자긍심을 품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족 잃은 슬픔, 생명나눔 자긍심으로 변화… 유자녀 장학 사업 중요”

이번 1차 장학증서 수여를 위해서는 여의도순복음성북교회(담임목사 정재명)를 비롯해 발음교회(권오륜 목사), 구산교회(담임목사 조성광), 목천교회(담임목사 김상원), 안성중앙교회(담임목사 송용현) 등 교회의 후원이 이어졌고, 신한은행 충정로지점(신촌지역단장 이규민)과 KB국민은행 중곡동지점(지점장 구자용) 등 기업 및 단체, 그리고 네이버 해피빈 모금을 통한 개인 후원도 잇따랐다.

DF장학회
▲첫 ‘D.F(도너패밀리)장학회 출범식’에서 장학금을 수여받은 기증인의 자녀들. ⓒ김신의 기자

D.F장학회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뇌사 장기기증인의 유자녀인 중·고·대학생 각 5명씩 15명을 나눔·사랑·생명 장학생으로 선정해 장학증서를 수여할 방침이며, 장학금은 본인 혹은 주변인이 소정의 양식에 따라 신청할 수 있으며 심사를 거쳐 대상자를 확정한다.

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생명나눔을 실천한 분들의 가족들이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자긍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학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요청했다.

이어 “현재 이뤄지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에 대한 장례비·진료비 등 금전적 보상은 생명나눔의 숭고한 정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대가성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일시적 금전 보상보다는 이번 장학회와 같은 재단 혹은 기금 마련을 통해 유가족들을 예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2000년 2월 9일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20년이 지난 올해 1월 말 현재까지 뇌사 장기기증인은 5,627명이다. 본부는 지난 2013년부터 도너패밀리(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를 결성하고 소모임, 문화행사, 일일추모공원, 추모전시회, 미술 및 음악 등을 통한 심리치료 및 이식인과의 만남 등 다양한 예우사업을 진행했다.

이번 D.F장학회 출범 역시 도너패밀리 예우사업의 연장선상에서 뇌사 장기기증인의 생명나눔 정신을 되새겨 유자녀들에게 자긍심을 심는 한편, 향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장기기증운동 활성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본부는 6천여 뇌사 장기기증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2만여 도너패밀리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지자체와 협력해 추모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현재 국내법 상 허용되지 않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 간의 정보 교류를 위한 제도 개선 및 법률 개정 등에 앞장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