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패밀리의 밤
▲심장이식인 마리아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는 배우 소유진 씨. ⓒ운동본부 제공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 이하 운동본부)는 지난 4일 오후 4시부터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을 위한 '도너패밀리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운동본부가 주최하고 한화생명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생명을 나누고 떠난 가족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연말, 뇌사 장기기증인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감사와 위로를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도너패밀리 162명, 신·췌장 동시이식인 및 심장이식인 19명 등 24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에서는 배우 소유진 씨가 재능기부로 사회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소 씨는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뇌사 장기기증인 故 김유나 양에게 심장을 이식 받은 마리아(Maria)의 편지를 낭독했다. 김 양은 지난 1월,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고 심장, 신장, 간장, 각막, 췌장 및 인체조직 등을 기증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의 환자 27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이들 중 심장을 이식받은 여성 '마리아'는 30대 소아과 의사이다. 마리아는 편지에서 "2007년 1월, 심장비대증을 진단받고 심장펌프에 의지해 생활했는데, 올해 유나 양의 심장을 이식받고 누구보다 활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며 "태어나 처음으로 6km를 혼자 걸었다"는 말로 김유나 양과 부모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국내에서는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 간의 교류 및 정보교환을 금지하고 있어 서로를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는 관련기관 중재 하에 이식인과 기증인 유가족이 서신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시일이 지나면 만나는 일도 가능하다.

이후에는 뇌사 장기기증인 故김기석 군의 아버지 김태현 씨도 참석했다. 김 군은 지난 2011년 12월 4일,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심한 아버지 김태현 씨는 "12월 4일, 오늘이 바로 우리 아들 기일"이라며 "비록 아들은 제 곁에 없지만, 우리 아들을 기억해주기 위해 모인 많은 분들이 계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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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참석자들의 모습. ⓒ운동본부 제공
뿐만 아니라 뇌사 장기기증인 故 이종훈 씨의 어머니 장부순 씨도 참석했다. 2011년 1월, 뇌사 판정을 받은 아들 이종훈 씨의 장기기증을 결심한 장 씨는 도너패밀리 부회장직을 역임할 정도로 생명나눔운동에 적극적이다. 장 씨는 "장기기증에 대한 자긍심을 느낀다"며 "타인의 생명을 연장해 준다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기에, 오늘 이 자리가 너무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심장을 이식받은 서혜영(여·20)씨의 편지 낭독도 이어졌다. 서 씨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심장병을 앓다, 지난 2009년 기적적으로 심장을 이식받았다. 서 씨는 "저는 14살에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며 "이식을 받기 전에는 또래 친구들처럼 공부하며 뛰어놀 수 없었고 미래를 꿈꿀 수조차 없었지만, 심장이식을 통해 이렇게 남들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서혜영 씨는 현재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사회복지사로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서 씨는 "당시 저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이 8살의 한 남자아이라고 들었다"며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제게 꿈과 생명을 선물해 준 기증인과 기증인의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도너패밀리의 밤
▲나비를 부착하고 있는 도너패밀리, 장기이식인들의 모습. ⓒ운동본부 제공
편지 낭독 후에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무대 전면에 부착된 'Never ending story'라는 문구에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 이식인들이 순서대로 나와 색색의 나비를 부착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것. 생명나눔을 상징하는 나비를 부착하며 도너패밀리와 이식인들은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이날 행사는 최은준 샌드아트 작가와 소프라노 이진희, 테너 강신모가 함께 하는 콜라보레이션 공연으로 마무리됐다. 이사장은 박진탁 목사는 "먼저 떠나 보낸 가족이 가장 그리워지는 연말, 숭고한 결정으로 생명을 나눈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생명나눔을 실천한 뇌사 장기기증인들을 잊지 않고 예우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