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만화 <한서 남궁억> 中.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키아츠 제공
기미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남궁억은 보리울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고종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일본 자객이 암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떠돌았다.

남궁억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한 나라의 황제로서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당했을뿐더러 명성황후마저 일본 사무라이들의 능욕을 당한 뒤 피살되었는데 이제 자신까지도 비운에 가고 만 것이다.

“오, 가엾은 분!”

남궁억은 비탄에 잠겨 소리쳤다.

그는 오래 전부터 고종 황제와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비탄에 잠긴 그의 머릿속으로 그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차례차례 스쳐 지나갔다.

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총해관에서 근무하던 남궁억은 1886년에 궁내부의 주사로 발탁되어 고종의 영어통역을 담당했다.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자 꼭 필요했던 것이다. 황제의 측근에서 통역을 담당함으로써 그는 국제적인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한글과 한문과 영어를 모두 접할 수 있었던 남궁억은 황제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외국 사신에게 전하려 노력했다. 그는 그저 형식적으로만 듣기 좋게 통역하지 않고, 외국어의 장단점을 잘 파악한 후에 우리 말글의 쓰임새에 알맞게 풀이했다.

그러므로 고종과 외국 사신 쌍방이 모두 뜻이 잘 통해 좋아했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우리 말글에 담긴 민족의 얼을 남궁억은 늘 잊지 않았다.

1887년에는 조민희를 전권대사로 한 유럽 순방단의 통역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순방단은 청나라의 간섭과 국내 문제로 유럽을 돌아보지 못하고 홍콩에서 2년간 체류하다가 귀국했다.

남궁억은 유럽을 견문할 기회를 잃었으나, 영국의 식민지인 홍콩에 2년간 체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홍콩은 제국주의의 선봉장인 영국이 중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먼저 집어삼킨 도시였다. 그런 홍콩에는 서구의 선진문물과 아시아 식민지의 참상이 혼재돼 있었다.

홍콩에서 귀국한 남궁억은 1889년에 궁내부의 별군직에 임명되었다. 고종 임금이 그를 신임하여 다시 불렀던 것이다. 별군직은 황제의 호위대였으나 실제로 그가 맡은 일은 통역과 번역이었다.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어느 날 고종이 남궁억을 친히 불렀다.

“탐관오리들이 들끓는 이 시국에 그대처럼 청렴한 자세로 나랏일에 임하는 선비가 있으니 참으로 든든하도다.”

“황공하옵니다.”

“그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오로지 청빈하게 짐과 나라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니 참으로 가상토다. 내 집을 한 채 내릴 터이니 사양 말고 받도록 하라.”

황제는 종로통 팔판동에 자리한 큰 기와집을 남궁억에게 하사했다.

4년 동안 별군직으로 근무한 남궁억은 1893년에 어명을 받고 경상도 칠곡부사로 부임했다. 그 당시는 탐관오리들이 각처에 들끓으며 백성들의 재물을 제맘대로 약탈하며 못살게 굴고 있었다.

칠곡은 유난히 관리들의 횡포가 심했다. 고종은 남궁억의 강직한 성품을 잘 알기에 그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남궁억은 고종의 뜻을 받들어 탐관오리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파직하고 그들의 창고에 쌓여 있던 산더미 같은 재물을 풀어 모두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힘없는 백성들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 후인 1894년에 동학혁명이 일어났다. 혁명군들은 온 나라 각지에 둥지를 틀고 앉은 탐관오리들을 징벌하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고을의 관아를 습격하곤 했다. 동학혁명군은 낡고 병든 나라를 뒤집어엎고 새롭고 밝은 나라를 건설하고자 했다.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박수를 보낼 일이었으나, 조정의 눈으로 보면 왕권에 반역하는 노릇이었다.

남궁억은 한 고을을 책임진 관리로서 동학군과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일단 군사를 이끌고 나가 혁명군 30여 명을 사로잡아 관아로 돌아왔다.

그런데 면밀히 조사를 해보니 진짜 동학혁명군은 몇 명 되지 않고 대부분은 순박한 농민들이었으므로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그는 동학군과 싸우면서 풀뿌리 민중의 고난과 숨겨진 힘을 알게 되었다.

남궁억은 언제 어디서든 백성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정직한 관리였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고을 백성들은 그의 공덕을 칭송했으며, 입소문은 순식간에 이웃 고을까지 퍼져나가 그 후로는 오히려 동학군의 보호를 받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걷는 동상>,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