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일
터키의 핵심 이념: 세속주의에 대한 이해

위와 같이 현 터키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 배경을 기본으로, 이제 우리는 터키공화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 특징인 세속주의에 대해 알아 볼 필요가 있다. 터키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정치이념인 세속주의(Secularism)는 세속화(Secularization)와는 구별되며, 공화주의, 민족주의, 국민주의, 정부주의, 개혁주의와 함께 공화국 건국이념들 가운데 하나이다. 아울러 모든 건국이념들은 이 세속주의를 설명하고 받쳐주기 위해 존재한다.

또한 이 세속주의는 단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로만 간주되지 않으며, 교육과 문화 및 삶의 전 영역에서 이슬람교와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한다. 이는 사상의 자유와 함께 한 집단의 종교적 사고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됨을 천명한다.

그러므로 현 터키 초기의 수많은 개혁들은 바로 이러한 세속주의 정신의 올바른 실현을 위해 나타났거나 혹은 이 세속주의 실현의 성공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터키가 이러한 세속주의를 천명하고 출발했다 해서 그들이 국민 신앙인 이슬람을 배격했다거나 이슬람 정신에서 이탈된 일방적인 서구화를 추구한 것도 아니다.

터키의 세속주의를 좀 더 가까이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국가의 통치 수단으로서 정치와 종교를 완전히 분리시킨다는 의미에서의 세속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 정통 이슬람(수니이슬람)에서 주장하는 이슬람법(쿠란)과 이슬람 전통과는 그 성향을 달리하면서 지역 전통과 문화적 요소를 이슬람 안에 포함시킨 의미에서의 세속주의이다.

그렇다면 터키의 건립자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아타튀르크(1881-1938) 자신은, 이 세속이라는 의미를 이슬람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슬람 없는 정치와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의지에서 사용했을까? 아니면 인구의 매우 높은 무슬림 구성비(99%)를 가진 터키로서 아랍 정통 이슬람이 추구하는 법과 전통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겠지만 고유의 민속신앙을 합친 '터키만의 이슬람'을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사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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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이에 대한 답은 아타튀르크의 연설, 저서 그리고 그를 연구한 수많은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즉, 그가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공화국이 매우 강한 세속주의를 표방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그의 강한 세속주의 주창에는 그의 강한 실리주의 추구와 현실주의 정신이 뒷받침돼 있었기 때문에, 아랍 이슬람과 근본적으로 성향에서 차이가 있었다. 그는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그것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이슬람이 결코 방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포용심이 그의 사상에 깊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아타튀르크가 추구한 세속주의는 위에서 제기된 두 가지 측면을 전부 포함하고 있지만, 후자보다는 전자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고 본다. 즉 국익을 위해 이슬람을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을 가졌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이슬람은 현대성과 서구 세속주의에 비해 지나치게 전통적이고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하향식 제도 규정을 통해 공공분야에서 이슬람이 차선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은 정부의 교육부문 독점, 칼리프의 숙청, 이슬람 학교(마드리샤) 폐지, 이슬람 관련 행사 규제, 종무기관(The Directorate of Religious Affiars)의 설립, 비(非) 성직주의(Laicism) 등이었으며, 여기에 종교와 정치의 완전한 분리 그리고 국가에 의한 종교의 엄격한 규제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이 세속주의가 터키 내 이슬람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은 무엇일까? 가장 커다란 영향은 무엇보다도 공화국이라는 국가공동체 안에서 인종, 언어 및 종교에 관계없이 국가의 국민 모두를 동등한 객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총체적 국가사회 실현을 위한 일종의 도구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국민대통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공화국 이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화국 법 안에서의 다양한 이슬람 종파와 다양한 다른 신앙을 가진 자들에 대한 평등과 균등을 보장해 주는 결과를 낳으면서, 오스만 제국의 불완전했던 통치 제도를 벗어나 모든 국민이 평등과 균등의 삶을 법으로 보장받게 되었다는 것은, 터키의 세속주의가 끼친 가장 커다란 영향이면서 동시에 터키 세속주의를 특징짓는 매우 특이한 사항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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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국회.
현 터키 집권당(AKP)에 대한 이해

현 터키 집권당인 'AKP'의 장기집권 성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신당으로서 'AKP'에 대해 거는 국민적 기대를 꼽을 수 있다. 'AKP'를 다른 기존의 우익 성향을 가진 터키 정당들과 비교해 보면, 여타 정당들처럼 어떤 특이한 상황(군사혁명 등의 사회적 소요)에서 태동되지 않았다. 또한 다른 정당들(CHP, MHP 등)처럼 전통과 국가적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당도 아니었다.

단지 국내 경제의 악순환 속에서 타 정당들에 대한 국민적 희망이 끊겼다고 생각되었을 때, 더 이상 선택할 정당이 남아 있지 않다고 여겨졌을 때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집권한 당이었다. AKP 이전 터키 경제는 난항과 악순환을 거듭해 왔으며, 이로 인한 국민적 실망과 새로운 정당에 대한 갈급한 마음과 기대감이 AKP를 집권하게 만들어 주었다.

예전 당 의원들에 의한 새로운 당의 결성이라는 면이 있지만 분명 신당이었고, 신당의 출현이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실려 있었다. 또한 AKP의 정치지지 세력들은 당시 터키에서 보수 혹은 원리주의 이슬람에 뿌리를 두었던 중산층 무역 상인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새 변화를 추구하였으며, 세속주의 자본주의자들이 세워 놓았던 기존 제도를 인정하는 정책 이미지를 보였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지지자 층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던 것이 장기집권의 한 원인이 되었다.

둘째로, 공화국 초기부터 국가적 숙원이었던 유럽연합 가입을 위한 AKP의 외교적 성공을 언급할 수 있다. 1999년 헬싱키 정상회담 이후 가속을 얻게 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과정에서, 지금까지 어느 집권당도 하지 못했던 가입에 대한 청신호가 국민들로부터 장기집권에 대한 약속을 받은 셈이 되었다.

사실 이 부분도 AKP의 외교적 성공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지금까지 공들여 온 지난 모든 집권당들의 노력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지만, 아무튼 AKP로서는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었을 뿐인' 행운을 얻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AKP의 등장과 집권은 이러한 국민적 실망과 분노, 새로운 당에 대한 국민적 갈망과 기대, 그리고 터키 경제의 돌파구로 인식돼 왔던 유럽연합 가입에 대한 희망이 모두 한데 어우러지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에르도안이 이끄는 AKP의 정치적 성향이 강한 우익 이슬람으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16년의 4선(四選) 집권 성공은 결국 AKP에 거는 국민적 기대감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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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국민들의 절대적인 표를 얻으면서 계속적인 집권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AKP가 가지고 있던 민주주의, 우익 이슬람 성향이나 에르도안 개인에 대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있었다고까지 연결 짓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오히려 화폐개혁, 환율조정, 악성 인플레이션 등의 원만한 조율과 성공을 통해 터키 경제를 이끌어 갔던 에르도안 리더십에 국민들의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반감이 숨겨지고 보류됐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왜냐하면 최근 이스탄불의 Gezi park 시위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반정부시위를 통해서도 보았듯,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아타튀르크에 의해 설립된 터키는 세속주의를 바탕으로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 집권당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탈세속주의를 향한 일련의 정치적 행각과 이미 드러나 버린 에르도안 개인의 재정 비리 의혹 사건들에 대한 국민적 불만도 결코 작은 사안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또다시 터키 경제에 위기가 찾아올 경우 국민들은 언제라도 새로운 정권을 갈망하게 될 것이며, 이는 언제라도 현 집권당의 실각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의미는 다시 세속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원래의 터키의 모습으로 환원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다음 주제로도 다루겠지만, 굳이 이번과 같은 무력과 폭력을 통한 군사 쿠데타 시도가 아니라도 터키의 향후 경제 상황에 따라 현 정권의 집권은 늘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 시도는 그 성패를 운운하는 것보다, 이러한 기본적인 경제 질서 개념과 민주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면에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 에르도안 정부가 그동안 이루었던 개혁들을 간단하게 살펴 보면, 무엇보다 국내적으로는 공화국의 핵심이념인 세속주의에 대한 매우 강한 위협과 도전이 있었다. 다수당인 현 집권당에 의해 터키 세속주의가 위협받는 일련의 정책들이 국회 안에서 수립되어 법안으로 상정되고 입법화돼 발효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터키 세속주의와 충돌되는 가장 예민한 두 가지 사안은 1932년 발효됐던 공화국 복장법(服裝法)의 폐지와 터키 군부 내 개혁이었다.

터키에서 복장법이 폐지되었다는 의미는 여성의 히잡 착용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는 터키의 복장법 자체가 규제와 금지의 법으로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터키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는 단순하게 '입고 못 입고'의 문제를 벗어나 터키 세속주의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으며, 세속주의의 존폐가 이 복장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인식돼 왔다.

다음으로는 터키 내 군부의 개혁이었는데, 지금까지 공화국 건국이념의 수호자 자리를 지켜왔던 터키 군 내부에 이제 더 이상 아타튀르크의 정신을 계승할 세속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지금 터키 세속주의는 매우 강한 도전과 위협을 받고 있다. 현 집권당으로서는 탈세속주의와 이슬람 성향의 다양한 개혁들을 이루어나가는데 있어 언제라도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는 터키 군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터키 군부의 막강한 권력을 줄이는 사안이 지금도 유럽연합이 터키로부터 요구하고 있는 정회원 가입 조건들 중 하나라는 사실로부터, 터키 군부 권력의 축소라는 현 집권당의 개혁의지를 정당화시켜 줄 수 있었다. 이는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이념을 수호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힘으로서의 군부 세력이 늘 부담스러웠을 에르도안에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갖다 주었다. <계속>

/김종일 아세아연합신학교 중동연구원 교수(jikiman@gmail.com)
김 종일 교수는 터키에 16년 체류하면서 이스탄불대에서 역사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Friends of Turkish World 한국 대표로 28년째 터키어권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앙카라대 교수를 거쳐 현재는 아세아연합신학대 중동연구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