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담]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2

크리스천투데이는 새해를 맞아 한국교회의 대표적 강해설교가인 박영선 목사(남포교회)를 만나 신년 대담을 진행했고, 이를 총 3회에 걸쳐 게재한다. 다음은 박 목사와의 일문일답.

[대담=류재광 편집국장, 정리=이대웅 기자, 사진=김진영 기자]

박영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담을 이어가던 박영선 목사는, 그러나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동성애 문제는 합의 못 해… 성직자 과세는 융통성 있게

-지난 한 해 국내외에서 동성애 문제도 매우 큰 논란이 됐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동성애는 죄"라는 보수적 입장이 절대 다수지만, 일각에선 "교회가 동성애 혐오증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진리 문제에 속하는 것은 합의해 줄 수 없습니다. 죄는 죄입니다. '너희는 죄짓지 않느냐'구요? 우리도 짓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과 거짓말을 합법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성이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론과의 싸움입니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 해서 양심적·도덕적 가책을 면하겠다는 것인데, 교회는 그렇게는 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권력기관이 아니지만, 그 말을 해야 하는 유일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성직자(종교인) 과세가 2018년부터 시행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시대가 문제를 삼는 것이 있다면, 진리에 관한 문제가 아닌 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합니다(박 목사가 시무하는 남포교회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교역자들의 근로소득세를 자발적으로 내고 있다. -편집자 주)."

예수 믿음에도 불구하고 절망 뿐이라면 세상에 속은 것

-7포 세대, 헬조선, 흙수저 등의 신조어들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방증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 특히 젊은 목회자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신다면.

"기독교 안에서도 자주 견해가 갈리는 핵심 내용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들에서는 인간이 신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것까지도 인간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만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설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시고 우리에게 복과 승리와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아닌 당신께서 원하시는 걸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납득하지 못해서 계속 타협안을 내거나 하나님을 기만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셔서, 이스라엘이 기만할 때 그들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하십니다.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뒤 우상을 숭배하지 않게 됐는데, 그러고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나서야 예수께서 오십니다. 로마서 5장 8절 식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우리와 의논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간구에 반응하시는 것도 아니며, 최후의 방법도 아닙니다. 예언된 메시야입니다.

세상이 죽음으로 내몬 그 자리서 하나님께서 부활 주셔

박영선(세로 편집본)
▲박영선 목사는 우리의 부족함과 절망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희망이 있음을 역설했다.


믿음이 추상명사로 돌아가서는 안 되고, 그 본질적 내용을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순교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막하고 절망 뿐이라면 세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가장 중요한 일은 골로새서 2장 15절과 같이 '정사와 권세를 드러내어 이기신 것'입니다. 세상이 가진 권력과 힘을 다 동원해도 만들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예수께서 죽으신 자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력의 정체가 폭로되는 자리입니다. 메시야도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세상의 정체를 보이는 자리입니다. 예수께서 수치를 당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어디서 주십니까? 세상이 모두를 죽음으로 내몬 그 자리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기독교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께 붙잡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돼도, 그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데 남은 생애가 다 필요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음이란 모든 것에 반대하는 때'라구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자기가 속한 환경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모가 제일 마음에 안 들지요. 하자는 대로 다 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애가 크나요? 이 절망에 부딪혀 보지 않으면, 장애물에 걸려 보지 않으면, 사람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쯤 그런 시기를 심하게 겪었습니다. 히피문화가 유행하고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때 가장 유행한 말이 '너 자신을 믿으라'였지요. '마이 웨이'라는 유명한 영화도 있지 않습니까? 보통 그것은 마피아들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때쯤 미국에서는 기독교가 쇠퇴하고 그 생명력을 크게 도전받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부유해졌습니다. 희한하게도 가장 잘살던 시절에, 생명과 진리가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소비와 유흥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그러면 모두 다 썩습니다. 그 시기 유명한 배우가 제임스 딘이었는데, 그가 출연한 유명한 영화 중 하나가 '이유 없는 반항'입니다. 미국에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가장 잘해줬던 시절이었는데도 젊은이들이 반항하는 것입니다. 제임스 딘이 영화 속에서 온갖 못난 짓을 다 하는데, 젊은이들은 다 거기에 열광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분풀이하고 보이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밖에는 자존심을 달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 중 하나가 영혼의 갈증입니다. 예수를 믿건 안 믿건 모든 인생들이 그 과정을 지나갑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만나 주셔서 답을 찾게 하시는 은혜'를 누리는 이들이 기독교인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하고 진정한 가치를 보이는 존재와 자신의 인생 속에서 구현하는 것, 세상이 겁을 주고 속이는 가운데서 창조주와 생명과 진리와 영광을 가진 자가 살아내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설교자는 청중의 하나이자 생활인이라는 점 붙잡아야

-명설교가이신 만큼, 설교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교인들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설교를 하기 위해 특별히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요.

"설교자는 모세처럼 자기 백성 중 하나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언제나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요, 때문에 현실을 사는 생활인이라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는 그 생활인들과 동등한 조건 속에 있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이 같아서 부딪히는 도전과 위협과 걱정거리가 같아야 합니다. 사업가, 직장인, 예술가, 직종은 조금씩 다를 순 있지만 본질적으로 부딪히는 질문은 다 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가치는 얼마큼인가' '어느 정도 책임지고 타협하며 살아야 하는가'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등입니다. 보통 이것을 감당하지 못해 술을 마시는 것입니다. 맨정신이면 밤새 싸워야 할 일을, 술 취하는 것으로 얼버무리고 내일로 미루며 그렇게 살아가 버리죠.

성경에 다 있습니다. 아간도, 밧세바도, 정당한 선지자도, 가짜도, 느부갓네살도, 고레스도, 고래 뱃속에 들어간 요나도, 가룟 유다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나옵니다. 지난 2천 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교황이기 때문에 크게 공헌했던 사람, 교황임에도 불구하고 못났던 사람, 기독교와 전혀 관계없지만 큰 일을 한 칭기즈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악역을 맡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닙니다. 히틀러 때문에 유대인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고, 당시 침묵했던 기독교계가 후회를 가슴에 안고 살게 됐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일제 때문에 신사참배와 순교가 있었고, 고신이 있고, 희한하게 하나님께서는 배신자들과 더 많이 일하셔서 신사참배를 수용한 교단들이 더 커지고....... 얼버무리며 가고, 양심을 기만하고, 타협도 하고....... 꺼내 놓고 할복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 설교 본문을 생생하게 현실로 갖고 들어와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기회와 조건 속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 교인들이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건너편에서 승자들과 유능한 자들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정황, 각각에게 창조와 부활의 권능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내 형편에 맞게 찾아오십니다. 그것을 알려 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다 보면 설교자나 청중 모두 새로움을 잃어버리거나 선입견에 사로잡힐 수도 있을 텐데, 이 점을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대신에 깊어집니다. 같은 본문이 다르게 읽힙니다. 성경을 읽으면 구원과 성화와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깊고 크게 만드시는가를 더 깊고 무겁게 깨닫게 됩니다. 같은 본문으로 다시 이야기해도, 나이가 들면서 증언과 해석이 더 나아가게 됩니다. 나중에는 더 나아가진 못하더라도 연륜이 쌓여, 평범한 말도 묵직한 증언이 될 것입니다. 설교는 비단 설명이 아닌, 자기 인생의 증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