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 설교] 복된 가정(2)

김진영 기자  jykim@chtoday.co.kr   |  

날짜: 2012년 5월 20일
본문: 시편 128:1~6
설교: 김동호 목사
제목: 복된 가정(2)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 크리스천투데이 DB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복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복 중에 최고의 복은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구원 얻게 하신 복입니다. 그 복이 다른 복과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복이라는 것은 두 말 없이 인정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주시고 싶어 하시는 복이 그것이 전부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주시고 싶으신 것이 너무, 너무 많으십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에 중독이 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을 주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복 자체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삼게 되기 쉽습니다.

그 하나의 예가 맘모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질과 물질의 넉넉함과 부요함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복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복을 너무 탐닉하여 물질을 하나님처럼 섬기며 그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빠지기 쉬운 위험 가운데 하나는 기복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되지 못하고 세상적인 복이 삶의 의미와 목적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세상적인 복을 얻고 채우는 좋은 수단과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와 같은 기복신앙의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아예 세상적인 복을 악하고 부정하고 천한 것으로 매도하고 정죄하는 금욕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자신들은 자신들이 경건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의 경건주의자들은 금욕주의자들입니다.

저들은 물질과 쾌락과 즐거움과 편안함과 넉넉함과 편리함을 거부합니다. 독일을 여행하면서 과거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지를 찾아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살았던 수도원을 보았습니다.

방에는 이렇다고 할 만한 가구가 없었습니다. 딱딱한 나무 의자와 초라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침대는 물론 없었습니다. 푹신하고 포근한 자리에서 잠자는 것을 타락으로 보고 마대자루 같은 것에 낙엽을 담아 그것을 매트리스로 사용하였습니다. 당연히 식사도 험했고, 불편한 자리에서나마 충분히 수면을 취하는 것 역시 죄로 여길 정도로 생활이 엄격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집중하기 위하여 저들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극기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저들은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하여 부부생활을 하는 것도 자식을 낳아 저들을 돌보며 저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을 누리는 것 조차 저들은 금기시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수도원을 돌아보면서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저들의 그와 같은 삶에 감동하셨을까? 저들의 그와 같은 삶을 기뻐하셨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안타까워 하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속상해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물질과 쾌락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쾌락주의자, 물질주의자, 기복주의자들도 안타까워 하시지만 반대로 자신을 경건의 이름으로 학대하며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즐거움과 여유와 기쁨과 쾌락과 넉넉함을 다 부인하고 살아가는 금욕주의자들도 속상해 하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항상 자신에게 가장 힘든 일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즐겁거나 재미있는 일을 무조건 다 타락으로 또는 타협으로 매도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이 짧은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 하셨고 죄인과 세리와도 허물없이 지내셨던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저는 땀이 떨어지는 핏방울처럼 되도록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되지만 이와 같이 그냥 허물없이 먹고 마시는 것 좋아하시고 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내시는 인간적인 예수님의 모습에도 은혜가 되고 감동이 됩니다.

우리는 너무 경건과 영성이라는 이름하에 사람을 잡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신종 율법주의처럼 여겨집니다.

얼마 전 시작한 페이스 북 tv에서 돈에 대한 강좌를 시작하였습니다. 후배 목사가 그것을 보고 페이스 북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돈.....! 돌 .... 돈 ?”

그 글에 제가 또 댓글을 달았습니다. “0 목사 나도 돈을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또 돈을 돌 취급하는 사람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 돈은 내게 전부도 아니지만, 당연히 .... , 그러나 돈은 내게 돌도 아니지. 난 돈 좋더라. 그래서 늘 조심은 하려구 하지. 잘 있지?”

우리가 너무 세상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늘 조심을 해야하겠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감사함으로 누리고 즐기는 것도 우리가 훈련하고 연습해야 할 중요한 면이라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들이 많이 있지만, 저는 가장 큰 복 중에 하나가 가정의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뜻밖에 이 가정의 복을 제대로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를 않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 하는 우리 높은 뜻 하늘 교회 교우여러분들이, 그리고 저의 설교를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다 가정의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복된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이 어떤 가정을 복된 가정이라고 정의하고 계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된 가정은 참 인간적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참 세상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게 참 좋습니다.

복된 가정을 위하여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는 첫째 축복은 ‘손이 수고한대로 먹는 복’입니다.

사업의 형통과 경제적인 안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복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 사업의 형통과 경제적인 안정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분히 세상적인 안목이지 성경적인 안목은 아닙니다.

잠언 17:1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한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 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안정과 형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복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사업의 형통과 경제적인 안정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살다보면 예수를 잘 믿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데도 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고 경제적으로 힘든 때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어려움을 격고 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 쓰면 반드시 형통하고 안정된 삶을 사는 날을 약속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저는 좋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것이니 하는 일의 형통함과 경제적인 안정을 함부로 우습게 여기지 말고 받아 감사함으로 누리고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말씀하신 복은 부부사이의 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것을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가을 결실한 포도나무를 보는 것일 겁니다. 평생을 살면서 부부관계와 사이가 서로 결실한 포도나무 보는 것 같다면 세상에 그 이상의 복은 없습니다.

30년, 40년을 함께 사는 부부 100쌍 중 부부사이가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것과 같은 부부는 과연 몇 이나 될까요?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부부사이와 관계의 복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복을 마음껏 누리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함께 여행도 다니고. 부부가 함께 운동도 하고, 부부가 함께 좋은 것도 먹으러 다니며 마음껏 하나님이 주시는 부부의 복을 누리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부부가 부부의 연을 맺고 평생 함께 사랑하며 사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꼭 이 복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마음껏 누리며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말씀하신 복은 자식의 복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식의 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부모와 자식 그리고 자식과 자식의 사이가 화목하게 되는 복과 자녀들이 잘 되어서 세상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는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많은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상에 둘러앉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상에 둘리며 늙어가면서도 자녀들과 좋은 친구처럼 지내는 복을 받고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과 가정이 뜻밖에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에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보통 어렸을 때 부모를 좋아합니다.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특히 아버지들이 이런 저런 세상일에 바빠서 그런 아이들의 요구에 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모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놀아주고, 함께 다녀주어야만 아이들은 자라서도 부모의 상에 둘러앉게 되고 부모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기의 일에 바빠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면 아이들도 장성하여 자기 일이 바쁘기 때문에 부모와 함께 해 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무례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명령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저는 성경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저는 이 말씀에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오실 때 노크 하십니다. 그냥 들어오셔도 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하시지 않으십니다. 언제나 정중하시고 예의 있으십니다. 저는 우리 부모들이 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의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는 ‘상에 둘린 자식은....’이라고 말씀하신 그 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만 가치 있고 세상적인 것은 다 무가치하거나 심지어는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세상적인 것에 연연하고 그것을 누리고 즐기는 것을 타락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이 땅에서 행복하게 그것을 즐기며 사는 것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도에 행하지 않으면 세상적인 복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가 되면 세상적인 복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형통해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해도 그것이 지나쳐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형통하면 형통할 수록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그것을 더 잘 사용합니다. 가정적으로 남편과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면 그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깨닫고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좋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그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도에 행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약속하여 주신 오늘 시편 128편의 복을 다 받아 복된 가정의 복을 누리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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