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진지 드세요!”
“…….”
“아버님, 어서 진지 드시고 힘내세요.”
“밥 생각 없다!”
“아버님, 이젠 진지 드시고 힘을 내셔야지요.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지도 한 달이 넘었는데 이젠….”

“밥 생각 없다니까….”
“…….”

노인이 되면 다른 연령층보다 더욱 우울해지게 마련이다. 우울은 ‘슬픔’, ‘낙담’ 또는 ‘억울(抑鬱)’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즉 “어떤 울적하고 슬픈 것이 인간의 심리를 억압하고, 억누른다”는 의미이다. 노령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노인에게서 나타나는 우울 증상도 증가하게 된다. 노인들은 정서적으로 우울하다는 사실을 못 느끼거나 표현이 적어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소화장애, 통증 등의 신체 증상과 불면, 망상 등의 사고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노인들이 우울증에 노출되면 주변 사람들과 서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지 않고 쉽게 슬퍼하며 삶의 의욕이 사라지게 되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인 가족이 있는 경우에 가족의 분위기는 매우 암울해진다. 노인의 우울 원인도 일반적인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노인의 심리적, 신체적 특성 때문에 노인에게서만 발생되는 우울 성향도 있다. 주로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도 높은 우울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국노인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학대나 무시를 받는 노인들에게서 우울증과 치매의 비율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서 현저하게 높다고 한다. 노인들은 다른 연령층보다도 죽음에 임박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소천 소식은 노인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몇 년 전 우리 부부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LA 인근에 있는 한 실버 타운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은 은퇴한 노인들이 운집해서 사는 곳으로 온갖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 매우 아늑한 곳이었다. 그곳을 설명하는 한 관계자는 실버 타운의 특성상 노인들만이 모여 살기 때문에 연세 높으신 노인, 또는 질병에 시달리던 노인들이 소천하는 일을 자주 접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듯이 “노인 한 분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것이 전염병은 아닐텐데도 곧이어 다른 노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자주 본다”라고 말했다. 노인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남은 삶을 즐겁게 보내기도 하지만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충격으로 인해서 남은 삶이 급감한다는 것을, 학술적 연구 결과는 아닐지라도 관찰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특별히 배우자가 소천했을 때 우울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쪽 배우자가 소천한 후 남은 배우자가 그 충격으로 인해 곧 이어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있으며 심지어는 자살하는 경우도 간혹 보게 된다.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슬픔과 우울”이라는 논문에서 대부분의 우울 증세는 배우자를 포함하여 사랑하는 사람, 건강, 직업의 상실, 또는 수술로 인한 신체 일부의 절단 등의 요인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는 상식적인 말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특별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우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혼과 사별을 포함하여 대인관계의 단절 및 근래에 들어서 심각한 조기 퇴직으로 인하여 조기 노인화, 즉 일찍 노인 취급을 받게 됨으로써 상실감과 우울증을 경험하게 된다. 노인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은 사회적 구조로 인해서 피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다. 사별로 인한 우울증은 젊은 나이에 사별을 했거나 사별 기간이 길수록 우울증에 쉽게 노출되며, 동거 자녀가 없는 경우는 동거 자녀가 있는 경우보다 훨씬 우울증상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가능하다면 노인들이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나 전문 수용시설에서 다른 노인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는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우울증 예방에도 더 좋을 것 같다.

전요섭 목사, 황미선 사모(한국가정상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