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14년 10월 19일
본문: 갈라디아서 5:1
설교: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담임)
제목: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

▲김병삼 목사(만나교회)

[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Radical 그것은 Back to the Bible!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종교개혁은 소위 ‘소시지’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1522년 사순절에 취리히 최초의 인쇄업자 크리스토프 프로사우어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모여 소시지를 먹는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소시지를 먹은 일이 큰 사건이라니? 지금으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라 하겠지만, 당시에는 사순절 금식 기간에 소시지를 먹는다는 것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사순절은 중세 가톨릭의 가장 중요한 전통 중의 하나였으며 교황의 법령에 대한 거부였기 때문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부활 전 40일을 뜻하는 기간으로, 이 시기에 성도들은 참회와 대속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건하게 맞이하기 위한 기간이었습니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렌트(Lent)는 고대 앵글로색슨어 Lang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어의 Lenz와 함께 ‘봄’이란 뜻이 있는 명칭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사순절의 40일은 본래 기한이 없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역사에 보면 사순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이전의 40시간으로 계산해 2, 3일만 지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지키는 40일의 기간이 정해진 것은 325년 니케아공의회였습니다. 40일이라는 기간은 모세의 시나이 산 40일 금식과 엘리야의 호렙 산의 40일 금식, 특히 예수의 광야에서의 40일간의 금식 일수에서 유래한 것이죠.
이러한 전통은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 때에 와서 재(灰)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하여 40일을 엄격하게 지키게 되었습니다. 혹 우리에게 생소한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란 구약성서의 전통에 근거합니다. 재를 뿌리는 행위는 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 탄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이 마치 모세의 율법에 많은 규칙을 더했던 바리새인들처럼 중세교회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하기 위해서 초창기에는 단식의 준수가 매우 엄격해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저녁 무렵의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습니다. 물론 조류, 육류와 생선 심지어 달걀까지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지키기에는 너무나 힘든 규정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식 규정은 상당히 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시간도 앞당겨졌고, 식사 외에 가벼운 간식도 허용되었으며, 그리고 생선에 대한 금지도 해제되기에 이르게 되죠. 그러나 육식은 여전히 금지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넘어서면 안 될, 다시 말해 교회 전통이 무너질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통의 마지노선을 취리히의 일개 인쇄업자가 깨버린 것입니다.
물론 소시지를 먹었던 프로사우어와 일행에게 종교적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밀려드는 일 때문에 업무가 과중해 육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변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측에서는 사순절의 금식 규례를 어긴 인쇄업자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자들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그로스 뮌스터 교회의 신임 사제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참석해서 소시지를 먹지 않았지만, 이 신임 사제는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설교와 ‘음식물의 선택과 자유에 대하여’라는 저작을 통해 사순절에 육식을 금하는 것은 아무런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무엇이든 먹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서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생각나지 않으시나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츠빙글리의 글과 삶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 본질을 잃어버리면 멍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근본적인 개혁이란 결국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본질이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하게” 하기 위함이었는데, 그 자유의 복음이 다시 율법이 되어 우리를 종노릇하게 했다면 분명히 잘못된 것이죠.
바로 소시지 사건 역시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사순절에 소시지를 먹지 말아야 하는 어떤 근거도 성경에는 없다는 주장으로 시작해 스위스에 종교 개혁이 일어납니다. 성경의 근거가 없는 법령을 지켜야 하느냐의 논쟁은 큰 파문을 일으킵니다. 이 일은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루터가 주장한 ‘sola fide’와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 젊은 사제는 그로스 뮌스터 교회에서 행한 참신하고도 뛰어난 설교로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이 신임 사제의 이름은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였습니다.

비록 먹는 것에서 시작한 논쟁이었지만, 핵심은 성경과 교황권 사이에서 권위의 논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츠빙글리는 그의 책 [음식의 선택과 자유에 관하여]에서 금식의 문제에 대하여는 목회자가 성경에 근거해 올바른 견해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사순절에 대해 어떤 금식에 관한 규정이 없으므로 그 규정의 준수 여부는 자유에 속하는 것이며 이것을 어겼다고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견해입니다.
루터에게 율법이란 구원받은 자들에게 자유로운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루터에게 율법은 구원받은 자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입니다. 하지만 츠빙글리는 이 부분에서 복음은 율법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성경에 정당한 근거가 있는 율법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당연히 율법을 준수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츠빙글리에게 성서는 루터보다 어떤 면에서 훨씬 더 강력한 종교개혁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날마다 정해진 본문에 따라 설교를 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그는 이것을 무시하고 단지 성서에 기초해서만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통해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을 강해하고, 베드로전후서, 히브리서를 선택해 강해합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성서를 직접 읽을 수 없는 당시 사람들로서는 대단한 일이었고 충격이었습니다.
츠빙글리는 1522년 7월 2일 뜻을 같이하는 다른 10명의 사제와 콘스탄츠의 주교에게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복음을 설교할 자유와 사제들의 결혼할 자유를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때 츠빙글리는 비밀리에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물론 탄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취리히 의회는 츠빙글리 방식대로 성서에 기초한 설교를 인가하기로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서적 설교를 했던 츠빙글리의 명백한 승리였고, 츠빙글리는 대성당 사제직을 사임합니다.


자유의 복음을 선포하다!
츠빙글리는 1523년 1월 29일에 6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토론회에 참석하게 됩니다. 당시 토론의 주제는 성서의 권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토론회는 대중 앞에서 신앙을 설명하고 옹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가 사용되었기에 종교개혁을 전파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츠빙글리는 루터의 95개 조항의 논박문에 비견할 만한 67개 결의를 토론회에서 제시하게 됩니다. 이것은 청중 앞에서 행하는 최초의 공개적인 가톨릭교회에 대한 논박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왜 가톨릭교회는 성서의 권위를 주장하는 츠빙글리에 대하여 그렇게 반대했을까요?
츠빙글리의 주장대로 설교가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서에 근거해야 한다면 사순절에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은 그 근거를 잃어버리고 말게 되겠죠. 그러한 규정은 성서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황권, 사면권, 면죄부 등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토론회에서 스위스 의회는 츠빙글리의 설교가 성서적이며, 모든 사람은 성서에 따라 설교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츠빙글리는 독일어로 된 67개 결의를 그해 7월에 출간했습니다. 이제 루터처럼 츠빙글리도 67개 결의를 통해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의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결국, 그의 개혁은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온갖 율법과 우상의 멍에, 인간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말입니다.

67개 조항의 첫 번째는,
“복음이 교회의 확증이 없으면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서 교회의 권위가 아닌 성경에 근거한 복음의 권위만이 존재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했는데, 왜 교회의 권위가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자유를 속박하느냐는 것이죠.
중세 교회의 가장 큰 오류는 복음을 교황제도와 종교회의에서 마음대로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츠빙글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명료성과 확실성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설교의 원리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인간은 본질에서 영적이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이기 때문에 성경 본문이나 설교나 교부들이나 종교회의를 통해서 전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경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이성을 내려놓고 성령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기 때문에 교회나 종교회의, 교황의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자유하십니다.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우리를 찾아오셔서 알려 주실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의 미래와 갈 길에 대하여 권한을 가지고 있다면 참 큰 자유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당시에 종교개혁의 대상이었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일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인간에게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제사장 바리새인들을 무섭게 책망하셨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이신 하나님을 그들의 전통 속에 가두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 가운데 자유롭게 나타나야 하는 일을 인간의 전통이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먼 자, 병든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을 향해 안식을 범했다고 정죄하는 일들이 그렇게 일어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거니시면서 먹은 것 때문에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이성과 전통이 성경을 넘어서려는 것입니다. 그 전통의 권위가 성령님의 역사를 막아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성령님의 역사는 누구도 막을 수 없기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의 개혁의 핵심 중의 하나는 교회 개혁과 정치 개혁을 함께 시도한 것입니다.
츠빙글리는 사제들의 영적인 권한을 부정합니다. 이것은 중세 교회가 주장하던 에큐메니컬 종교회의도 부정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주장하는 것은 종교회의가 아니라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교인들의 총회가 중요하다는 것, 그 교회의 회중이 판단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특별한 권위가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왜 츠빙글리에게 있어서 제도가 개혁의 대상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제도가 생긴 것의 본질적인 취지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제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자신들의 제도를 섬기라고 말하는 순간 타락합니다.
당시 교회의 권력과 세상의 권력이 구분되지 않고 교회가 자신의 영적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심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직자들에게 교회를 치리할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의 권력자들에게는 세상을 치리할 권세를 주셨으므로 각자 자신의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교회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의 주장은 사회개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수도원 제도를 비판하고 성직자들과 수도사의 결혼을 주장합니다. 츠빙글리는 주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22년 안나 라인할트 메이어와 비밀리에 결혼하였고 2년 후에 축하연을 개최하였습니다.
이미 유럽에는 한 주교의 관구에서만 사제들에 의해 1,500명의 어린아이들이 태어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고, 잘 알려진 것처럼 수도원에는 몰래 버린 유아들의 유골이 지하에 가득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세 가톨릭교회와 종교개혁 교회가 분명하게 나뉩니다.
사제들의 결혼을 금하는 것으로 인간의 성적인 욕망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금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사용하느냐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종교개혁과 함께 1525년 취리히에서는 처음으로 “결혼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입니다. 타락을 막는 것은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법의 테두리에서 자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조건 없는 금지는 더 무서운 숨겨진 타락을 낳습니다. 또한, 허락된 자유 안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또한, 사회 개혁적인 측면에서 츠빙글리는 1523년 이자를 받는 것에 대하여 5% 이내에서 받도록 합니다. 또한, 농민들에게 부과되었던 10분의 1세를 폐지하고 매년 작황에 따라 새롭게 조정하도록 하므로 농민들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그는 수도원을 폐지하여 수도원의 재산을 병원과 학교를 위하여 사용하였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사회구제가 시행되도록 하였습니다.
그가 성당에 세워놓는 성상을 반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는 화려한 성상을 세우기 위해 돈을 쓰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물질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자들이 교회에 많은 기부금을 내서 연옥에서의 기간을 단축하려고 드리는 미사보다 오히려 그 돈을 가지고 자선기금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합니다.
실제로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 대부분의 성당은 당시 귀족들이 돈을 내어 지었던 개인 건축물이었습니다.

만일 우리 교회가 남겨 놓게 될 신앙의 유산이 건물이라면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참 큽니다.
교회는 이 사회를 지배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적이 되는 곳이 아니라 잠재적 믿음의 공동체인 사회를 향해, 잠재적 형제자매인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의 개혁이 커다란 저항에 부딪힌 것은 기존의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기득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서 개인뿐 아니라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우리의 삶에서 종교개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커다란 유혹은 교인들에 대하여 특별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내려놓아야 복음적이 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가지는 영적 유혹은 우리가 교회에 있으므로 세상과 특별한 대우를 받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존재 이유는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제가 하는 말을 오해 없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적은 “번영신학”과 “교회 성장신학”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교인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여러분의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며, 물질적인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글에 보니까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전도 원리 중의 하나가 그런 것이 있었다고 하죠.
“우리 교회에 와 보십시오. 2년이면 축복을 받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단이 사람들을 데려가는 방법이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만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곳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인가요?
우리 인간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에는 우리의 욕망이 끊임없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힘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욕망을 이루어 가려고 합니다.
결국, 교회에 모인 이유와 복음이 왜곡되면서 교회는 당연히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축복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려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육신의 몸을 입고 있었던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 앞에서 예수님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츠빙글리의 개혁 중의 하나는 예배 개혁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성상 숭배와 미사에 대하여 아주 과격한 개혁을 시도합니다. 무엇보다 “성상”에 대하여는 폐지를 주장하는데, 그 성상들이 우상으로 변질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학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된 이유는, 우리 인간들이 우상숭배의 여지가 있으면 분명히 타락하게 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루터와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과연 성상이라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의 맨 앞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면서 열리는 십자가를 보며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십자가를 보면서 숭배하게 될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머리를 숙여야 하는 곳은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인데, 당시 교회는 성모상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머리를 숙입니다. 그는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도 상징으로라도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스위스의 개혁교회에는 예배당 안에 어떤 상징도 남겨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미사를 반대하는 것에도 이르게 됩니다. 미사의 핵심을 “의식”에 있습니다. 성례전을 거행하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임한다고 믿는 것이죠.
하지만 츠빙글리는,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어떻게 성찬에 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으면 그 성찬을 통해 단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의 종교개혁은 아주 중요한 turning point를 제시합니다.
예배의 중심이 의식에서 설교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즉 말씀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대신할 것이 없다는 것이죠.

극단적인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예배에서 사용하는 모든 음악의 사용도 폐지하였습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에서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는 구절에서 찬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츠빙글리는 중세 찬양이 악기를 사용하여 지나치게 화려하고 인간의 기교를 자랑하면서 예배가 타락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해야 하는 예배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재능과 음악성을 자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잘못된 예배 형태는 ‘카스트라토’라는 창법을 만들게 되죠. 당시 교회는 여자들이 성당 안에서 노래하는 것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소년들을 통해 찬양을 하게 했는데, 그들의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 거세를 해서 성가대를 만든 것이죠.
어떤 아이가 자원해서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일들이 만연하고 있었는데, 특히 남부 이탈리아에서 가난한 가정에서 이런 카스트라토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카스트라토가 되는 순간 부를 얻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과연 성당 안에서 불리던 이 아름다운 목소리의 찬양을 하나님께서 좋아하셨을까요? 성당의 미사를 집전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찬양을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참 아프시지 않았겠습니까?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분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제가 만나 교회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예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물 흐르듯이 예배가 진행되는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정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지.”

물론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에 저는 모두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모든 성상을 파괴한 것에 대하여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걸어놓은 이유는 십자가를 숭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고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귀한 것입니다. 우리의 숭배 대상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성경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이 귀한 것이지 글자로 표시된 성경이 뭐가 능력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성경을 물려주고 싶은 것도, 그것이 성스러운 물건이라기보다는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를 준비하고, 음악을, 찬양을 하는 것이 우리의 재능을 나타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인지. 
우리에게 이런 긴장관계가 늘 있어야 합니다.
내 삶의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나의 최선이 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우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모든 규범을 너무 자유롭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긴장 관계 속에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권면을 드리고 싶습니다.
십자가나 성경책이 무슨 부적처럼 여러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가지고 다니면서 주님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십자가와 성경책이 여러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에서 떠나지 않는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시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종교개혁이 아니겠습니까?

츠빙글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박해를 받자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는 군목으로 깃발을 들고 직접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1531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 전쟁도 패배하게 됩니다. 그의 시신은 네 갈래로 찢겨 화장되었습니다.
츠빙글리의 죽음으로 스위스 종교개혁은 잠시 중단되었지만, 그가 뿌려 놓은 씨앗은 죽지 않았습니다. 하인리히 브링거가 바통을 이어받아 종교개혁을 진행해 나갔고, 몇 년 후 제네바에서 또 한 명의 강력한 종교개혁가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칼빈이었고 그렇게 죽은 씨앗에서 꽃은 피어났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칼빈의 종교개혁을 보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종교개혁자들의 피가 오늘도 우리에게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고, 오늘 한국교회와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