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성장 위주로 달려나가고 있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면서 교회의 부흥을 꿈꾸었고, 그것은 외적·물질적인 부흥으로 치달았다. 그 어간에 교회 성장이라는 세속화의 물결이 한국교회에 들어오면서 이에 대한 목회자들의 관심은 폭발하였고, 목회의 성공은 더 많은 부분이 교회의 수적인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 결과 외적인 성장의 모습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대형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대형교회는 세력을 더욱 확장하기 위하여 안정적인 장소로 이동을 하여 화려한 건축을 하고, 교육관을 짓고, 체육관을 짓고, 기도원을 짓고, 공동묘지를 사고, 최신식 시설에 화려한 교회당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게 되었다. 이것이 대체적인 한국 현대교회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교회가 대형으로 성장하여서 역할을 하는 것이 많이 있다. 큰 교회로서 역할이 있는 것이다. 항공모함이 그 본연의 임무를 감당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너도나도 대형을 꿈꾸면서 건물의 크기만 확장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대사회는 전문화로 나아가고 있다. 대형에서 소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룡화에서 과감하게 군살을 빼고 있다. 지나친 전문화가 전체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도 있다. 이것을 경계하여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세상은 일반적으로 전문화·다양화되어가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적인 흐름과 요구를 인식하여, 앞서가지는 못할지라도 이제는 전문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교회의 일반적인 표지와 역할은 기본이다. 그리고 덧붙여 개교회의 특색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것이 없다.

어느 교회를 방문하나 외적으로 모두 북과 드럼이 놓여 있고, 찬양단이 활성화되어 있고, 프레젠테이션에 광고도 내레이터를 활용하는 것, 좀 여유가 있으면 건물 확장하고 기도원 짓고 체육관 지으려고 하고, 이러한 외적인 모습에는 거의 다름이 없다. 설교의 내용도 대부분 복을 받으라는 메시지로 일관하는 것도 같다. 이제 어느 정도 화려함도 절정에 달했다고 본다. 교인들도 “오늘 은혜받았습니다”라는 말로 화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동일하다.

이제는 교회의 방향을 좀 다르게 하였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교회의 부흥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깊이 배우는 것이어야 한다. 대인관계에서는 정직하게 사는 것과, 돈을 바르게 벌고 사용하는 것, 대사회적인 관계에서는 공의를 실행하는 삶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 경제사범이 가장 많은 것과 그 중에 교인들이 가장 많은 경제범죄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너무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는데, 극단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는 교회가 수적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세력을 분리하여 확장하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가족이 되기 위하여서는 자녀들이 결혼하여 독립하여야 하듯이,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서는 일정한 숫자가 되면 교회를 개척하여 분리하여 주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새로운 활력이 되고 출구가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크지 않다고 하여도 이러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러시아에는 큰 교회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한 지역에 300여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교회는 자매교회를 수없이 개척하여 나간다. 전도자들을 훈련하고 파송하여 가정교회를 세우고, 인적·물적 지원을 통하여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래서 전체 도시를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는 것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크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고 작다고 못하는 것이 아닌 것을 보게 된다. 한 사람, 목회자의 생각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오늘 한국교회는 자꾸 움켜쥐려고 하고, 세력을 확장하려고 한다. 그것도 한 사람 목사에게 집중이 되어서 말이다. 한 사람의 생각이 전체이고 한 사람의 계획이 전체이다. 과거에는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오면서 목회의 방향이나 교회의 역할은 조직이나 구조도 달라져야 한다. 전문인들과 다양한 사람들로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대사회적 역할과 영향력을 고민하여야 한다. 장로들의 그룹이나 당회만으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들은 너무 은혜롭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계획을 가지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일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한 사람의 지도력에 의하여 교회가 수적인 부흥을 이루었고,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교회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진 시점에서 목회자는 정직하게 리더십을 사용하여야 한다. 한 국가의 지도자의 고집이나 편협된 생각이 이 사회를 얼마나 갈등하게 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현실 속에서 보고 있지 않는가?

교회의 공공성을 확립하여 나가야 한다. 종교의 사립화를 벗어나야 한다.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이나 대국가적인 역할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지극히 사적인 기능밖에 하지 못하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모든 교회가 나름대로 사회적 기능을 다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지극히 미미하고 교회의 명분을 이루기 위한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교회의 사회성 공공성 확립, 이것이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다. 교회가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이다. 선교사 수십 명 파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세상을 향한 지도적 역할과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백성을 목회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일이다.

고난당한 이웃의 손을 붙잡아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의 행적을 보면 얼굴에 미소를 띠고서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손을 붙잡아 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그렇게 온 사회가 야단인 것이다. 그 역할 때문이 아닌가?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악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난리의 소문들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고 각박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하고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교회가 이것을 외면하면 안 된다. 교회가 힘이 없고 약하다고 하면, 지역에 있는 몇몇 교회가 힘을 합하여 공동의 사역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성도의 교제도 이루어지고 교회의 연합도 이루어질 것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러한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한다.

현장의 소리, 세르게이(모스크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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