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루오. 미제레레 동판화 연작 58점중, 멸시받는 그리스도. 1917~27년.
한주간 루오의 동판화들을 보면서 멸시 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53장에 표현된 그분의 아름다움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2,3

복음적 신앙을 가졌던 루오(1871~1958)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의 죄성과 그로 인한 처참한 갈등, 파괴의 상황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비참함 등을 대면하게 됩니다. 당시의 예술가들이 대부분 예술을 도피의 수단으로 삼거나 현실과 유리된 추상의 세계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예술가로서 목소리를 힘껏 내었습니다.

색채의 화가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던 루오. 그러나 그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하루 아침에 부랑자 신세가 된 사람들의 비참함, 아픔과 고난, 무력함, 그리고 광기의 세상을 담아내기 위해 색채마저 포기한 채 58점의 흑백 동판화 연작 “미제레레”를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제작하게 됩니다.

“미제레레”는 다윗의 시편 51편에 나오는 “주여,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뜻입니다.

▲때때로 장님이 눈이 보이는 자를 위로했다.
미제레레의 세계…… 그곳에서는 온전한 아름다움이 파괴되어지고 사람이 사람 되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루오가 미제레레에서 표현했던 인간의 모습은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와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의 소망, 꺼져가는 심지의 소망이 되어 그 자리에 함께 계셨습니다. 소망 없는 자들의 소망. 그것이 내가 사모하는 예수님의 소망, 그분의 꿈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소망 때문에 모욕 당하고 십자가에서 철저히 죽으셨습니다. 그분 스스로 산산이 깨어진 질그릇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의 소망이신 아름다움의 회복을 포기하지 않으며, 지금도 고통의 자리마다 함께 존재하면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심정아 작가는 뉴욕 Parsons School 학사, 뉴욕 Pratt Institute 석사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설치미술을 전공했으며 국립 안동대학교, 홍익대 조형예술대학, 경희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