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중은 내 의도를 전혀 모른다
2. 논리 비약을 일으키지 않는다
3. 방향 전환 시 지시등을 켜준다

강단, 설교, 말씀, 성경
ⓒMitchell Leach/ Unsplash.com
지난 칼럼에서 ‘지식의 저주가 자주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설교자가 던져야 할 올바른 질문은 ‘지식의 저주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여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청중이 내 머릿속을 절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처음부터 쉬운 언어, 구체적인 언어, 단순한 언어로 준비해야 합니다. 설교의 실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단순하고 쉽게, 구체적 언어로 설교해야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설교는 글을 읽어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글은 이해가 안 되면 다시 읽어볼 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교는 다릅니다. 현장에서 한 번 듣고 끝납니다.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청중이 선포되는 말씀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설교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쉬운 단어, 구체적인 언어로 말해야 하며, 가급적 단문으로 말해야 합니다. 듣고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말해야 지식의 저주를 피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논리 비약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가 설교 중 논리 비약을 일으킵니다. 정작 본인은 논리 비약을 일으켰는지조차 모릅니다. 설교자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설교의 모든 과정과 메시지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입니다. 메시지의 진행과 방향 전환 역시 당연하게 보입니다.

청중은 다릅니다. 청중은 설교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논리 비약이 일어나면 청중은 당황합니다. 목사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는지, 왜 갑자기 설교의 방향을 트시는지, 지금 설교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모릅니다. 이런 일이 설교 중 두세 번만 일어나면 청중은 설교를 따라오지 못합니다. 방향을 놓치고 딴 세상을 헤매게 됩니다.

지식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세 번째 방법은 방향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방향 지시등을 켜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건너뛰는 부분이나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는 반드시 그 방향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다수 청중은 설교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상당한 노력과 수고로 설교를 작성하고 선포하지만, 설교 전체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설교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자의 경우 주로 질문으로 방향 지시등을 제공합니다. 서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관심을 끌어모은 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종종 질문을 던집니다.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왜…?”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 부분에 있어 하나님은(또는 성경은) 어떻게 말씀할까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이 같은 쉽고 단순한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면, 청중과 설교자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같은 위치에 서서 대답을 찾아가는 길에 오를 수 있습니다. 가끔은 청중의 자리에서 함께 공감한 후 질문을 던질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 걱정, 근심, 염려할 일이 많습니다. 두려워할 일도 적지 않습니다. 자연재해, 전쟁, 팬데믹이 일어나는 답답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말씀 속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간단한 질문, 공감의 언어는 훌륭한 방향 지시등 역할을 합니다. 설교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설교에서 논리 비약을 막아줍니다.

본론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방향 전환, 논리 전환이 일어날 경우 간결한 질문을 사용하면 청중의 생각을 끝까지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들리는 설교의 길이 열립니다.

설교 중간중간 방향 지시등을 던져주는 일은 아주 간단하지만 효과 만점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던지는 좋은 질문은 청중의 생각을 사로잡고,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청중들에게 사고의 물꼬를 터주어 설교 내내 길을 잃지 않게 합니다. 설교라는 여행을 멋지게 완주할 수 있게 합니다. 나아가 설교자가 나를 이해한다는 느낌, 설교자가 나를 위해 설교한다는 확신을 줄 수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 명료하게 설교하기 위해 노력합시다. 논리적 비약을 일으키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방향을 전환하거나 논리적으로 건너뛰어야 할 때면 방향 지시등을 넣어줍시다.

설교자가 말하는 위치에 있고 청중은 듣는 자리에 있습니다. 당연한 이 사실은 설교자에게 매우 유리합니다. 게다가 청중은 말씀을 듣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하지요. 잘 준비된 설교, 쉽고 단순하지만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설교, 지식의 저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청중과 공감하는 설교를 준비한다면 설교자는 청중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설교라는 여정을 멋지게 안내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식의 저주를 저주할 때, 청중의 가슴에 들리는 설교,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지혁철
▲지혁철 목사는 “탁월한 설교를 위해, 설교자는 자신만의 분명한 설교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지혁철 목사

잇는교회 개척
<설교자는 누구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