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과 가톨릭의 친교성: ‘검은 사제들’, ‘곡성’, 그리고 ‘손 the Guest’

입력 : 2018.11.04 17:33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드라마 ‘손 the Guest’ (上)

 

손 the Guest
▲“한국형 엑소시즘”을 표방한 드라마, <손 the Guest>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한국형 리얼 엑소시즘’을 표방하며 얼마 전 종영된 OCN 드라마 ‘손 the Guest’에 대해 분석합니다. 이 16부작 드라마는 김홍선 연출, 권소라·서재원 부부 극본으로 김동욱(윤화평), 김재욱(최윤), 정은채(강길영), 안내상(양신부), 이원종(육광), 박호산(고봉상) 등의 배우가 출연했습니다. -편집자 주

◈대중문화 속 구마(驅魔, exorcism) 의식: 무속의 굿과 가톨릭 엑소시즘

한국에서 빙의 혹은 귀신들림 현상을 다루는 대중문화 작품들을 보면 두 가지 뚜렷한 흐름이 확인된다. 바로 무속의 굿과 가톨릭 엑소시즘이다.

무속인과 가톨릭 성직자의 협업은 최근 대중문화에서 결코 낯선 장면이 아니다. 반면 무속과 개신교를 한 자리에 둔 작품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무속인과 개신교 목회자의 협업을 다루는 작품은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유독 귀신들림이라는 현상과 관련해 무속과 가톨릭 엑소시즘이 높은 친교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대중문화 측면에서는 영화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의 막대한 영향력을 이유로 지목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엑소시스트> 이후의 모든 엑소시즘 관련 영화는 이 영화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엑소시스트>에서 구마의식을 펼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구마사제들의 이미지는 엑소시즘을 가톨릭 교회의 전유물처럼 인식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이 영화가 구마의식을 주관하는 인물로 가톨릭 사제들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교회 공식 차원에서 구마의식을 승인하고 주관하는 기관이 가톨릭교회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개신교회 내부에서 구마의식 사례는 일부 신실한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개인적 체험증언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외 각 교단이나 교회의 공식적 차원에서 구마의식을 인정하거나 시행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손 the Guest
▲귀신들림과 엑소시즘 영화의 바이블, <엑소시스트>(1973)

다음으로 현실적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속과 가톨릭 엑소시즘의 친교 이유로는, 토착문화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상대적 개방성을 지목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선교 전략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천명한 바 있다. 이 회의를 주도한 교황 요한 23세는 다원화를 수긍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선교신학의 정립을 권장했다.

당시 이 요청에 화답한 인물은 독일 가톨릭 성직자이자 신학자인 칼 라너(Karl Rahner)였다. 그는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을 신스콜라주의와 결합해 소위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라너는 전 세계에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 혹은 기독교 교의를 믿지 않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세계 너머에서 세계를 통해 자기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그분의 신비로운 사랑에 부합하는 이웃 사랑의 삶, 신을 사모하는 삶을 살았다면 참된 신앙인이자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너의 관점에서는 신의 존재를 믿으며 헌신적인 봉사와 자기 희생의 삶을 사는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라너의 선교신학은 토착적 종교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진보 계열 정치운동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 그리고 조상 제사나 굿 등 한국 전통 종교문화에 비교적 열린 자세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와 선을 열망하는 방식, 그리고 신을 갈망하는 방식이 다를 뿐, 선한 정치인이나 선한 종교인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가톨릭 선교신학의 기본사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이유로, 오늘날 스크린이나 안방에서 접할 수 있는 귀신들림이나 구마의식 관련 콘텐츠는 모두 무속 아니면 가톨릭 엑소시즘을 주된 소재로 선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예가 <검은 사제들>(2015), <곡성>(2016), 그리고 얼마 전 끝난 OCN 오리지널 시리즈 <손 the Guest> 등이다. 특히 <검은 사제들>과 <손 the Guest>는 영화 <엑소시스트>의 오마주라 할 만큼 서사가 닯아 있다.

기독교 신앙인 입장에서는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왜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와 달리 오늘날까지 구마의식을 유지하고 시행하는가?”라는 물음이다. 둘째는 “왜 개신교회는 구마의식과 스스로 거리를 두는가?”라는 물음이다. 양측의 답변 가운데는 오래된 역사적 사정이 존재한다. 우선 가톨릭 교회의 사정부터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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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가톨릭 성직자의 구마의식 장면(프란시스코 고야 작). 실존인물 프란시스 보르지아 신부의 실제 의식장면을 그렸다.

◈가톨릭 구마의식: 미신적 오컬티즘에 대한 계도적 대안

2016년에 루마니아의 가톨릭 신학 연구자 루수(Alexandru Rusu)는 ‘로마가톨릭교회의 관습 속 귀신들과 구마사역(Demons and Exorcisms in the Roman Catholic Mind-set)’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가톨릭교회 구마사역의 역사적 기원과 시행양태, 그리고 오늘날의 실태를 조사하고 분석했다.

루수에 의하면, 가톨릭교회나 개신교회 공히 구마의식의 기원으로 신약 사복음서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축귀 사역, 그리고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축귀 사역을 지목한다.

여기서 주지해야 할 점은, 신약성서에 기록된 축귀 사역은 그 형태가 지극히 단순했다는 사실이다. 성서 속의 축귀 사역에는 오직 “권세에 힘입은 명령”만이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그 외 더러운 귀신에게 고통받던 이들이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라는(행 5:15)” 장면, 그리고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얹으면 악귀도 나가더라(행 19:12)”는 증언을 통해, 사도들이 직접 말로 명령치 않아도 그들의 그림자나 그들이 쓰던 물품이 귀신들린 자에게 접촉되면 귀신이 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으로 확인된다.

가톨릭교회는 이미 주후 3-4세기경부터 전문 구마사제를 지정하고 교회 공식 차원에서 축귀 사역을 수행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는 구마의식을 제정할 당시 “권세에 의한 명령”보다는 “사도들이 쓰던 물건을 통해” 귀신이 떠나갔다는 기록을 더 중시했다. 여기에는 정경 이외에 외경(the Apocrypha)에도 일정한 권위를 부여하던 가톨릭 교회의 성서해석법이 크게 작용했다.

외경, 특히 고대 아라비아어로 쓰여진 그리스도의 유아기 당시 복음서(the Arabic Infancy Gospel)에는 그리스도가 어린 시절 어머니 마리아가 축귀 사역을 행한 기록이 전해진다. 여기서 마리아는 귀신들려 고통받는 이를 측은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 그리고 귀신들려 고통받는 이의 머리에 어린 예수가 입던 옷을 얹어놓는 것만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숭배 사상을 신앙의 한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 이런 믿음은 구마의식의 방법을 설정하는 데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결국 가톨릭 교회는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낸”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기보다, 성수(holy water), 성유물(relic) 등 신적인 권위나 사도적 권위가 담긴 물질을 이용해 축귀 사역을 수행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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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에서 구마의식 때 활용하는 도구들, 성수, 성유, 묵주 등.

중세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기독교의 교세는 서유럽 전역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후 4-6세기까지의 꾸준한 선교에 힘입어 서유럽 전체의 공고한 국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가톨릭 교회는 구마의식과 관련해 여러 난항에 부딪치게 된다. 서유럽 전역에 기독교 선교가 완수되지 못한 당시에는 기독교적 구마의식과 이교적 오컬티즘의 초혼 의식 간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서유럽 전역이 기독교화되고 나서, 각 지역의 토착 오컬티즘은 기독교적인 옷을 입고 새로운 양태로 거듭나게 된다.

이는 일부 교회사가들이 지적한 대로 기독교 내 이교적 은사주의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이교적 요소들이 반영된 구마의식이 하나님의 직접적 역사라는 명목 하에 우후죽순격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분별한 역현종교적 작태에 대해, 중세 가톨릭교회는 마녀사냥이라는 과격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교회가 지정한 성직자에 의해 지정한 방식대로 수행되지 않는 구마의식은 모두 ‘마귀의 궤계’라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이 마녀사냥의 역사는 서유럽에서 16-17세기경까지 지속되다, 18세기 계몽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종결됐다. 이 당시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자 칼빈의 가르침과 자연과학 발달의 조류에 편승해 교회 차원에서의 축귀 사역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반면 가톨릭교회는 오랜 교회 전통을 일거에 철폐할 수 없어 공식적 구마의식을 유지했고, 이전처럼 빈번하게는 아니더라도 가톨릭교회 신자들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상위기관의 승인 하에 축귀 사역을 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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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톨릭 성직자의 구마의식 장면. 한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 한다.

루수는 논문 막바지에서 가톨릭교회가 구마의식을 그리 기꺼워하지 않으면서도, 불가피한 필요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음을 밝힌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이 이교적 점술과 초혼 의식에 눈을 돌리지 않도록 교회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해주려는 의도로 구마 의식을 계승,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루수는 과학주의적 사고와 세속화 풍조가 만연한 오늘날 서유럽의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교적 오컬티즘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면서,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이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리고 교회에서도 귀신들림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간간이 구마의식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런 관찰은 무속과 가톨릭 엑소시즘이 결합된 대중문화 콘텐츠를 바라볼 때도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검은 사제들>과 <손 the Guest> 같은 작품은 무속의 굿이 해결하지 못하는 귀신들림의 문제가 초월적 유일신과 그 신을 섬기는 제도적 교회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고 있다.

특히 <손 the Guest>의 결말이 그렇다. 구마사제 양신부(안내상 분)와 최윤(김재욱)이 자기 목숨을 버려 강력한 귀신의 범죄 행각을 멈추고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목에서는 무속의 굿에 대한 가톨릭 엑소시즘의 대안적 우월성을 내세우려는 암묵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엑소시스트>의 결말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는 사안이다.

즉 종교적으로 프로페셔널한, 그리고 사명감 넘치는 성직자들의 자기희생적 의식만이 귀신들림 문제에 대한 참된 대안이라는 믿음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분명 구마의식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신념을 대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개신교 성도 입장에서는 이런 신념이 부분적으로 공감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는 몇몇 교회사적 이유, 그리고 성서 해석상 이유로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여기에는 가톨릭교회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오래된, 종교개혁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역사적 사정이 존재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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