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하나님의 시간 운행에는 오차가 없다. 춘·하·추·동의 순환도 그 하나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머지 않으리."(셀리)라 했다. 그 어떤 기쁨도 슬픔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는 말에 대해 거역한 적이 없다.

무더위와 지루한 장마 등 힘들었던 여름도 서서히 가을에게 바톤을 넘기고 떠난다. 먼저 가을을 맞이하는 시 몇 편을 읽자.

①"가을 햇살이 좋은 오후, 내 사랑은 한때 여름햇살 같았던 날이 있었네/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 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그대 오는 길목에서 불  붙은 산이 되어야지 그래서 다 타버릴 때까지 햇살이 걷는 오후를 살아야지/ 그렇게 맹세한 날들이 있었네. 그런 맹세만으로 나는 가을 노을이 되었네 그 노을이 지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았네"(김현성/가을날)

②"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너와 나, 함께 있는 까닭에, 우리는 여름이라 한다. 부벼대는 살과 살 그리고 입술, 무성한 잎들이 그러하듯.../ 아 그러나 시방 우리는, 각각 홀로 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오세영/가을날)

③"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달빛이 깊어지는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 어인 일인지 부끄러워진다, 딱히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가을에게 자꾸만 내가 부끄러워진다"(강인호/가을에는)

④"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마종기/가을)

⑤"푸른 물감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이, 맑고 푸른 가을날이다. 하늘이 너무 푸르러, 쪽박으로 한 번 떠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은 기다림의 계절이 아닌가? 한 다발의 꽃을 줄 사람이 있으면 기쁘겠고, 한 다발의 꽃을 받을 사람이 있으면 더욱 행복하리라. 혼자서는 왠지 쓸쓸하고, 사랑하며 성숙하는 계절이다/ 여름내 태양의 정열을 받아 빨갛게 익은 사과들 고추잠자리가 두 팔 벌려 빙빙 돌며 님을 찾는다/ 가을은 모든 것이 심각해 보이고 바람 따라 떠나고 싶어 하는 고독이 너무도 무섭기까지 하다/ 그러나 푸른 하늘 아래...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은 더욱 아름답고 가을은 옷깃을 여미는 질서와 신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봄날이나 여름날, 한 잔의 커피를 마심보다 낙엽 지는 가을날 한 잔의 커피와 만남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가을처럼 사람들을 깨끗하고 순수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계절도 없을 것이다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가을은 혼자 있어도 멋이 있고, 둘이 있으면 낭만이 있고 시인에게는 고독 속에 한편의 시와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에 젖다 보면 다정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분에게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며 시를 쓰고 싶다/ 가을은 만나고 싶은 계절이다 가을의 맑은 하늘에 무언가 그려 넣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가을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들판으로 번지기 시작해 이 땅을 물들게 한다/ 우리는 어느 날인가 기다릴 이유가 없을 때, 이 땅을 떠나갈 사람들이 아닌가? 살아감은 만남으로 열리고 가을의 문도 열리고 있다/ 가을이 와서 바람이 되는 날, 가을이 와서 낙엽이 되는 날, 온 하늘이 푸른 바다가 되면 모든 사람들은 또 다른 계절로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후략)" (용혜원/가을이 주는 마음)

가을은 그 자체로 풍요롭지만 또한 심판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봄, 여름에 수고한 사람은 결실을 누리지만 수고와 노동이 없던 사람은 허전하고 죄송한 계절이기도 하다 '안 심으면 안 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절이니까.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