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4: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18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19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1. 룻의 속량자이며 ‘고엘’인 보아스는 결국 룻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이를 낳자 여인들이 찬양을 하였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여기서 정식으로 기업을 무를 자가 태어난 것이다. 이는 합법적으로 엘리멜렉의 기업을 되찾아 자신의 가문의 기업을 이어나갈 자이다. 그의 이름이 오벳이다. 물론 14절의 기업 무를 자(고엘)는 보아스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또 아들 오벳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다.

2. 아이를 낳자 여인들은 나오미를 축하했다. 여인들은 나오미에게 룻을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나은 자’라고 칭찬했다. 그 낳은 아이에 대하여는 ‘네 생명의 회복자요 네 노년의 봉양자’라고 하였다. 많은 경우 주위에서 바라보는 가난한 이웃들의 말이 참되다. 그들은 특히 같은 동네에서 사는 이웃사촌들이었다. 그 아들은 나오미가 품에 안고 키우게 되었다. 나오미는 그리스도의 가계를 이어갈 중요한 인물을 품에 안고 기르는 영예를 얻었다. 그 아들의 이름 ‘오벳’은 그 이웃 여인들이 지어준 것이다. 그 소년은 자라서 나오미를 섬기는 자가 되었다. ‘오벳’이라는 이름의 뜻이 ‘섬기는 자’이다.

3. 18절에서 22절까지는 다윗왕의 계보를 기록한다. 이는 룻이 낳은 아들이 이스라엘의 가장 훌륭한 왕 다윗의 조상이 되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또 이 기록은 후에 그리스도의 계보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한 이방 여인 룻의 충성된 삶과 보아스의 경건성, 나오미의 협력, 이 모든 것이 합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출생하시는 길을 열었다.

룻기를 마치며

1. 룻기의 가장 중요한 두 단어를 말하라면 ‘안식’(3:1)과 ‘구속’(무르다)이라고 하겠다. 이는 보아스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구속과 연합(룻과 보아스의 결혼)으로 말미암아서만이 안식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룻기를 읽다 보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이방 여인이요 불쌍한 과부인 룻이 이삭을 줍고 시모를 섬기는 일을 하다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비록 두 과부가 모압 땅에서 살다 들어왔지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뼈대 있는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길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원래 죽을 수밖에 없는 처량한 신세이지만 족보를 자세히 조사하면 영광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광스런 존재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기업을 다 잃었듯 우리 인간도 모든 것을 다 잃고 이삭을 주워먹는 근근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는 유력자이시며 참 ‘고엘’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긍휼을 입기 위해 나아가 그분의 날개로 덮어주시기를 구한다. 그분은 합법적으로(공의를 만족시키시면서) 또한 깊은 사랑으로 죄인인 우리와 결혼해 주신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위대한 족보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참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게 된 것이니 이 어떠한 축복이며 긍휼인가!

2. 사사기는 위대한 사사들의 능력으로 인한 구원사의 기록이다. 그 책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에 관련되며 그 영향이 전체에 미치는 큰 역사를 기술한다. 그러나 룻기는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경건한 한 가정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 두 권의 책은 서로 비교 가능하며 매우 관련이 있다.

사사기의 중점은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 그리고 구원에 있다. 그들의 정치제도가 어떤 것이고 왜 그들은 그렇게 각자가 소견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떠났는가도 다루었다. 그러나 룻기는 그들이 얼마나 경건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맛을 내는 식으로 살았는가를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사사기는 충성된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충성과 그 능력에 중점이 있다. 그러나 룻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경건한 삶에 중점이 있다. 나오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가히 하나님 자녀로서의 품격을 나타낸다. 보아스의 경건성은 우리의 탄복을 자아낸다. 하나님은 사사기에서 전 이스라엘을 관심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며 룻기에서 한 가정과 개개인을 얻기 원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나오미 한 사람을 위해 수많은 환경을 예비하셨으며, 그녀는 많은 환경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손길을 배웠다. 따라서 룻과 보아스가 결합하는 일에서 섬세하고 노련하게 하나님과 동역함으로 중매하는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일에서 중대한 족보를 형성하는 일을 이룬 것이다. 룻의 행위나 보아스의 경건성은 실로 어두운 사사기 역사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이 영롱하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모셔오는 일은 역시 경건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노선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오늘날 이 땅에 사사기적인 큰 역사는 도처에 있지만 나오미와 보아스의 집처럼 하나님의 냄새를 풍기며 생명의 길을 가는 작은 무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비록 수가 적고 큰 능력을 갖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무리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계 3:8). 이는 계시록의 빌라델비아 교회의 길과도 일치한다. 사사 시대에는 크고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있었으나 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전체적인 나라의 큰 역사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 작은 한 가정의 역사를 통해서 그분의 중심적인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진리에서 벗어난 어두운 사사시대에 나오미, 룻, 보아스 같은 사람들을 일으키시어 진리를 지키게 하시고 생명의 길을 보존하시며 그들을 통해 그분의 아들의 출생을 위한 노선을 잇게 하셨다. 성도들이여, 눈을 제발 큰 일에 두지 말라! 그것이 그분의 하시는 한 가지 일이실지라도 진정 주님이 관심하시고 기뻐하시며 그분의 중심적인 일을 주장해 나가시는 것은 이렇게 신실하고 경건한 작은 무리를 통해서이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하자! 진노 중에라도, 부패와 타락 중에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하실 일을 위하여 나오미 같은 여인을 마라로 만드시고 그 고난 중에 룻 같은 여인을 얻으시고 돌아와 보아스를 만나게 하셨다. 그들을 그러한 축복의 그릇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찬양하자!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오랜 작업인 것이다. 이 한 마디 찬양의 말로 강해를 마친다. 하나님이여, 당신은 진정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