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의 날을 보내매 3 그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하나와 나귀 두 필을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비가 그를 보고 환영하니라 4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를 머물리매 그가 삼 일을 그와 함께 거하며 먹고 마시며 거기서 유숙하다가 5 나흘 만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위에게 이르되 떡을 조금 먹어 그대의 기력을 도운 후에 그대의 길을 행하라 6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여자의 아비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청하노니 이 밤을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 7 그 사람이 일어나서 가고자 하되 첩장인의 간청으로 다시 유숙하더니 8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여자의 아비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돕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9 그 사람이 첩과 하인으로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첩장인 곧 여자의 아비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해가 저물어가니 청컨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찌기 그대의 길을 행하여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

1. 17장과 18장은 레위인의 종교적인 타락의 상태를 보여주고 19장과 20장은 레위인의 도덕적 상태의 하락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백성의 영적인 상태에 매우 관심하신다.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려면 가장 먼저 레위인의 상태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보시지 않고 레위인이 어떠한가를 먼저 보시는 듯하다. 그들이 어떠하다면 다른 지파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느냐고 하시는 것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레위인들의 상태를 주의하시고 살피시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것은 전 이스라엘의 상태가 좋은 것이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부흥이 일어날 때 온 성도들이 부흥되었다. 이 나라에도 1907년 평양에서 길선주 장로의 회개와 많은 목회자들의 열렬한 복음전파와 헌신과 순교가 이 땅에 큰 부흥을 가져왔다.

2. 이 글의 시작도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로 시작한다. 사사 시대의 이러한 하락은 왕의 필요성을 요청한다. 이 일이 일어난 곳도 미가의 신당이 있었던 에브라임 산지다. 그곳에 사는 레위인 하나가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다. 레위사람이 첩을 취한 것 자체가 당시 레위 사람들의 부패를 알린다. 2절은 이 첩이 행음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편을 떠났다. 첩이 행음한 것에 대해 남편과 좋지 않은 불화가 생겼을 것이고 따라서 여인은 떠난 것이다. 레위기 21장 7절은 여호와의 집에서 봉사하는 모든 레위 사람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레위인의 부패된 상황이다. 그 첩은 그녀의 집에 가서 넉달을 지냈다.

3. 그 레위인 남편은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자 했는데, 그 이전에 불화가 있었고 감정이 상해서 떠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에 그가 가서 다정히 말하려 한 것은 그가 그녀와 화해하려 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녀의 아비는 사위를 보고 매우 환영하였다.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부패와 옳지 않은 도덕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녀는 모세의 법에 의하면 돌로 맞아 죽어야 했고 마땅히 용서를 빌어도 죄를 지은 여자가 빌어야 하는 법인데 남편이 찾아가서 ‘다정히 말하고’ 그 맘을 풀어주어 데려오려 했다는 것은 법이 없는 이방인들의 실행은 되어도 하나님의 백성, 그것도 레위인들 가운데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나 성도들도 죄를 짓고 불순종하는 상황에서 사역자들이 그들을 붙잡아 놓기 위해 다정히 말하는 것이 있으니 이는 한심한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경우 다정한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니라 심한 책망을 들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나 멀리 떠나고 표준에서 멀어진 영적인 상태에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 레위인은 완전히 하나님의 제사장 지파 사람으로서 기세와 격을 잃었다.

4. 그러한 가운데 그가 삼일간 머물며 환대를 받은 것도 너무한데 장인이 붙잡는다고 하루를 더 머물고 다섯째 날까지 날이 저물도록 장인의 환대와 붙잡는 말에 붙들려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레위인은 분명한 계획이 없고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렇게 할 일 없고 게으른 사람들이 죄악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다섯째날 저녁에서야 장인 집을 떠나 길을 나섰다. 그때까지 그는 장인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렇게 느슨한 것이 불행을 불러왔다.

이렇게 한 사람 레위인의 부패하고 느슨한 육체의 행함 때문에 한 지파가 몰살당하는 비참한 결과가 오게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언행심사는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17, 18장은 한 레위인의 잘못으로 단 지파 가운데 우상 숭배의 장소가 생겼다. 그 장소는 오랜 후까지 하나님의 집과 대립해서 경배하는 또 하나의 중심지가 되어버렸다. 이 일도 레위인의 부주의와 죄 때문이다.

19, 20장도 또 한 명의 레위인의 부정하고 부패한 생활이 그야말로 끔찍한 상황을 불러들였다. 장인의 지나치게 붙잡는 환대도 문제가 있는 것이고(죄라는 것이 정면으로 처리되어야지―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보상할 것은 보상하며 책망할 것은 책망하며 심판할 것은 심판해야 한다―좋은 접대로 처리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끈끈하게 붙잡혀 떠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표명해야지 그렇게 죄를 감싸는 방식으로 처신해서는 안 된다. 장인은 자기의 딸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난 것을 환대로 무마하려 했다. 레위인도 축첩을 한 자체에 떳떳함이 부족한 터였다. 그러니 피차 죄를 사이에 두고 인간적으로 좋게 좋게 해결해나가려고 했다. 죄는 심판으로 해결해야지 환심이나 환대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주 예수의 십자가는 죄가 있어야 할 자리를 표명한다.

과거 어떤 형제는 죄를 지은 형제에게 분명하게 죄를 시인하기가 어려운 나머지 악수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려 손을 꼭 잡았다. 그것은 죄에게 좋은 대우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형제여, 내가 그 일에서 형제에게 그렇게 행한 것은 죄입니다.” 이것이 죄에게 합당한 위치와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죄는 심판과 수치를 당하게 해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봐주는 식으로 구원하시지 않았다. 그분의 사랑하는 독자를 십자가에 매달고 그 참담한 심판을 담당하게 하신 것이다. 이는 죄에 대한 공의의 하나님의 분명한 태도이시다. 그렇지만 부패한 도덕성을 지닌 이들은 죄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5. 레위 사람의 사환은 레위인에게 여부스 사람들에게 들어가서 쉬자고 하였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인의 도시로 들어가기를 싫어했다. 이런 말은 또 그가 부패하였으면서도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의지였다. 이와 같이 당시 그들의 영적 상태는 혼잡되어 있었다. 혼잡된 사람들은 일면 중심에서는 불순종과 거역을 지니고 살면서도 작은 일들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척 하며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인 일부분의 순종은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중심에서 순종치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긍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결국 여부스가 아닌 기브아로 가서 유숙하려 하였는데,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갈 6:7).

16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20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1. 기브아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날이 저물어 밤을 지낼 곳이 없는 나그네를 접대할 사람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를 사랑하고 잘 대접하라는 계명을 갖고 있는데(신 10:19) 이때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매우 하락되어 그 밤에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15절) 영접하는 자가 없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개의치 않고 개인과 자신들의 편안한 삶만을 관심한 증거이다.

2. 그때 한 노인이 그를 보았다. 그 노인은 고향이 에브라임 산지로 이 레위인과 동향이었다. 노인은 그에게 사정을 묻고 자기 집으로 안내하였다. 레위인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 했는데 이는 실로의 하나님의 궤가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하나님의 궤가 있는 실로, 여호와의 집에서 섬기는 사람의 영적 상태가 이런 정도에 떨어졌다는 것이 탄식할 만한 수준이다.

3. 그 레위인은 풍족하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니 잠만 재워주면 된다고 하였고 이 노인은 모든 것을 다 담당해서 접대하겠다고 나섰다. 이 노인은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그렇게 하였다. 노인은 레위인을 성심성의껏 접대하였다. 나귀도 씻겨주고 발도 씻게 해주고 마음을 다해 영접했다.

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대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23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24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 동틀 때에 여인이 그 주인의 우거한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누웠더라 27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1. 이부분의 글에는 당시 이스라엘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 비극이 일어난 시각은 그 노인과 레위인 객이 서로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이다. 그 노인과 동향인인 고로 할말이 많았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먹고 마시고 있었다. 동향의 소식도 서로 묻고 말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때 밖에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나며 소동이 일어났다. 그 성읍의 비류들이 레위인을 상관하겠다고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들은 남색하는 자들이었다. 이를 소돔의 죄(sodomy-男色)라 부른다. 소돔은 이러한 죄악으로 심판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소돔의 악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까지 퍼진 것이다. 이방 나라가 심판 받은 이런 악을 행하고도 하나님의 백성이 심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그때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하고 나섰다. 자기의 딸과 그 레위인의 아내를 내어주겠다고 제시했다. 그러자 레위인이 자기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었다. 일단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내어줌으로서 주인의 딸은 보호한 것이다. 그들은 그 첩을 붙들고 밤새 행음을 하고 새벽 미명에 놓았는데 동틀 때 알아보니 집 문 앞에 엎드러져 죽었다. 매튜 헨리는 지옥도 타락한 이스라엘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2. 그녀는 손을 문지방에 올리고 집 문 앞에 엎드러진 채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과거에 범한 죄를 회개하고 남편에게 용서를 비는 태도로 죽었다. 남편은 용서했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은 그러한 여자의 죄악을 심판했다. 그녀는 죄의 값을 받았다. 남편 레위 사람은 그녀가 밤새 어떻게 당했는지 새벽에 죽었는지 살았는지 일찍 살피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살기 위해 자기의 첩을 내어놓고 잠을 잤고 아침에 일어났다. 밤새 치욕을 당한 아내는 문지방을 잡고 엎드려 쓰러져 있었다.

그는 수치와 모욕으로 정신이 혼란되어 일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엎드려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집에 가자고 외쳤다. 아무 대답이 없자 그는 첩이 죽은 줄 알았다. 그리고 그녀를 그의 나귀에 매달고 자기 집까지 갔다. 자기 집에 도착한 그는 그녀의 시체를 칼로 마디마디 나누었다.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 이 어떠한 하나님 백성 가운데의 비극인가!

3. 레위인은 실로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먼저 가서 마디 마디 나눈 그녀의 시체를 각 지파에 보내면서 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기브아 사람의 죄악의 일을 그냥 묵인하고 지나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지나가는 객을 접대하기는 고사하고(한 사람도 영접하지 않았다) 그나마 접대하는 노인 집에 쫓아가서 이런 악을 행한 것이다. 나그네를 접대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이를 행하지 않는 것도 큰 잘못이다.

요한삼서에 그런 자가 있었다. 사도 요한 당시 주 안에서 나그네 된 자들을 접대하기는커녕 접대하는 자들을 내어쫓는 자들이 있었다. 사도는 이를 악이라 단정했다(요삼 11절). 그들은 그런 악에다 악을 더해서 극심한 음란의 죄를 범한 것이다. 악은 악을 불러오는 법이다. 각 지파는 그 사실을 알고 상당히 격분하게 되었다. “그것을 보는 자가 다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