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의 실수로 지난 9일 18회분의 사진 두 장이 이번 20회분의 것으로 잘못 게재되었습니다. 2009년 12월 17일 오후 1시경 실수를 바로잡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랄리벨라에 첫발을 내디디어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을 순례했을 때 이 도시에 대한 순례자의 기대와 호기심은 연민과 동정심으로 바뀌었습니다. 한때 중세 왕조의 수도로 크게 번영했던 ‘빛의 랄리벨라’는 오늘날 곤궁하고 낙후한 ‘어두움의 랄리벨라’였기 때문입니다.

▲ 랄리벨라에서 가이드를 자청한 고등학교 1년생인 기르마 데바세 군과 함께.
순례자는 곤다르에서 관광 가이드를 자청한 대학생 야레드를 만난 것처럼, 랄리벨라에서는 고등학생 기르마 데바셰(17살)를 만났습니다. 싸구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세수를 한 다음 옷을 바꿔 입고 호텔 문을 나오며 소년에게 랄리벨라의 명소 ‘바위 교회들’을 순례하기 전에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을 순례하자고 청했습니다. ‘순례’라는 말의 깊은 종교적인 뜻을 이해하지 못한 기르마는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순례’(pilgrimage)하다니요?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간다는 표현이 옳지 않아요?”
“기르마,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사람들은 굶주리고 헐벗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었지. 또한 소외 당하고 업신여김 받고 좋은 일 때문에 핍박받는 사람들이었지.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늘 계시마고 약속하셨다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주님이 계시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순례’한다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라네. 그리고 순례에는 베풀고 돕고 위로하는 행위가 따르기 때문이야.”

순례자는 소년을 따라 극빈자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걸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순례자는 이번 여행 중에 랄리벨라가 있는 월로 지방을 비릇한 에티오피아의 고산지역은 여러 해 계속되는 기근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다는 참담한 소식을 듣고 있던 터였습니다. 기르마의 말로는 마을의 일부 극빈 가족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아디스 아바바나 식생활 위협이 없는 에티오피아의 남부 지방으로 정처 없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에리트레아와의 전쟁 때 전사한 아들의 얼굴을 한번 보는 것이 이 할머니의 유일한 소망이다.
우리는 70대 중반 나이로 보이는 한 병들고 연로한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어둡고 고리타분한 냄새가 가득한 두어 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사는 그 할머니는 실성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하얀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고 누더기처럼 헤진 옷은 땟물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는 바라볼 수 없는 참담한 모습이었습니다. 극빈자 구호품으로 연명은 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사는 것이 할머니에게는 기적이었습니다. 며느리와 세 손자들은 지난해에 기근이 닥쳤을 때 멀리 살 길을 찾아 집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3년 전 에리트리아와의 전쟁 때 전사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순례자 보고 자기 아들이 아직도 꼭 생존해 있을테니 에리트리아에 가거들랑 찾아봐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난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으면 눈을 감을 수 없다오. 외국인 양반, 제발 내 아들을 찾아 줘요”
“할머니,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으시지요?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세요. 그리고 천국에 소망을 두시도록 하세요.”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그 할머니는 돈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순례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의 죽어가는 영혼을 위한 기도 뿐이었습니다.

“주님, 이 소자의 기도가 빈자(貧者)의 조그마한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 헛된 환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할머니를 긍휼히 여기소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참 생명이심을 깨닫게 하시고, 이 할머니가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죽은 아들이 아니라 살아계신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소서”

그 무렵, 가까운 교회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종소리는 랄리벨라의 어두운 움막에서 소망 없이 살고 있는 한 할머니의 영혼을 위한 순례자의 기도를 싣고 하늘로 하늘로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순례자 안리 강덕치(E-mail: dckang2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