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한 목사(본지 이사장, 남서울비전교회).
요즘 교인들의 부정직하고 실천적이지 못한 삶에 대해 사회의 비판이 매섭다. 기독교에 관한 인터넷 댓글을 보면 칭찬보다는 비난의 글이 주류를 이룬다. 대통령이 기독교인이고, 고위 공직자들과 사회 저명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크리스천임에도 기독교에 대한 이미지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국 교회가 이대로 간다면 20년, 30년 후에는 회복불능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 속히 실추된 기독교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 초기, 교인들이 보여준 선한 영향력을 본받아야 한다. 초기 한국 교회 교인들을 한자음 그대로 야소교인들이라고 불렀는데, 다음의 두 가지 사례는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잘 대변해준다.

1920년도에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사건 조서에 담긴 내용이다. 그 살인사건에는 증거는 없고 용의자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는 여인만 있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야소교인이었다. 법정에서 판사는 그 여인의 증언만 가지고 피의자를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인정해 사형을 언도하였다. 그 판사가 일본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말을 했다. “물증은 없지만 증인으로 나온 사람이 야소교 신자이므로 그의 말은 틀림없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이 여인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거짓말할리가 없다는 것이다. 물증은 없지만 여인의 증언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100% 믿어주고 수용 했다는 점이 정말 놀랍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초기 도덕성>이라는 연구 논문에 실렸던 내용이다.

두 번째 사례를 보자. 몇 년 전에 1919년 3·1 독립운동에 관한 일본 헌병대 일지가 발견되었다. 다음은 무라카미 헌병대장과 부하인 다나카의 대화 내용이다. “이번 폭동은 조선 야소교인들이 주도해서 생긴 일이니 주동자를 색출해서 잡아들여야 한다. 그들에게 예수를 믿는지 먼저 물어보고 믿는다고 하면 무조건 잡아들여라.” “믿으면서, 안 믿는다고 거짓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조선 야소교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본 사람들까지 기독교인들의 정직한 삶을 인정했다. 일제 시대 당시에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일제 헌병들이 문서에 남길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탄식과 한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했다. 이 말은 세상 가운데서 의로운 빛을 비추고, 부정과 부패를 막는 소금으로서의 삶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행함이 따르는 실천적 신앙이 되어야 한다. 예배 잘 드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정직하고 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기독교에 대해 잘못된 비판과 왜곡된 비난도 많지만, 우리가 수용해야 될 비판들도 적지 않다. 오늘날 교인들의 윤리수준은 초기 야소교 교인들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 한국 교회의 뜨거운 열정과 기도 정신은 세계 어느 나라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지만, 삶의 내용이 거기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비추는 거울이다. 만약 그 거울이 깨져 있다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전도가 되지 않는다. 불신자들은 잘 믿는 것에 감동하지 않는다. 정직하고 선하게 사는 모습에 감동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의 거울이 깨져있다면 속히 수리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