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인사로 선정된 주요 인사들의 유족이나 관련단체 등은 “표면적인 것만 갖고 친일파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교계와 관련 학계에서도 발표 과정에서 좀더 신중하고 다각적인 검토가 있었는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故 강원용 목사 “친일, 너무 쉽게 생각한다”

▲강원용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故 강원용 목사는 생전 그의 저서인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친일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던 적이 있다. 일제 시대 고초를 겪기도 했던 강원용 목사는 “일제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친일이나 항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며 “거물들이야 창씨개명도 거부할 수 있었겠지만 민초들이 무슨 수로 그런 것을 거부할 수 있었겠는가. 저항 시인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했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놀라겠지만, 그 시대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고 토로했다. 완전히 세상을 등지고 깊이 숨어 살지 않는 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 갱신하듯 선택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강 목사는 송창근 목사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송 목사는 일제시대 때 이런저런 사건에 연루돼 감옥에도 드나들며 무척 고생을 했다. 그는 생전에 ‘온갖 고문을 받아도 참을 수 있었지만, 남산에 끌려가 벗은 몸으로 나무에 꽁꽁 묶여 온갖 벌레들에 뜯기는 고초를 겪은 뒤로는 항일 활동에서 손을 떼게 됐다’고 말했다”며 “일본 경찰은 이후 김천에 숨어살다시피 하는 그를 불러 친일 유세를 강요했는데, 그는 어쩔 수 없이 강연을 나가게 됐지만 정치적 발언은 일절 하지 않고 만담식으로 가벼운 말들만 하다가 끝내곤 했다”고 밝혔다. 강 목사는 “해방이 된 뒤 송 목사는 (친일 행적들이) 어쩔 수 없는 소극적 행위였음에도 양심의 부담을 안고 조용하게 살았다”며 “그랬던 그가 오늘날 친일 목사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강 목사는 친일 논란에 대해 당시 우리 교계에는 세 부류의 지도자가 있었다고 그의 책에서 밝혔다. 하나는 주기철 목사처럼 감옥에서 저항하다 순교당한 사람이고, 그 다음은 진짜 친일하는 목사인데, 그들은 신사참배를 하러 가면서 “눈에 보이는 천황께 충성 못하는 사람들이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께 어떻게 충성하겠느냐”고 말하는 작자들이라고 했다. 나머지 한 부류는 부득이하게 일제의 테두리 속에서 목숨은 이어가면서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낸 인물이라고 밝혔다. 강 목사는 송창근 목사가 세 번째 부류였다며, “그가 했다고 하는 친일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면 그것은 친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자들 “두 번 죽이는 것 아니냐”

편찬위원회가 1차에 이어 또다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한 ‘성결의 아버지’ 이명직 목사에 대해서도 성결교단 등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차 발표 때 이명직목사 기념사업회는 ‘과연 이명직 목사는 친일인사인가?’라는 소책자까지 발간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기념사업회는 “표면적인 것만을 가지고 친일파 운운하는 것은 교단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명직 목사는 일제로부터 특혜를 누린 일이 없고,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제에 이용당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념사업회는 당시 “이 목사는 오히려 일제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비록 이 목사가 신사참배를 했지만, 이후 한국교회 교파를 하나로 통일하려던 일제에 항거했고, 일제가 성경에서 구약을 제거하려 하자 성경을 지키기 위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고 밝혔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지인 한국성결신문도 사설을 통해 “이들의 행보 속에 친일행적이 있음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다만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에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명단을 발표하더라도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윤치호 장로에 대해서도 김상태 교수(서울대 국사학과)는 의견을 달리한다. 윤 장로가 ‘내선일체론’에 동조한 것은 미국에 유학했던 윤 장로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이 지나쳤던 나머지 당시 국제정세를 황인종 대 백인종의 대결구도로 파악했고, 사회주의와 그 모국인 러시아에 대한 강한 적개심 때문에 일본과 힘을 합쳐서라도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밝힌 바 있다. 김 교수는 결국 나름대로의 정세 인식과 논리로 ‘자발적’ 친일활동을 벌였고, 이런 점에서 윤 장로가 친일보다는 ‘주관적인 애국자’에 가깝다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기장 총회는 지난해 총회에서 신사참배와 부일협력에 대한 공식회개와 사과를 표명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송창근 목사와 관련해 임명규 기장 총회장은 친일 논란에 대해 “잘못한 것은 시인해야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반발 기류가 만만치 않은 만큼 좀더 면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임 총회장은 또 “(발표가)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임 총회장은 송 목사에 관해 교단적인 대응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송 목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지만, 회개할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 교단은 신사참배와 부일협력에 대해 이미 공개적으로 죄책고백을 하지 않았느냐”며 다른 조치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