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나라도 선진국 형태의 주 5일 근무제로 바뀔 예정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5일 근무제의 실시가 임박해 지면서 불안해하고 있다.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모두 토요일과 주일을 야외로 나가 결국 교회의 붕괴가 닥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 5일 근무가 한국교회를 위기로 치닫게 하는 제도로 인식한 목회자들은 심지어 이것을 반대하고 있다.


선진국의 교회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주 5일 근무제가 그들의 교회를 약화시켰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을 교회의 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이미 그들에게는 신학적 자유주의가 그들에게 먼저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영향력이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부족 그리고 세속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주 5일 근무에 대하여 교회의 위기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창조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주 5일 근무제로 인한 한국교회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만드는 슬기를 발휘할 때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주 5일의 대한 올바른 신학적 세계관을 정립하여 성도들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의 날들을 숫자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시간으로 이해하고 그 나라를 위하여 일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삶으로 이어지게 해야한다.

직장에 얽매서 꼭 6일을 근무하라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 5일 근무제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성도들로 하여금 직장에서 6일간 땀흘리고 주일날만 안식일로 지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성경에 대한 엄청난 오해이다. 세속적인 직장의 제도가 주로 6일로 정해 졌기 때문에 6일을 근무한다.

교수인 나 자신 역시 일주일에 하루는 연구 일로 쉬고 토요일과 주일은 물론 쉰다. 그렇다면 문자적으로 6일간 땀흘리지 않고 사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근무는 4일 하지만 집에서 학교에서 또 교회에서 또는 외부에서 일을 한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삶이란 일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외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일에 대한 이해가 문제이다. 단지 일을 어떤 제도 하에서 6일간 일해야 참된 일의 정신이라고 본다면 잘못된 것이다.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책에 대하여 몇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노동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재정립 시켜야한다. 인간의 노동 기간을 5일이나 6일에 대한 논쟁보다는 모든 날이 하나님에게 속한 시간임을 명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주님의 날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땀흘리고 애쓰는 외형적인 노동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쉬는 것에 대한 반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6일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하루는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극복되어야 한다. 아무리 6일을 일한다고 하더라고 올바른 시간에 대한 이해가 성경적이지 못하며, 노동에 대한 이해가 플라톤의 극단적 이원론으로 신앙관이 형성되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창조에서의 6일과 안식일의 1일은 분리된 날이 아니며 비연속적인 날도 아니다. 안식일은 동일한 선상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날들의 연장이다.

따라서 삶의 현장에서 모든 날들은 하나님에게 속한 날로 인식해야지 숫자적이며 특정한 날은 노동의 날이며 남은 날은 예배하는 날로 생각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은 적절치 못하다. 따라서 노동이란 하나님이 시간의 주되심을 인정하면서 그 앞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두 번째 우리는 이 시대를 바로 알고 올바른 기독교 문화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이런 제도에서 침체된 한국교회가 성장하기 위한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성경은 불변하지만 상황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문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 드려서도 안되지만 그 문화를 무조건 거부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문화를 변혁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기에 올바른 기독교문화사역의 역할이 있다. 우리는 주말의 확장으로 인해 성도들이 예배당을 떠나 교회가 약화되는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 물론 약한 성도들이 교회를 자주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올바른 시간과 휴식 그리고 성서적 창조적 즐김 그리고 시간에 대한 올바른 기독교인의 책임의식을 필요로 하는 기독교 교육의 총체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토요일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날은 교회에서 각종 행사를 통해 풍부한 기독교의 축제를 기대해 본다. 토요일에 교회의 주관으로 성도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자연 속에서 성도들이 교제하고 말씀도 듣고 성경공부를 할 수 있다. 또 운동, 자원봉사, 현장교육, 주말 부흥회, 음악회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반은총의 영역을 기독교 세계관에 맞게 보낸다면 왜 두려워하는 날이 될까?

오히려 교회가 주체적인 역할을 하여 성도들이 그 날에 참여하여 함께 어울려 사는 계기도 기대해 본다. 이제 주일날 예배당에 한 번 보고 헤어지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성도들의 만남과 창조적 즐김의 모임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 이런 계기를 통하여 일어나길 기대한다.

이 제도의 시행을 통하여 교회는 침체된 한국기독교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준비하자. 우리의 즐김이 우리를 위함이 아니라 기독교 가정의 풍부함과 교회의 풍부한 영역의 확장과 자연과 문화 그리고 세상에서의 교회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좋은 도약의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한국교회는 성도들을 예배당이라는 건물에서 모이는 것에 치중해 왔지만 이제 시간과 공간을 좀더 확장하여 기독교의 창조적인 삶으로 인도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기독교인을 포함하여 한국인들은 지나친 노동을 해 왔다. 물론 경제적인 부흥을 이뤘지만, 물질의 부유함이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모두에게 삶의 질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오늘날 어떻게 사는가? 획일적으로 네모난 아파트 건물에서 살다가 빌딩 숲에서 하루를 보내고 주일이면 예배당으로 오는 자들이다. 가족끼리 주말을 보내고 산과 바다로 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이제 한국교회는 예배를 주관하는 자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삶의 정황을 바르게 이해하여 진정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풍부한 축복 속에서 생활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교회가 일과 휴식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정립하여 성도를 바르게 이끌 생각은 없이 마냥 주말에 성도들이 교회오지 않는다고 걱정만 할 것이 아니다. 교회가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이제 교회관의 새로운 패러다임 쉬프트가 필요하다. 건물에 집착된 교회관에서 탈피하여 영역을 초월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지혜를 보일 때가 되었다. 사실 오늘날 크리스천 젊은이들은 방황하고 있으며 교회에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관심과 교회와의 관계를 주말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문화적으로 재창조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주일 예배와 친교모임에 대한 역동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강요가 아닌 바로 하나님이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시며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시며 우리의 일과 쉼 속에 함께 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의 주권자 되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주일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친교하고 헤어지는 기존의 사고의 틀을 벗어나 이제 좀더 지혜가 필요하다. 예배도 좀 창의적이며 역동적으로 드려지며, 예배가 우리의 삶에 최고의 중심을 차지하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단지 기존의 형식은 역동성이 없다. 또 친교 시간도 너무 단순하다. 성도들에게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실제가 나타나도록 애써야 한다.

진정한 사랑의 교제와 나눔 그리고 성도의 기쁨이 충만하며 세상적으로 즐기기 보다도 더 좋은 시간이 되도록 프로그램의 개발도 시급하다. 교회는 이제 수동적이며 단순한 예배의 형식보다는 역동적이며 풍부한 사랑과 즐거움의 표출이 성도들을 사로 잡게 해야 한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천국의 선언(A Kindgom Manifesto)에서 안식일을 수동적으로 일의 단순 중지로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휴식의 창조, 평화의 창조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평화가 그 날에 있어야 함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사조의 시대를 살고 있다. 따라서 다양성과 변칙성과 타자성 그리고 행위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교회도 이 시대를 바르게 읽고 문화적인 올바른 대응이 필요하다. 문화에 뒤쳐져서 교회가 일종의 답답한 종교 그룹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좀더 기독교의 풍부한 세계관을 바르게 확장할 때가 되었다.

안명준 교수(평택대학교신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