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김준곤 목사 7주기 추도식
▲김정우 교수가 추모강연을 하고 있다. ⓒCCC 제공
유성 김준곤 목사(한국CCC, 성시화운동, 국회조찬기도회, 국가조찬기도회 창설자, 1925-2009) 7주기 추모식이 9월 29일 오전 서울 부암동 CCC 대강당에서 개최됐다.

故 김준곤 목사는 "민족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는 슬로건 아래 대학생 선교를 시작으로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에 평생을 바쳤다.

이날 추모식은 최호영 목사(GAIN KOREA 대표) 사회로 오차숙 간사(CCC 외국인사역부 책임)의 대표기도에 이어 전남주 선교사(NK)가 추모사를 전했다.

전 선교사는 "필리핀에서 사역하다 뉴욕으로 파송받을 때, 김 목사님께서는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했듯, 세계의 서울인 뉴욕에서 죽으시오'라고 말씀하셨다"며 "뉴욕에서 매일 죽지 않고는 사역을 할 수 없었다. 매일 죽는 삶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이후 김정우 교수(총신대, 부산대CCC 나사렛형제들)가 '유성 김준곤 설교 묵상'을 주제로 추모강연을 했다. 김준곤 목사의 제자인 김정우 교수는 "목사님의 7주기를 기념하면서, '편지'에 나온 목사님의 설교를 거의 모두 읽을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며 "목사님의 초기 설교는 세로로 빽빽하게 기록되었는데, 3편만 읽으면 나의 온 몸에서 힘이 빠져 기절하듯 수면을 취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글을 읽고 있는데, 마치 목사님께서 '김군, 지금 뭐하고 지내오? 이제는 내게 대해 어떻게 생각하오?' 하며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없지만, 목사님에게 '새 생명의 빚, 사랑의 빚, 사명의 빚'을 지고 있음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 교수는 김준곤 목사 설교의 특징에 대해 "목사님은 '초감각을 지닌 문인과 시인의 언어 속에서, 하나님 없는 그 진실하고 민감하고 심각하고 처절한 고백을 들을 필요가 있다(1981)'고 말씀하셨다"며 "제가 볼 때, 목사님 자신이 '초-고감각의 문인이자 시인'"이라고 말했다.

또 "목사님의 모든 설교는 범인의 감각을 뛰어넘는 직관으로, 심오한 언어의 차원에서 형성되어 우리말로 다듬어져 쏟아져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목사님의 설교는 독창적이고 고유(originality)하다"며 "우리에게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나 친숙하여 '그 설교가 그 설교'라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교회 역사에서 목사님의 설교 같은 설교는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목사님의 설교는 루터나 칼빈이나 스펄전의 설교와 다르게 빼어나고, 역사상 이런 작품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독자적인 사색 속에 자신의 고유한 언어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며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 정선된 언어, 체화된 언어, 영혼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언어의 은하수를 만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둘째로 목사님의 설교는 그림을 보듯이 선명하다"고 했다. 그는 "어느 설교에서 '혁명은 화산처럼 폭발하고, 전염병처럼 번진다. ... 혁명은 광풍, 방화, 홍수, 발광, 열도가 죽이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피와 생사의 필요성으로 외인과 내인을 내포하고 있는 모순부정의 질적 변화운동(1970. 12. 15)'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여기 나오는 '모순부정의 질적변화 운동'이란 언어를 볼 때, 고도의 조어(造語)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목사님은 비유(比喩)를 탁월하게 사용한다"며 그 실례로 '이기주의는 진드기처럼 모든 사람을 자기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긁어 모으기만 한다', '맷돌은 천천히 돌아가지만 모든 것이 가루가 되어 나오듯,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계획은 조금도 후퇴하지 않고 다 이루어간다', '나는 정말 나룻배다' 등을 인용했다.

김정우 교수는 "셋째로, 목사님의 설교는 시어(詩語)가 아름답게 운(韻)을 이루고 있다"며 "'어머니의 젖줄, 탯줄, 핏줄, 숨줄, 생명줄에서 신앙을 배웠다'는 표현을 보면, 때로는 설교인지 시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때로는 설교 제목까지 두운과 각운을 맞추고 있다"며 "이는 그리스도의 대신성, 대속성, 대사성, 대생성의 의미와 신비(사 53:4-12)"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렇지만, '전 민족 신자화 운동을 위한 전 성도 총 단합 총 집중 전원 정예화 운동에 대한 제안(1973년)'은 제목 자체가 너무 벅차게 느껴진다. 목사님이 운을 남용하신 것 같다"며 "이 세 가지를 특징으로 꼽은 것은 이런 특징들이 거의 모든 설교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교수는 김 목사의 설교에 대해  우리 시대가 감당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 첫째는 '목사님의 설교 유산을 모두 정리하여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스펄전의 설교가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으로 정리되고 완성된 것처럼, 목사님의 전 생애 설교가 완성된 형태로 책과 다양한 매체로 증거됐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둘째로는 "목사님의 꿈 가운데 '교육공동체'가 있었다"며 "목사님은 한국성서학회(KBS), 한국성서연구원(Korean Bible Studies), 순성서신학원 등의 꿈을 꾸셨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목사님은 신학의 모든 과정을 농축한 과정으로 400시간 내지 450시간 동안 강의, 자습, 순모임, 리트릿 등의 방법으로 평신도들을 선교사화하려 하셨다"며 "이 꿈은 민족복음화를 위한 오랜 꿈이었고, 이미 '제6회 연례 대통령 조찬 기도회 메시지(1973)'에서 '성서 자원을 개발하자'고 제안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우리 후학들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받들어, 목사님의 꿈을 계승하고 한 걸음 더 구체화시켜 내실 있는 민족 복음화를 이루면서 세계 선교에 동참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후에는 추모영상 상영과 유족 인사가 이어졌다. 박성민 목사(한국CCC 대표)는 "1978년 정동채플이 시작할 때부터 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그것이 제 신앙의 밑거름이 됐다"며 "목사님의 복음의 열정과 비전을 잘 계승하고, 특히 목사님께서 남기신 좋은 유산들을 잘 정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유성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의 꿈'을 노래로 만든 '그리스도의 계절'을 부른 후, 대학생 선교사역 부흥과 민족 복음화, 세계 선교를 위해 합심 기도했다.

이어 유성 김준곤 목사 장학금 수여, 비즈니스 창업경진대회 시상, 지난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순교한 배형규 목사(한양대CCC 나사렛형제들)를 기리는 배형규순장상 수여식 등을 진행했다.

배형규순장상은 배복환 간사(대구지구)와 조성령 순장(청주지구)에게 수여했다. 수상자들은 사랑방 운동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모범을 보였다.

유성 김준곤 목사는 1958년 한국CCC를 창설해 30만여 명의 대학생을 복음으로 키워냈으며, 1965년 국회조찬기도회와 1966년 국가조찬기도회를 창설했다. 그리고 1968년 '민족복음화 제3의 집단'으로 나사렛형제들을 창설했으며, 1969년 전군신자화운동, 1970년 12월 31일 0시 CBS 기독교방송을 통해 민족 복음화운동을 선언하고 주도했다.

1971년 대전 충무체육관 1만명 민족 복음화요원 훈련, 1972년 춘천성시화운동 전도대회를 개최했고, 1974년 8월 13-18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엑스플로 '74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한국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1980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80세계복음화대성회를 개최해 10만 명의 선교사를 헌신하게 했다. 당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파송 선교사가 100명도 되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해외 선교의 길이 활짝 열렸다.

1990년 7월과 8월에는 필리핀 마닐라에 한국CCC 대학생 3천여 명을 단기선교사로 파송해 '단기선교 시대'를 열었다. 또 1995년 5월 20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청년대학생 8만 명이 참석한 가운데 'SM 2000대회'를 열어 세계선교단·통일봉사단으로 헌신하게 했다.

1999년부터는 북한 젖염소 보내기운동을 전개해 황해북도 봉산군 은정리에 32만 평의 CCC은정젖염소목장을 만들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상임대표로 10년간 활동하면서 평화와 통일에 힘썼고, 2009년 9월 29일 11시 11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소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