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에덴교회에서 게시한 지하철 속 홍보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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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저희가 지하철역과 분당선 전철, 교회 외벽에 교회 이미지 광고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문구를 새겨 제 사진도 넣고 예배 시간도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대형교회가 자꾸 개교회주의적 홍보에 너무 치우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공익적 홍보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사진도 빼고, 예배 시간도 뺐습니다. 다만 어떤 이단이나 사이비 단체의 홍보가 아니라는 의미로 작게나마 새에덴교회 이름은 넣어놨습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더 많은 상처를 받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상처는 그 사람을 절망의 바닥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이 작은 한 문구를 통해 정서적·사회적 위무를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새에덴교회에서 게시한 교회 외벽 홍보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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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에 수록된 ‘꽃과 예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 / 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 / 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 /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 너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 세상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 나는 너를 꽃처럼 껴안고 / 이 추운 밤을 지나 / 봄날의 아침을 맞으리니.”
시적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상처도 꽃이 되게 하고 우리 눈물을 진주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한숨을 가져와도 노래가 되게 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 피투성이가 되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더라도 희망만큼은 버리지 말라는 거지요.
▲새에덴교회에서 게시한 지하철 역사 내 홍보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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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바닥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도 인생 밑바닥에서 절망과 탄식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밑바닥에서 꽃이 피어나게 하는 분이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 희망을 갖다 주기 위해서죠.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웃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봄이 왔으니, 곧 꽃이 피게 될 겁니다. 매화와 목련, 진달래, 개나리 순으로 꽃이 피겠지요. 그런데 그 꽃은 언덕 위에서만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밑바닥에서도 피어납니다. 아니, 바위틈 밑바닥에서도 피어납니다.
▲웃음짓는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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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예수’라는 시에서 “너를 꽃처럼 껴안고 이 추운 밤을 지나 봄날의 아침을 맞겠다”고 한 것처럼, 저 역시 인생의 맨 밑바닥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한 송이 꽃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렇게 웃으며 살죠. 제가 진지한 설교를 하거나 사색에 잠길 때를 빼놓고는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웃으며 악수를 하고 반갑게 맞습니다. 그때 제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 있죠. 희망의 꽃이 화사하게 피어납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설교하는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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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