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특정 국가 적 규정 안 돼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대해 한 말
정치적 역학관계, 명분 가장 중요
윤미향 사태로 일본에 명분 넘겨
무죄 판결? 위안부 할머니들은…
상황 견딜 수 없어, 용단 내린 것

한국 일본 윤석열 기시다 정상회담
▲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서 한국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외교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한일관계 회복의 걸림돌이 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금을 제3자가 변제해 주는 해법을 제안했다.

일본 일부 언론이 제기한 바, 윤 대통령이 독도 영유권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는 등의 내용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의 이런 식의 도발은 사실 늘 있어왔던 일이다.

이를 두고 어떤 블로그에서는 학폭에 시달린 아들이 소송하여 배상금 지급판결을 받아냈더니, 아버지가 가해자를 만나 배상금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친일파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강원대,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등 (가나다 순) 전국 수많은 대학교에 윤 대통령이 친일파라며 비판한 대자보가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 보자. 친일파라면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고용되거나 사주를 받아 한국인에게 고통을 주는 일(친일)에 가담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해가 194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이다. 그렇다면 친일파는 최소한 78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0세의 나이에 친일행각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만 14세 이상인 경우에만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처벌 가능한 친일파가 살아있다면 최소한 92세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90세 이상인 자는 ‘초고령자’로 분류된다.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0.5퍼센트 수준인 25만 7,490명이다.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90세 이후 1세 당 생존자 수는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특정 정치 진영에 의해 친일파로 매도되는 사람들이 92세 이상인 경우를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현재 친일파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역시 1960년생이므로, 올해 나이가 63세이다. 따라서 친일파일 수 없다.

아이 캔 스피크
▲위안부 할머니 관련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중 한 장면.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친일파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가 아닌 현재 우리나라의 국익을 희생시키고 일본의 국익에 도움을 주는 이적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준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친일파인가?

한 국가의 외교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은 특정 국가를 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나라와도 연대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강대국이 즐비한 약소국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주장을 하는 나를 친일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나의 이 말이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TV토론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기를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우리 국민이 잘 모르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정치적 역학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분’이라는 사실이다. 부정선거라는 극악한 불법행위를 통해 국회를 점령한 180명조차 최근 분열의 조짐을 보이는 이유 역시 범죄자의 체포동의안을 거부할 명분이 없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외교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국제관계가 법으로 지배되지 않는 양육강식의 정글이라 하더라도, 명분만큼은 매우 중요하다.

제2차 이라크 전에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주장을 명분으로 개전하였지만, 정작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아직까지도 비난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난 2019년 하노이 회담 당시 어떤 평론가는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하기 위한 명분을 쌓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북한과의 전쟁 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였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는 논리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도 이러한데, 약소국인 우리의 경우 외교관계에서의 명분은 훨씬 더 중요하다.

윤석열 윤미향
▲두 윤 씨 중 누가 친일파인가? ⓒ크투 DB

2020년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와 관련된 문제가 언론에 대서특필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일 관계에서 명분은 우리 쪽에 있었다. 사실 일본이 우리와의 관계에서 가장 어려워한 부분은 위안부 문제였다. 특히 인권에 대한 민감성이 강화되는 현재 국제 정세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군대에 동원하여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2015년 당시,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제공한 기술 이전 및 차관 제공을 통해 이미 빚을 모두 청산했다는 기존 입장을 유보하고,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2020년 윤미향이 저지른 정의기억연대 관련 횡령 사건 때문에, 우리에게 있던 명분이 일본 쪽으로 급격히 넘어가게 되었다. 일본 국민과 정치인들이 쾌재를 불렀을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획기적인 국면전환을 일으킨 것이 윤미향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적으로 여기는 일본을 이롭게 한 것이다.

일본은 윤미향 사태를 빌미로, 해방 당시 우리나라에 남겨두고 간 귀속재산, 박정희 정권 당시 독립축하금 등을 다시 끄집어내,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할 것이다. 우리 국회의원 한 명 때문에 졸지에 나라 전체가 국제사회에서 진상이 되어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도자로서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한일관계를 우리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국제사회의 시선이 어떨까를 생각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다 불가능함을 알자 자신의 눈을 가리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가 정의기억연대 사건을 보고 화가 난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동일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미 법원이 윤미향의 혐의 중 대부분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하는 말은 기자회견에서 윤미향의 비리를 폭로한 90을 넘긴 고령의 위안부 할머니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를 말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아직 1심 판결만 내려졌을 뿐이다. 그러므로 만일 한명숙의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뒤집으려 시도하던 사람들이 윤미향을 두둔하고 있다면 이는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의문은 이뿐이 아니다. 아주 복잡한 사건이 아니면 대개의 경우 1심 판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사건은 1심 판결까지 무려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피해자가 전 국민 앞에서 생생한 육성으로 증언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의거하여 유죄 판결이 내려진 2017년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기억하는 국민이라면, 윤미향 사건의 1심 판결을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지난 18일 서울시청 인근 도로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규탄 시위에 참여한 정의기억연대. ⓒ정의기억연대

서두에 인용한 학폭 피해자의 아버지 예를 빌어 현재의 ‘객관적’ 상황을 비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배상금 재판에서 승소한 아들이 과거 공갈 협박을 자행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의해 폭로된 것이다.

게다가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용단을 내린 것이다.

다시 두 윤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과연 누가 친일파인가? 당신의 분노는 친일파인 그 사람에게 향하여야 한다.

이형우
교수·행정학 박사
Professor/Ph.D. in Public Management
한남대학교 행정학과
Department of Public Administration, Hannam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