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모습에서 ‘영원의 흔적’ 찾고자 했던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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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고흐 <자장가>, 렘브란트 <성가족의 저녁풍경>

반 고흐, 명사 아닌 주변 평범한 인물들 모델 삼아
<자장가> 속 오귀스틴이 잡고 있는 ‘끈’이 그 비밀
자신만 방식으로, 렘브란트 <성가족…> 발전시켜
세상 가운데 인간 품고 신실함 회복하는 크리스천

▲빈센트 반 고흐, 자장가(요람을 흔드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92.7x73.8cm, 1889,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 자장가(요람을 흔드는 사람), 캔버스에 유채, 92.7x73.8cm, 1889,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한번은 빈센트가 동료 화가인 안톤 반 라파르트(Anthon van Rappard)에게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답변은 명료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빈센트는 인물을 그릴 때 사회적 명사나 지도자, 부유한 사람이나 연예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그보다는 정원사, 우편배달부, 의사, 모자, 시인, 아기, 어린이, 청소년, 정원사, 목동 등을 즐겨 그렸다. 빈센트는 모델을 관찰의 대상으로 놓기보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자 했다.

조세 룰랭(Joseph Roulin)도 그중 한명이었다. 룰랭은 아를 기차역에서 일하던 우편배달 책임자로 빈센트와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빈센트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말벗이 되어 주거나 심부름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친구를 위해 빈센트는 붓을 들었다.

우편배달부 조세 룰랭의 초상은 소탈한 성품과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눈빛이 두드러진다. 푸른색의 우편배달부 복장을 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룰랭은 당당한 포즈로 전면을 주시하고 있다. 네덜란드 시절 보이던 낮은 채도에 침침한 색조를 떨쳐내고, 밝고 풍부한 색조와 뚜렷한 윤곽선으로 친구에 대한 신뢰를 담아냈다.

이 작품과 함께 제작한 작품이 친구의 아내 오귀스틴 룰랭(Augustine Roulin)을 모델로 한 <자장가: 요람을 흔드는 사람>(La Berceuse, 1889)이다. 빈센트는 꽃무늬 벽지를 배경으로 흔들의자에 앉은 룰랭 부인을 인자한 어머니로 묘사하였다.

빈센트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 새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 적이 있다. “나는 후광으로 상징되던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빛깔에서 뿜어져 나오는 참된 광채와 떨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그런 영원의 흔적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구나.”(1885. 9. 2)

이웃의 모습에서 ‘영원의 흔적’을 찾고자 했던 빈센트에게 오귀스틴은 안성맞춤이었다. 룰랭의 초상이 그가 느낀 인상을 표현했다면, 오귀스틴의 초상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보태졌다.

이 그림의 비밀은 그녀가 잡고 있는 끈에 달려 있다. 그녀는 지금 보이지 않는 요람을 붙들고 있는데, 우리는 그녀가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빈센트는 아이의 모습에서 영원한 그 무엇을 볼 수 있다고 여겼다. “장엄하고 무한하며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아침에 잠에서 깬 어린 아이의 눈망울과 요람 위에 비친 햇살을 보고 옹알거리거나 소리 내어 웃는 아이에게서 바다보다 더 깊고, 더 무한하고, 더 영원한 무언가를 볼 수 있다.”(1882.7.2)

이처럼 아이에게 갖는 감정은 각별한 것이었으며, 빈센트는 엄마와 아이를 통해 관계성의 성스러움을 발견하였다.

▲렘브란트, 성가족의 저녁풍경, 1644,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렘브란트, 성가족의 저녁풍경, 1644,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
그런데 이 도상은 렘브란트의 <성가족의 저녁풍경>(1644)과 닮은꼴을 하고 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요람에서 잠든 아기 예수와 책을 읽어주는 마리아를 모티브로 삼았다. 오른편에서 나온 불빛은 등장인물들의 윤곽을 뚜렷하게 밝히고 있는데, 요람의 아기 예수는 곤히 잠들어 있고 그 뒤로 반쯤 눈이 감긴 노인이 두 손에 무언가를 붙들고 있다.

노인이 잡고 있는 것은 요람과 연결된 줄이다.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은 화면 좌측의 계단 밑에 가려져 있는데, 집을 수리중인 것으로 보인다. 가정의 평화스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야경이다.

빈센트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을 암스테르담에 체류할 때 보았던 것 같다. 신학교 진학에 실패하는 바람에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었지만, 국립미술관에서의 경험은 여전히 그의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 빈센트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귀스틴의 <자장가>를 그리고자 했을 때, 불현듯 그 그림이 떠올랐다. 렘브란트 작품에는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이 장면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평소에 가졌던 렘브란트에 대한 존경심이 이 그림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 셈이다.

이 그림에 대해 빈센트는 먼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어부들을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표시한 적이 있는데, 오귀스틴이 잡고 있는 끈이 바로 ‘위로의 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바다의 선원이 해변의 여성을 생각할 때 꿈꾸는 것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1889. 3. 29).

선원이 파도에 휩쓸릴 때마다 그림을 보며 아내를 생각하면 평정심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본 것이다. 병마에 시달렸던 빈센트에게도 ‘위로의 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감상자 역시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유년 시절 어머니 품속에서 들었던 사랑의 자장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빈센트의 <자장가>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가 런던에서 교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이웃의 모습을 화폭에 담을 때까지 변치 않았던 상수(常數)가 있다. 그것은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이었다.

비록 주민들이 자신들에 대한 호의를 잘 알아채지 못했으나, 고흐의 관심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신비한 매력으로 향했다. 그것은 그들을 하나님이 지으신 특별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장가>에서 그가 들려주는 것은 위로의 메시지도 있겠지만 그가 접한 ‘평범한 사람’을 지도층 인사 못지않게 높이 놓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이웃이 우리가 섬겨야 할 존재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의 이야기가 거의 모든 방면에 걸쳐 ‘성공 신화’로 몸살을 앓는 우리 사회에도 널리 알려지면 좋을 것이다. 자신만의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돈독한 관계성을 기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성장을 최고선으로 삼는 욕망의 회랑(回廊)에서 타인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비칠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이 속 깊은 마음과 부드러운 심장을 가지고 우리 사이에 벌어진 심연을 건너는 다리가 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럼에도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하나님, 자신, 이웃의 ‘신실함이 왜곡되고 배제’되는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상대방을 향해 나가는 것, 곧 ‘타자를 품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 한가운데 자리한 것은 동료 인간을 품음으로서 신실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빈센트는 이런 사실을 주저함 없이 드러낸다. 사람이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드러내도록 창조됐으며, 사랑은 ‘관계라는 매개물’을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준다.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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