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와 살로메 함께했던 이탈리아 오르타 호수
맞은편 상 줄리오 섬, 뒤편엔 성산 몬테사크로
사랑의 갈망, 이별의 절망 속 태어난 니체 대작

오르타 호수 이탈리아 성산 사크로 몬테
▲오르타 호수. ⓒ위키
4월 하순이 되면 로마는 점점 더 기온이 올라간다. 밀라노에서 스위스 쪽으로 여행을 하던 한 날에 나는 북부 이탈리아 호수 중에 유명하지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경치로 이름 난 오르타 호수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이른 아침 배를 타고 오랜 작은 도시 오르타(Orta)에 도착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 옛날의 4월인 듯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여전히 맞은편 기슭에는 호수 위에 떠 있는 진주 같은 상 줄리오 섬(San Giulio)이 있다. 바로 그 뒤편에 성산 몬테 사크로(Sacri Monte)가 솟아 있다.

1882년 4월 오르타에 왔던 철학자 니체는 이렇게 외친다. “이곳은 정직과 장엄이 지배하는 절경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고백한다. “삶의 가장 매혹적인 꿈에 대하여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4월에 오르타에 소풍 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니체의 이 아름다운 고백을 떠 올렸을 터이다. 그리고 나 역시 니체의 ‘몬테 사크로의 비밀’을 알고 싶어 지금 이곳에 서 있다.

학창 시절 내가 읽었던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r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산문은 지금도 생생하다. 날카로운 위트에서부터 어두운 예언적 계시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글들이다. 전쟁을 찬미하고 연민을 조소하고 “신은 죽었다. 기독교는 질병이다. 민주주의는 속임수다. …” 외치며 사정 없이 망치를 휘둘렀던 한 인간 니체.

그의 문학을 생각하면 모든 가치를 철저히 파괴하고 전도한 것에 대해 혼돈스럽다. 무엇보다 니체는 여성에 대한 사랑을 철저히 무시하였다. 지금도 나는 이 점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의 글과 삶의 모순을 수용하기 어렵다.

니체 스스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여성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니체 연구가들은 그의 병약한 체질이 여성을 기피하는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니체는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두통으로 몇 날 며칠을 어두운 방 구석에 틀어박혀 사지를 뻗고 누워 있거나 오직 집필에만 몰두하는 니체를 보았다. 혹자는 그를 고독과 육신의 병마로 인하여 절망의 낭떠러지에 서있는 미치광이쯤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런 혼돈기에 니체는 루 살로메(Lou Andreas Salome (1861-1937)를 만난다. 루의 아버지는 재정 러시아 시대 실세 장군이었다. 화려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 마력적인 영혼과 아름다운 육체로 19세기 유럽의 지성들을 광란의 회오리로 말려들게 했다. 그녀와 사귀면 아홉 달 반 만에 책 한 권을 출판하게 된다고 예찬하였다.

루는 스물 한 살의 나이로 니체를 만나 짧은 기간 사랑을 불태우고, 니체를 광란의 회오리에 남겨둔 채 떠나버린다. 당시 니체의 상심한 마음은 친구 페터가스트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난다.

“잠들 수만 있다면, 그런데 아무리 강한 아편을 먹어도 안 되고 여섯 시간 여덟 시간을 걸어도 잠이 오지않소. … 이런 오물을 황금으로 만드는 연금술의 비법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나는 파멸이 있을 뿐이오.”

사랑의 갈망과 이별의 절망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 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헸다>이다.

그날 오르타 여행에서 나는 니체와 루의 피크닉 일정을 따라 상 주리오섬 뒤쪽의 길로 올라갔다. 산림 울창한 언덕 몬테사크로 주위에는 오래된 건물과 승원 교회 등이 오르타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호반의 산기슭에는 작은 촌락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신자들에게 기도의 시간을 알려주던 섬의 오래된 교회 종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니체외 루가 무릎 꿇었던 성당에 들어서자 니체의 고백이 현실이 되어 왔다.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꿈에 대하여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오직 나는 당신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환희를 확인하였다.”

니체는 루와의 만남으로 자신의 삶의 단편들이 갑자기 의미를 가지고 짝맞추어지는 것을 경험하였던 것이다. 오르타의 아름다운 풍광과 몬테사크로의 숭고함도 사랑을 갈망하는 그들 영혼에 큰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갈망은 우리 품에서 얼마나 많은 빛들을 만들어 내는가. 이 세계 바깥으로 향하며 우주의 한 별에 도달할 만큼 길고 힘찬 빛이다. 나는 이 갈망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 믿는다.

성서 앞에 무릎 꿇을 때마다 나의 문학적 편력의 단편들이 의미를 가지고 짝지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세계 문화 예술 기행의 그 오랜 여정들이 새로운 갈망을 일으키고, 그때마다 나는 삶의 아름다움과 환희를 다시 확인한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갈망에의 갈망’이며, 밀턴이 말한 바 ‘가이 없는 기쁨(Enermous Bliss)이다. 삶의 이 매혹적인 꿈에 대하여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송영옥 기독문학세계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송영옥
영문학 박사, 기독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