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이삭의 희생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17-1610)의 그림 ‘이삭의 희생(Sacrifice of Isaac)’. ⓒ위키
창세기에 등장하는 4대 족장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입니다. 이 네 사람 가운데 다른 족장들에 비해 고생을 덜 하고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족장 아브라함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삭의 인생에도 두 번의 고비가 있었으니, 첫 번째 고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신 사건입니다.

당시 이삭은 나귀에 싣고 온 장작을 짊어지고 산에 오를 만큼 건장한 청년이었으니, 아버지의 행동을 저지(沮止)하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아버지를 밀치고 도망할 수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평소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수없이 반복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기적적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이다. 너는 장차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 방금 산 아래에서 아버지가 종에게 한 말도 기억했습니다. “내가 저기 가서 제사하고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라.”

아버지는 분명히 “우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버지를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이삭은 죽은 사람도 살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체험하였고 메시아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이삭의 생애에서 두 번째 위기는 브엘세바에 기근이 들어 그랄로 이주한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랄에 사는 블레셋은 호전적인 민족이었기에, 이삭을 죽이고 리브가를 뺏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빼앗기더라도 살아 남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삭은 남들에게 리브가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둘이 부부인 것이 들통나자,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뜻밖에도 자기 백성들에게 이삭과 리브가를 건드리는 사람은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명령하며 보호해 주었습니다.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이삭은 하나님이 어디서나 자기와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며 공급하시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이삭은 그랄에서 농사하여 블레셋 사람보다 100배의 수확을 얻는 경험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충분히 경험한 이삭에게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시작하시는데, 세 번이나 반복해서 우물을 양보할 수 있는지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매우 건조해서 물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지방입니다. 아무 데나 판다고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우물 하나를 파는 것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우물을 빼앗아가는 행위는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싸움을 걸어오는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을 피하고, 세 번이나 우물을 양보했습니다. 세 번째 우물을 팠을 때에야 이제는 블레셋 사람들이 뺏으러 오지 않자, 이삭은 그 우물을 르호봇(넓은 지역)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삭이 목숨이 달린 우물을 세 번이나 양보한 것은 초인적인 관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삭의 종들이 파는 곳마다 기적같이 풍부한 샘이 솟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기분 좋은 것을 넘어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이삭이 그런 양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급하신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우물 양보 후에 르호봇에 살면서, 이삭은 자기가 살 곳은 그랄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삭은 살기 좋은 르호봇을 떠나 브엘세바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땅은 넓고 좋은 우물도 있었음에도 거기를 떠난 이유는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브엘세바로 돌아간 이삭은 예전처럼 우물을 파지 않았습니다. 우물을 파는 대신, 이삭은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매일 예배를 드리며 기도했습니다. 집을 짓고 우물을 판 것은 그 후에 했습니다. 하나님은 브엘세바에서도 우물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에섹, 싯나, 르호봇에서는 우물을 먼저 팠지만, 브엘세바로 돌아와서는 집을 짓고 우물을 파기보다 제단을 먼저 쌓은 것은 이삭의 믿음이 성숙했음을 보여준 행동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먹고 마셔야 살 수 있기에, 모든 사람은 먹고 마시는 것에 연연합니다. 또 먹고 살아도 좀 더 많이, 좀 더 맛있게, 좀 더 멋있게 먹으려고 더 노력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보장하고 계시는 것을, 이삭의 생애를 통해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삭이 가는 곳마다 우물이 솟아났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원조받던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강대국이 되게 하시고 선진국 반열까지 오르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삶은 우물을 파는 것보다 먼저 제단을 쌓는 모습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예배를 미루는 세속적인 모습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서 먹고 마시는 것을 잠시 미루는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드러낼 때입니다.

최광희
▲최광희 박사.
최광희 목사
행복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