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간을 걷다
하나님의 시간을 걷다

이요셉 | 토기장이 | 196쪽 | 11,500원

나이가 몇일까? 글이 여리면서 섬세하다. 어떤 글은 소박하고 어떤 글은 묵직하다. 지금까지 펴낸 책을 봐서는 분명 30대 중반 정도일 것 같은데, 그 어린(?) 나이에 그런 글이 나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책을 읽어가는 중 시작된 호기심은 자꾸 인터넷을 검색하려는 충동으로 이어졌다. 참았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굳이 찾지 않아도 충분했다.

화려한 저자의 소개 글은 건너뛰었다. 글이 손상될 것 같아서. 학문적 성향이 책이 아니면 저자 소개를 읽지 않는다. 나중에 궁금해지면 찾는 편이다.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 찾기를 포기했다. 물론 주워들은 간략한 정보가 있기에 굳이 찾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요셉’이란 저자는 낯설다.

“알 수 없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이 길일까? 저 길일까?
수없이 되돌아보며 의심하는 시간 속에는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주님의 숨결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가 어디이건,
주님의 시간 속에서 주님의 마음을 구하며
주님의 얼굴을 봅니다.”(13쪽)

‘눈물, 한탄, 막막, 또 하루, 성실’…. 단어들은 각기 다르나,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일상’을 향하고 있다.

급하게 읽으면 안 되는 책이다. 아니 읽히지 않는 책이다. 책을 빠르게 읽는 편이다. 정보 습득 방식의 독서법을 좋아한다. 덕분인지 탓인지 모르겠으나, 시나 소설은 딱 질색이다. 시는 난해하고, 소설은 빨리 읽을 수 없다. 그래서 가장 읽고 싶은 글 역시 시와 소설이다.

분명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나 신학서적도 아니다. 그냥 짧은 글이다. 그런데 묵직하다. 천천히 읽으라고 잡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빨리 읽을 수가 없는 걸까? 곳곳에 속도방지턱이 있다.

“절망의 연장선에서 만난 오늘이 아니라 주님의 성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하루입니다(16쪽).”

첫 장부터 걸렸다. 한참을 생각하다 다음 페이지부터는 멈추지 않으려 결심한다. 몇 페이지 못 가서 또 걸렸다.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상대를 날카롭게 할퀴거나 공동체를 아프게 합니다. 도대체 믿음 좋은 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19쪽).”

육아를 배우다 이요셉
▲저자인 이요셉 작가는 사진가이자 강연가, NGO 활동가 등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토기장이 제공
나도 그랬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신앙의 본질에 근접할 탓일까? 타인에게 상처 주고 좌절시키면서도 믿음 타령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한참을 읽었다. 걷다 서고 또 걷다 서기를 반복했다. 읽는 양이 많아지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자는 끊임없이 ‘지금’과 ‘여기’라는 ‘일상’에 천착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간 속에 담이 숨어 있다면, 갈등하고 씨름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그 매일의 시간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해답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87쪽)?”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밑줄 긋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못된 습성 때문에, 책장이 넘어 갈수록 책이 더러워진다.

“내가 그니라(요 18:6, 100쪽)”, 이 짧은 구절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최근 한 문제에 함몰되어 시각도 마음도 좁아진 상태가 많았다.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고, 살아온 생애에 비해 축적된 물질은 없다. 삶은 남루하고 미래는 불안하다. 한 동안 깊은 우울감에 젖어 마음으로 울었다.

앞을 봐도 문제, 뒤를 봐도 문제, 주위를 둘러봐도 답답함이 진을 치고 있다. 어떻게 해결할까? 어떻게 하면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까? 고민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그 때 주님은 귓가에 속삭이신다.

“문제를 보지 말고 나를 봐! 나다(Ἐγώ εἰμι)!”

아! 그렇구나. 주님이 계시구나.

작은데 무겁다. 얇은 데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행간은 넓고 여백은 많으나 도무지 속독할 수 없는 책이다.

갑자기 어릴 적 시골에서 학교 가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신작로. 차 한 대 지나가면 먼지가 풀풀. 하지만 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산딸기도 있고, 머루도 있다. 해 지는 줄도 몰랐다. 어둑어둑 해 지고 나서야 귀신이 곁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달려 집으로 들어갔다.

산책하듯 읽으라 권하고 싶지만, 나로서는 정글 같은 책이다. 마음과 생각을 헤집는 야성의 사자도 만나고, 나무를 나는 파라이스 나무 뱀인 크리소펠리아(Chrysopelea)도 만난다. 하지만 코코넛, 망고, 잭프룻, 브레드프루트와 같은 열대 과일도 많다.

책을 읽다 길을 잃어도 상관없다. 잃어버린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마음의 갈피를 잃었는가? 그럼 이 책을 읽으라. 광야에 홀로 나와 직면할 것이다. 아무도 없으니 마음껏 울고 마음껏 소리 질러도 좋다. 가식도 필요 없고, 꾸미려 애쓸 필요도 없다. 하나님과 독대할 테니.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