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대를 아우른 합창단의 연습 장면. ⓒ교회 제공
|
“눈깜짝할 사이에 올해가 지났어.”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만큼 바빴어.”
“내 나이 80인데 20살이 엊그제 같아.”
그러나 여러분. 시간은 한 번도 변함없이 동일한 속도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과거가 이렇게도 빨랐다면 과연 미래라는 시간은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의 미래의 모습을 아십니까?
2. 태양이 저물어갈 때쯤 2평 정도 되는 작은 상담실에서 한 청소년과 상담할 때의 일입니다.
“너는 살아가면서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돈이요.”
태양이 저무는 2평짜리 작은 상담 공간에서, 저는 그 아이의 미래가 그 아이의 모습으로 스며드는 것을 봤습니다.
3. 아침에 일어나 현재의 내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 앞에 섭니다. 대부분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교정하는 이유는, 어디론가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거울을 마주 대할 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거울과 나란히 서서는 결코 나를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시간과 나란히 선 자세, 시간은 흘러 가는 것이야…, 하는 마음으로는 그 사람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갈 뿐입니다.
종국에 어제와 같은 내일 말입니다. 그 내일은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죽음은 눈 깜짝할 사이 지금 여러분에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이 드신 여성도님들도 콰이어에 동참했다. ⓒ교회 제공
|
돈을 성공의 가치로 삼는 사람의 미래와 마주 대하면, 그 사람은 결국 돈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사람을 행복의 가치로 삼는 사람의 미래를 마주대하면, 그 사람은 결국 ‘사람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공부를 삶의 가치관으로 삼는 사람의 미래를 마주 대하면, 그 사람은 ‘지식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5. 그래서 꿈은 소유가 되서는 안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꿈이 될 수 없습니다. 소유할 수 있는 꿈은 결국 욕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더 갈급하게 만듭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빨갛게 충혈되어 도박장에서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6. 소유할 수 있는 꿈은 그것을 얻고 나면 또 소유를 위해 다른 길을 찾습니다. 미로 찾기처럼, 보석 반지를 얻기 위해 살아서 얻었지만, 옆에 또 다른 더 큰 보석에 눈이 갑니다. 왜요? 그것이 행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소유해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계속 돌고 돌지만 결국 막다른 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7. 사람들은 직업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좋은 집과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얻고 나서 만족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길을 찾습니다. 직업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는 했는데, 행복하지 못해 실망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어느덧 얼굴 가득 어린 시절의 행복한 모습이 아닌, 굳어진 자기 얼굴을 거울을 통해 봅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본질적 요소를 본인이 깨닫고도, 자신의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길을 권한다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찬양 모습. ⓒ교회 제공
|
“직장부터.”
“결혼부터.”
“집부터.”
“네 사람부터.”
라고 말입니다.
8. 아무리 수백억원 어치의 보석과 같은 것이라도, 소유의 가치는 꿈이 될 수 없습니다. 욕심은 종국에는 죽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은 언제나 좇아갈 수 있는 푯대여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내가 좇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9. 2018년 한국 교계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총신대 사태부터 명성교회 사건, 서울교회 분쟁까지…, 곳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결국 소유가 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꿈이 된 사람은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면 죽는다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은 내년도 올해처럼 살 것이 뻔합니다. 이미 그 모습이 올해 구현된 것입니다.
▲콰이어에는 어린이들도 참여했다. ⓒ교회 제공
|
저와 여러분이 꿈꿔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꿈꾸는 사람은, 오늘 내가 있는 현장이 어디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소유를 위해 장소를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이 곧 목회지요. 선교지요. 직장이요. 가정이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1. 돌아보니 저희 교회도 한국 교계가 겪었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아픔을 주셨던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아픔을 겪고 있는 교회들을 위로하고 공감해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그 고난과 시련을 통해 주저앉아 버린 청년과 성도들에게, 그래서 우리가 좇아가야 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임임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콰이어팀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부터 청년 장년 노년, 아니 그냥 생명샘교회 전체가 사실상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월 20일. 이 땅에 교회로 인한 아픔으로 무너지고 세상의 시험에 빠져 무너진 분들과 함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찬양 콘서트를 할 생각입니다.
12. 그로 인해 교회의 이름은 가릴 생각입니다. 홍보 영상에도 교회 이름을 삭제하고 전단지에도 뺄 생각입니다. 장소도 교회에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3의 장소를 물색하여, 그곳에서 그저 우리가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찬양단에 그냥 합류하여 옆자리에 있을 생각입니다.
그날 제 설교는 없습니다. 아이들의 성극으로 메시지를 전할 생각입니다. 교회 예산으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후원으로 하려 합니다. 그래서 밥 한 끼 굶고(밥) 평화 짓고(짓) 기도하기(기) 2차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찬양 모습. ⓒ교회 제공
|
연습으로 인해 교회 총회도 하지 못하고 있고, 청년부 예배 시간도 들쭉 날쭉. 교역자는 연말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14. 그런데 저는 보입니다. 내년 교회의 미래가 보입니다.
모두가 다 아마추어. 들리는 소리나, 보이는 모습은 전혀 프로같지 않지만 모습 자체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은, 찬양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청년예배가 그 형식을 버려 연습시간과 하나되어야 하고, 서로의 주장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15.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대강절기를 보내면서 무엇을 꿈꾸고 계십니까. 올 한 해, 아니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아무 생각없이 그저 시간은 흘러가는 거지,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계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히 11:1)”는 말씀처럼, 소망하는 바가 오늘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 소망하는 미래가 오늘 여러분의 삶에 이미 드러나고 있음을 모르신다면, 지금 여러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와 마주 대하십시오. 그 시간은 눈 깜짝할 시간입니다.
그제서야 소유를 좇아 살고 있는 여러분의 민낯이 환하게 드러날 것이요, 그 미래는 터키의 묘비명에 붙어있는 묘비처럼 이렇게 될 것입니다.
“나 어제의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오늘의 나와 같으리.”
이제 미래와 마주 대함을 두려워 말고, 버릴 것을 버리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사시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연말이 되실 것을 믿습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